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감(未視感, jamais vu)*
오 은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사람이 울며불며 매달린다
여기 있습니다
사람이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없던 법이 생기던 순간,
몸이 무너졌다
마음이 무너졌다
폭삭
억장이 무너졌다
여기를 벗어난 적이 없는데
단 한 번도 여기에 속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처음처럼 한결같이 서툴렀다
사람이 사람을 에워싼다
둘러싸는 사람과 둘러싸이는 사람이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어색해한다
사람인데 사람인 게 어색하다
여기서 울던 사람이
길에 매달려 가까스로 걷는다
집이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집에 가는 길에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
익숙한 냄새가 난다
안녕
어떤 말들은 안녕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속이 상한 것은
겉은 멀쩡하기 위한 거지
겨우내 겨우 내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봄은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푹푹 꺼지는 땅 위에 사람이 서 있다
여기에 속하지 못한 사람이
여기에 있다
이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여기 있을 겁니다
————
*기시감(旣視感, dèjà vu)과 대조적인 개념으로 실제로 잘 알고 있으면서도 처음 경험하는 듯이 느끼는 기억 착각을 의미한다.
—제15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201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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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 1982년 전북 정읍 출생. 2002년 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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