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시조 당선작] 고드름
[신춘문예-시조 당선 소감] “일상에 지친 독자 달래는 작품 쓰고파”
우물물 맛보러 가는 길 안내하듯 옹골찬 서사 담아내고 싶어
내 그리움의 영토엔 자주 눈이 내린다.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마당이 있고, 고드름 주렁주렁 매달린 낡은 집 뒤 우물이 있었으며 우물 속엔 하늘과 바람과 별이 흘러갔다. 나는 우물을 들여다보며 꿈을 꾸었다. 시인 되는 꿈을.
칠백살 먹어도 건재한 생명체. 어떤 말을 담아도 찰랑찰랑 엎질러지지 않는 그릇. 한글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고유한 정형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에 우리는 왜 시조를 말하는가? 고통스럽고 힘든 현실을 가장 짧은 시형으로 가장 쉽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것을 명쾌하게 짚어내는 촌철살인!
시조의 멋을 사랑한다. 맺고 풀리며 휘어져 넘고 넝쿨지는 가락을 사랑하고 조운·정완영 이런 분들의 시조를 사랑하고, 대한민국 훌륭한 시인들의 시조를 사랑한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독자들에게 우물물 맛보러 가는 길을 안내하듯 산뜻한 이미지와 옹골찬 서사를 담아내고 싶다.
시조를 삼십여년 귀동냥만 하다가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지 이제 삼년여, 이 나이에 신춘문예라니 아, 나도 참! 삭풍의 시절에도 올곧게 시조의 자리를 지켜준 <농민신문>에, 염창권 시인을 비롯한 시조로 함께 놀아준 광주문학아카데미 시인들께, 밝은 눈으로 어두운 시 뽑아준 이정환·이달균 심사위원님께 큰절 올린다.
고성만 ▲1963년 전북 부안 출생 ▲1998년 <동서문학> 신인상 시 당선 ▲광주광역시 국제고등학교 교사 명예퇴직 ▲문예지도사로 활동 중
[신춘문예-시조 심사평}
신선한 시어 차용, 맺고 푸는 음보의 능수능란함 좋아 첫수 초장부터 팽팽한 긴장감으로 독자 마음 끌어들여
기해년 첫새벽, 시조시단의 종을 울릴 전령사는 누구일까. 한해 동안 벼리고 벼린 칼날의 예리함과 다독이고 다독인 내면 서정을 동시에 갖춘 신예를 기다리는 마음은 설렌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손끝에 전해지는 짜릿함을 즐기면서 응모작들을 읽어나갔다. 퍽 고무적인 사실은 정제되지 않은 생경한 목소리, 혹은 시조형식에 갇힌 생각보다는 응축·운율이 동시에 살아 있는 작품들이 다수 있어 시조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선자의 눈길을 끈 작품은 ‘강물 강론’ ‘은유의 아침’ ‘고드름’ 등 세 편이었다. ‘강물 강론’은 강의실 모습을 시조로 옮겨온 발상의 참신함과 유려한 문체가 돋보였다. 그러나 둘째수 종장 ‘나루터 낡은 배 한척’이란 낡은 비유는 긴장감을 잃게 한 아쉬움이 있다. ‘은유의 아침’은 폭설의 시간을 점묘의 기법처럼 완성해가는 노력이 돋보였지만 풍경묘사에 치중한 나머지 내면의 깊이가 결여된 것이 흠결로 지적됐다.
이들 두 작품에 비해 ‘고드름’은 신선한 시어 차용, 빈틈없는 구성력, 맺고 푸는 음보의 능수능란함이 좋다. 첫수 초장에서부터 팽팽한 긴장감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우리는 시적 완성도면에서 확실한 차이를 보인 ‘고드름’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함께 보내온 작품 ‘섬진초등학교’에서는 동시조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역량도 엿볼 수 있어 흐뭇하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시조의 이랑을 개척한다면 주목받는 시조시인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밖에도 트럭에 팔려가는 돼지를 시산제에서 다시 만난 운명을 익살과 해학으로 풀어낸 ‘어떤 소풍’, 단수정형에 천착한 ‘엄마 생각’ 등도 내일을 기약해볼 수 있는 신인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나머지 분들에게는 부단한 정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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