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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왜 거품경제와 위기가 반복되는가 / 조영철

문근영 2018. 3. 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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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거품경제와 위기가 반복되는가


                                                       조 영 철(국회 산업예산분석팀장)

신자유주의의 중심 이론 중의 하나가 ‘효율적 자본시장이론’이다. 효율적 자본시장론은 1950~1960년대부터 경제학계에서 지배적 지위를 누렸고 신자유주의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데도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러나 최근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의 도전이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경제학자들의 효율적 자본시장에 대한 우상숭배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만일 효율적 자본시장론이 말하듯이 경제주체들이 합리적이고 자본시장이 완전하다면 거품경제와 거품이 꺼진 뒤 나타나는 금융위기 현상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 역사는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거품에서 신경제 기술주 거품과 현재의 부동산 거품-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품경제와 금융위기가 반복되었다.

경제주체가 합리적이고, 시장이 완전하다?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은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인 존 메이나드 케인스(John M. Keynes)에서 비롯됐다. 케인스는 인간이 합리적이지만은 않다고 보았다. 즉 인간의 본성에는 탐욕, 무지, 공포, 모방 등이 섞여 있으며, 이런 본성이 시장의 불확실성과 결합하는 경우 시장은 심각한 교란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케인스는 금융시장이 다른 시장보다 훨씬 취약해 사소한 징후에도 금융의 기초가 무너지고 다른 부문에까지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케인스의 이런 주장은 직관적 판단이었을 뿐 실증적 근거를 지닌 것이 아니었다.

행동경제학이 학문적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은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사이먼(Herbert Simon)에 의해서였다. 사이먼은 “인간이 합리적 계산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고 보는 것은 인간의 인지능력을 과대평가한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제한적 합리성’ 개념을 제시했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 공동수상자인 카네먼(Daniel Kahneman)과 트버스키(Amos Tversky)는 사이먼의 주장을 실험연구를 통해 실증적으로 가다듬어 사람들의 인식과 선택에 많은 편향과 오류, 비합리성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처럼 행동경제학은 자본시장의 투자자들이 합리적이라는 효율적 자본시장의 기본 가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물론 효율적 자본시장 이론도 ‘소음거래자’(noise traders)의 비합리적 투자 행동이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비합리적인 소음거래자들 때문에 주가가 기업의 실제 내재가치에서 이탈하면, 그런 상황 자체가 매력적인 투자 기회이므로 합리적 투자자들이 소음거래자를 역공하는 차익거래에 나서고 시장 왜곡은 조만간 교정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소음거래자를 역으로 이용하는 ‘차익거래자’(arbitrager)가 있더라도, 행동경제학은 ‘차익거래자 우화’가 현실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월가에서 신경제론자들이 목청을 높일 때 기술주 거품을 예측한 합리적 투자자들은 꽤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대개 차익거래에 나서지 못했다. 왜냐하면 차익거래에는 현실적으로 매우 높은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신경제 거품처럼 주가 왜곡이 예상 밖으로 오래 지속되면 차익거래자는 단기적으로 손실을 크게 볼 수도 있다. 포트폴리오 자산운영 전문가들이 차익거래에 나선 자기 행동을 확신하더라도 자산 관리를 맡긴 일반투자자들은 전문가의 차익거래를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투자기금이 차익거래로 단기 손실을 보면 일반투자자들은 초조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산운영을 맡긴 계약을 취소하고 자금을 빼내려 들 것이다. 결국 차익거래는 실패하고 소음거래자의 확신만 강화될 수 있다. 클린턴 정부 재무부장관이던 로버트 루빈(Robert Rubin)은 자신을 포함해 미국 주식시장 거품을 알고 있었던 전문가들이 많았지만, 시장의 상승국면이 장기간 지속되고 보니 시장에 회의론을 폈던 사람들은 신뢰성을 상실하고 말았다고 한다. 시장 거품을 확신하고 있어도 ‘더 큰 바보’(greater fools)의 존재로 시장 거품이 예상보다 더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대세를 거스르는 투자행동이 나오기 어렵고 합리적 투자자가 악화(惡貨)를 구축하기 힘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산운용 전문가들이 합리적일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인지심리학의 실험연구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일반인보다 정보 우위에 있을 뿐 일반인이나 마찬가지로 통계적인 판단 편향과 오류를 흔히 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은 과잉 확신 경향이 있어 자신이 소음거래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설문조사를 해 보면 90% 이상의 사람들이 자기 운전 실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니 전문가들의 과잉 확신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더욱이 자산운용자들은 3개월, 6개월마다 평가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투자 시계가 단기적이며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월가의 증권분석가들이 매도 의견을 내는 경우는 2% 미만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증권분석가들은 금융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지 결코 중립적인 전문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없다! 이성의 통제와 조율로 시장실패 막아야

차익거래의 현실적 제약, 전문가의 과잉 확신과 단기주의, 그리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금융계의 이해관계 등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경우 거품경제가 장기간 지속되다가 급속히 금융 불안정이 발생하는 어처구니없는 시장실패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스티글리츠(J. Stiglitz)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안 보이는 이유는 원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장은 만능이 아니다. 시장은 규제와 감독 장치라는 이성의 통제와 조율을 제대로 받을 때 시장경제의 역동성과 효율성도 온전히 작동할 수 있다.

인간은 고도의 불확실성에 집단적으로 내몰리는 경우, 튤립 거품이나 나찌즘같은 집단적 광기와 탐욕에 휩쓸릴 수 있는 그런 존재란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개개인은 세계화 경쟁이라는 불확실성에 전면적으로 노출되고 있는데, 시대정신은 개인의 합리성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신화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이며, 각자 합리적으로 알아서 살아남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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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영철
· 현 국회 산업예산분석팀장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고려대학교 경제학박사
· 저서 : <금융세계화와 한국경제의 진로>, 후마니타스, 2007 등 다수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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