좋은시

[스크랩] 지하의 문사 / 조옥엽

문근영 2019. 1. 19. 08:49

지하의 문사文士

 

조옥엽

 

 

  두 눈 감는 그  순간까지 캄캄한 땅 속, 제가 만든 감옥에서 퇴고를 거듭하다 끝내 거꾸러지고 마는

 

  천형이라 하기엔 너무도 가혹한 형벌

 

  그러나 잠시도 굴하지 않고 약진에 약진을 거듭해야 직성 풀리는 끈질긴 성미는 대대손손 이어온 가문의 오랜 전통이려니

 

  허나 삭은 고무줄처럼 흐물거리는 삭신 남세스러워, 오늘도 바닥에 코 박은 채 오체투지

 

  뱃가죽은 벗겨져 쓰리고 아리고 이마엔 피딱지 떨어질 날 없어

 

  고요만이 숨 쉬는 밤, 슬그머니 창 내고 바깥세상 훔쳐보면 바람은 야릿야릿한 혀 내밀며 러브콜 날리고 달빛  타고 흐르는 벌레들의 소프라노 대꼬챙이로 가슴 뚫을 듯 파고들어

 

  저도 모르게 그 음에 업혀 가다 뒤돌아보면 구불구불 길을 내고 따라오는 족적, 그 갈피갈피엔 불살라버리고 싶은 순간 너무 많아

 

 들숨 날숨은 곳곳에 지울 수 없는 상처 남기는 질풍노도의 사나운 짐승인가

 

  휴일도 반납한 채 뼈품 팔아 개발새발 검은 원고 칸칸을 채워가는 어둠 속 지렁이

 

- 조옥엽 시집, 지하의  문사文士.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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