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이름을 훔치고 세상을 속이다니 / 박석무

문근영 2018. 7. 25.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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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훔치고 세상을 속이다니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은 동갑 나이로 영남의 좌도와 우도를 대표하는 학자였습니다. 같은 영남출신이면서도 그들은 한 차례도 만난 적은 없었지만 편지를 주고받으며 깊이 학문을 토론했습니다. 어느 날 남명이 “배우는 사람들이 명성만 도적질하고 세상을 속여먹는 경향이 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퇴계에게 보냈습니다. 이런 편지를 받은 퇴계가 답장으로 “배우는 사람들이 명성이나 도둑질하고 세상을 속여먹는 것에 관한 그대의 근심은 그대 혼자만의 근심이 아니외다”라는 답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퇴계는 명성이나 도둑질하고 세상을 속이는 일이야 참으로 미워할 악한 짓이지만, 위선적이라는 비난이 무섭고 세상을 속이고 이름을 도둑질한다는 비판을 두렵게만 여긴다면 공부하고 학문하는 일은 할 수 없을 것 아니냐는 반문을 하였습니다. 이런 대목을 읽은 다산은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고 나니 나도 모르게 기뻐서 뛰고 감탄하여 무릎을 치며 감격의 눈물을 펑펑 흘렸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진보하고 발전하려면 비난과 비판을 감수하면서라도 공부에 몰두할 수밖에 없어야 하고, 그러한 사람은 포용하여 가르쳐주고 지도해주어야 한다는 퇴계의 논지에 다산은 감동하고 말았습니다.

요즘 위선적인 생각도 없고, 이름을 훔치거나 세상을 속여먹을 뜻도 없이, 참으로 착하고 옳은 마음에서 이름을 숨기고 거액의 금액으로 불우이웃을 도운 착한 여배우가 악플에 휩싸인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느끼는 생각이 많아집니다. 퇴계의 편지에서 큰 감동을 받은 다산은, 뒷날 귀양살이하며 제자에게 보내준 글에서 이점을 더 자세히 부연하여 자신의 견해를 설명했습니다.

“위선적 학문(僞學)이라는 호칭을 피했다면 정자(程子)나 주자(朱子)도 그들의 도(道)를 세우지 못했을 것이고, 명예를 구한다는 비난을 두려워했다면 백이(伯夷)·숙제(叔齊)가 절개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며, 곧다는 명예를 얻으려 한다는 혐의를 멀리했다면 급암(汲暗)과 주운(朱雲)도 직신으로 간쟁하는 데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부모에게 효도하고 벼슬살이에 청렴하게 지낸 것을 경박한 무리들이 모두 명예를 구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니, 이러한 무리들을 위해 악을 따라야 할 것인가?”(爲盤山丁修七贈言)

통쾌한 다산의 견해입니다. 옳은 일이고 바른 일이라면 주위의 눈치보지 말고 직접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는 뜻입니다. 악플에 눈도 깜짝하지 않겠다는 여배우의 뜻이 너무 곱습니다. 지나친 결백성, 과도하게 남을 의식하다가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실사구시적 다산의 행동지침이 정말로 옳습니다. 옳고 바른 일만 계속하면 되지 않는가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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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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