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 2010 윤동주상 젊은작가상 〉

문근영 2018. 9. 11. 02:45

〈 2010 윤동주상 젊은작가상 〉

 

시나위  (외 1편)

 

  신동옥

 

 

 

   이 빠진 사발에 더운 물을 가득 채우라, 그 한가운데 대나무 가지를 분질러 세우라, 그 가지 삽시간에 꽃피울 테다, 이 담벼락 속엣말은 영영 상스러울 테니, 샅이 곪아 죽은 창기(娼妓)가 마지막 노래를 부르러 날아오리니, 찢긴 북을 불탄 피리를 내오라, 열손이 잘려 죽은 대장장이가 제 손톱을 거두어 오리니, 다시 쇳물에 식칼을 녹이라, 네 새끼 잡아먹은 찬 우물엔 시퍼런 구름이 내려 스미리니, 곡기를 끊으라 배꼽을 전폐(全廢)하라, 네 입은 네 입이 아니고 네 밑은 네 밑이 아니리니, 내 한마디 한마디에 네 온 핏줄은 수은으로 들끓을 테다, 행여 더러운 몸이라면 즐겨 흘레붙으라, 내 너희의 접붙은 몹쓸 것들을 들러붙은 그대로 도려내 다디단 술을 담그리니, 자자손손 그 술을 마셔 악업을 씻고 나서야 비로소 너희는 습생(濕生)이다, 내 너희의 온 몸뚱이 넋 껍데기를 뭉치고 다져 묻으리니, 삼라만상을 덮고도 남을 염통 하나 억겁을 거슬러 구천을 건너라, 가라, 지금이라도 늦고, 지금이 아니라도 늦된 버러지들아, 붓대에 붉은 기를 매달고 피바람에 춤추는 서로의 이마에 새기라, 큰 박수소리 한 번에 잊히고 말 이 더늠, 더늠, 더늠을.

 

 

 

외경(外經)  

 

 

 

나의 구약은 이제 마지막 절에 이르렀다

 

내게 올가미라도 주어진다면 어떤 짐승이건 삶아 바칠 제단에 촛대는 무성한데

 

폴랑폴랑 떠가는 저 나비 날개에 실어 그대 쪽으로

 

사그라뜨리지 못할 엽맥(葉脈) 꽤나 파묻은 날 많았다

 

사몽(似夢)의 칠엽수(七葉樹) 그늘 아래서,

 

돌아보면 그대라는 지문(指紋)을 새기느라 멀개진 눈알

 

봄꿈, 불룩한 종기가 온몸에 옮아붙은 절름발이 되어

 

가시는 걸음 걸음 환장이 되어

 

무슨 항복의 전령이나 되는 듯

 

고름 뚝뚝 듣는 갱지를 펼쳐 뿌리우리다

 

 

  

                              —계간《서시》201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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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옥 / 1977년 전남 고흥 출생. 2001년 《시와반시》로 등단. 2003년 한양대 국문과 졸업. 2008년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출간. 2008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음.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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