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당선작]
고무공 성자
어라, 쪼그만 녀석 여간내기 아니었네
엉덩이 뻥 내질러도, 허리를 작신 밟아도
도무지 쓰러지지 않네,
두 손 들 줄 모르네.
누르면 꼭 그만큼 이 악물고 튀어 올라
가슴속 숨긴 깃발 하늘 높이 흔들다가
다시금 지상에 내려
낮은 곳을 살피네.
마음조차 둥글어서 각진 세상 품은 걸까?
진자리 마른자리 아래로만 길을 찾는
속 텅 빈 고무공 성자,
걸음마저 탱탱하네.
▲ 고윤석씨(시조부문 당선자) ⓒ영주일보
[당선소감]
덤덤하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이 가슴 속에 회오리를 일으켰다.
까마득한 산 앞에서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멍하니 기다리던 나락 같은 날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투명한 햇살이 눈송이처럼 포근하게 안겨 오는 아침, 어느 산머리에 올라가 돌처럼 뭉친 응어리를 펑펑 쏟아 놓고 싶었다.
무슨 조화였는지 교실 창가에서 말라 죽어 가는 화분 속 꽃들을 보며 학생 때 외운 음보를 떠올려 ‘환경미화’란 제목으로 쓴 첫 작품이 중앙일보에 덜컥 실린 이후, 달콤하게 때론 처절하게 숱한 시간을 태웠다. 그렇게 열병을 앓다 ‘아, 나는 천재성이 없구나’라는 씁쓰름한 자각과 함께 10여 년 외도하다 방황의 발걸음이 이끈 곳이 다시 시조였다. 세상일이 그렇듯 시는 천재성보다 치열한 산고 속에서 태어난다는 깨달음과 함께.
기뻐해 주는 동료 시인들의 축하 전화를 받으며 고독감에 몸부림쳤던 이 여정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 이끌어주신 윤금초 선생님과 그리고 늘 내 일처럼 응원해주는 장은수 회장님, 조성문 시인, 박희정 시인, 임채성 시인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동문과 모든 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흔들리는 발걸음을 잡아 주고 현대시조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라는 채찍을 가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허리 숙여 인사를 올린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늘 깨어 삶과 사람을 노래하리라. 마지막으로 어머님과 장모님의 건강을 빌며 묵묵히 응원해주는 사랑하는 아내 조인옥과 지수, 지영, 지형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약력
1961년 충남 서산 출생.
한양대 졸업. 동국대 법학박사. 현직 교원.
제17회, 제18회 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문 동상 수상.
2017년 중앙시조 백일장 11월 장원 수상
[시조부문 심사평]
“평범한 사물의 속성 예리하게 포착, 주제를 단아하게 들어앉혀”
등단제도의 문제점이 꾸준히 지적되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도 화려한 등단을 꿈꾸는 작가들의 로망은 단연 신춘문예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번 응모작들은 신인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노련하고 탄탄한 수준급의 작품들이 많아 신인 등용문인 신춘문예 심사가 아니고 기성작가의 문학상 심사를 하는 듯 했다.
전국에서 보내온 400여 편의 작품을 한 편 한 편 읽어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행복했다. 하지만 단 한 편의 당선작을 고르기 위해 작품을 추려내면서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작품 수가 많기도 했지만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아 심사의 기준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도저히 판가름을 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신춘문예의 이름값에 가까운 신선하고 패기있는 작품이면서 정형시인 시조의 운율과 맛을 잘 살려낸 작품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손에서 내려놓기가 아쉽고 미안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서형국, 조우리, 조경섭, 이형남, 허순옥, 고윤석의 작품만 남겼다.
서형국의 ‘바람 우체부’는 감각적인 표현들이 신선했으나 마지막 수까지 끌고 가는 힘이 부족했다. 조우리의 ‘후드티’ 등 작품은 대부분 5수 6수 짜리였는데 끌고나가는 힘은 있었으나 압축과 절제라는 시조의 묘미를 살려내는데 다소 부족함이 있었다. 조경섭의 ‘세한도를 읽다’는 무리 없는 편안한 전개는 좋았으나 잡아끄는 매력이 조금 부족했다. 이형남의 ‘정물이 되는 저녁’은 이미지가 선명하고 깔끔했는데 당선작으로 선택하기에는 다소 가벼웠다.
마지막까지 엎치락뒤치락한 것은 허순옥과 고윤석의 작품이다. 허순옥의 ‘널문리 아리랑’은 시대성이 부각되는 작품으로 시조의 속성을 잘 살려냈지만 뒷받침하는 작품들의 힘이 조금 모자랐다. 고윤석의 작품은 어느 하나 뺄 것 없이 수준이 균일했다. 정형시 전통의 율격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쉽고 편안하게 이끌어나가는 품이 한두 해 닦은 실력이 아니다. 특히 ‘고무공 성자’는 평범한 사물의 속성을 예리하게 포착해 작품 안에 주제를 단아하게 들어앉혔다. 시조단의 내일을 이끌어나갈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당선에 들지 못한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해 드린다.
<심사위원 김영란 시조시인 대표집필>
출처 : 영주일보(http://www.youngjuilbo.com)
고무공 성자
어라, 쪼그만 녀석 여간내기 아니었네
엉덩이 뻥 내질러도, 허리를 작신 밟아도
도무지 쓰러지지 않네,
두 손 들 줄 모르네.
누르면 꼭 그만큼 이 악물고 튀어 올라
가슴속 숨긴 깃발 하늘 높이 흔들다가
다시금 지상에 내려
낮은 곳을 살피네.
마음조차 둥글어서 각진 세상 품은 걸까?
진자리 마른자리 아래로만 길을 찾는
속 텅 빈 고무공 성자,
걸음마저 탱탱하네.
▲ 고윤석씨(시조부문 당선자) ⓒ영주일보
[당선소감]
덤덤하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이 가슴 속에 회오리를 일으켰다.
까마득한 산 앞에서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멍하니 기다리던 나락 같은 날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투명한 햇살이 눈송이처럼 포근하게 안겨 오는 아침, 어느 산머리에 올라가 돌처럼 뭉친 응어리를 펑펑 쏟아 놓고 싶었다.
무슨 조화였는지 교실 창가에서 말라 죽어 가는 화분 속 꽃들을 보며 학생 때 외운 음보를 떠올려 ‘환경미화’란 제목으로 쓴 첫 작품이 중앙일보에 덜컥 실린 이후, 달콤하게 때론 처절하게 숱한 시간을 태웠다. 그렇게 열병을 앓다 ‘아, 나는 천재성이 없구나’라는 씁쓰름한 자각과 함께 10여 년 외도하다 방황의 발걸음이 이끈 곳이 다시 시조였다. 세상일이 그렇듯 시는 천재성보다 치열한 산고 속에서 태어난다는 깨달음과 함께.
기뻐해 주는 동료 시인들의 축하 전화를 받으며 고독감에 몸부림쳤던 이 여정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 이끌어주신 윤금초 선생님과 그리고 늘 내 일처럼 응원해주는 장은수 회장님, 조성문 시인, 박희정 시인, 임채성 시인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동문과 모든 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흔들리는 발걸음을 잡아 주고 현대시조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라는 채찍을 가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허리 숙여 인사를 올린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늘 깨어 삶과 사람을 노래하리라. 마지막으로 어머님과 장모님의 건강을 빌며 묵묵히 응원해주는 사랑하는 아내 조인옥과 지수, 지영, 지형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약력
1961년 충남 서산 출생.
한양대 졸업. 동국대 법학박사. 현직 교원.
제17회, 제18회 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문 동상 수상.
2017년 중앙시조 백일장 11월 장원 수상
[시조부문 심사평]
“평범한 사물의 속성 예리하게 포착, 주제를 단아하게 들어앉혀”
등단제도의 문제점이 꾸준히 지적되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도 화려한 등단을 꿈꾸는 작가들의 로망은 단연 신춘문예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번 응모작들은 신인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노련하고 탄탄한 수준급의 작품들이 많아 신인 등용문인 신춘문예 심사가 아니고 기성작가의 문학상 심사를 하는 듯 했다.
전국에서 보내온 400여 편의 작품을 한 편 한 편 읽어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행복했다. 하지만 단 한 편의 당선작을 고르기 위해 작품을 추려내면서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작품 수가 많기도 했지만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아 심사의 기준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도저히 판가름을 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신춘문예의 이름값에 가까운 신선하고 패기있는 작품이면서 정형시인 시조의 운율과 맛을 잘 살려낸 작품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손에서 내려놓기가 아쉽고 미안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서형국, 조우리, 조경섭, 이형남, 허순옥, 고윤석의 작품만 남겼다.
서형국의 ‘바람 우체부’는 감각적인 표현들이 신선했으나 마지막 수까지 끌고 가는 힘이 부족했다. 조우리의 ‘후드티’ 등 작품은 대부분 5수 6수 짜리였는데 끌고나가는 힘은 있었으나 압축과 절제라는 시조의 묘미를 살려내는데 다소 부족함이 있었다. 조경섭의 ‘세한도를 읽다’는 무리 없는 편안한 전개는 좋았으나 잡아끄는 매력이 조금 부족했다. 이형남의 ‘정물이 되는 저녁’은 이미지가 선명하고 깔끔했는데 당선작으로 선택하기에는 다소 가벼웠다.
마지막까지 엎치락뒤치락한 것은 허순옥과 고윤석의 작품이다. 허순옥의 ‘널문리 아리랑’은 시대성이 부각되는 작품으로 시조의 속성을 잘 살려냈지만 뒷받침하는 작품들의 힘이 조금 모자랐다. 고윤석의 작품은 어느 하나 뺄 것 없이 수준이 균일했다. 정형시 전통의 율격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쉽고 편안하게 이끌어나가는 품이 한두 해 닦은 실력이 아니다. 특히 ‘고무공 성자’는 평범한 사물의 속성을 예리하게 포착해 작품 안에 주제를 단아하게 들어앉혔다. 시조단의 내일을 이끌어나갈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당선에 들지 못한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해 드린다.
<심사위원 김영란 시조시인 대표집필>
출처 : 영주일보(http://www.youngjuilbo.com)
출처 : 문근영의 동시나무
글쓴이 : 희망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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