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혹수심
박은정
못내 아름다워지고 싶은
두 사람을 생각한다 이것을 최후의 충돌이라고 말해도 될까
너의 빗장뼈를 열면
불길한 밤과 어울리는 음악이 있다
아무 의미가 없던 것들은 죽음으로써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가늠할 수 없는 먼 거리에서
두 개의 붉은 별이 다섯 개의 계곡을 지나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이리로 오고 있었다 솟아오른 바위를 넘고 드러난 나뭇잎을 헤치며 밤은 검고 차가워진다 이름붙일 수 없는 곳에서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녹았다가 다시 얼어붙는
두 사람이 만나
빛이 없어도 서로를 알아보는
알아볼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얘기를 하는
희미한 얼굴이 아른거렸다 이런 표정을 처음 본다는 듯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다 아무리 피해 다녀도 우리는 만날 거야 이걸 사람들은 징조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이라는
수음과 연대할 수밖에 없어서
위대한 왕은 죽어나가고
불구와 불수의 사이에서 무당이 헛기침을 할 때
눈앞의 거대한 행성이 부딪히는 광경
사라지고 있어
빛과 어둠이 없는 곳으로
우리의 주기가 같아지고 있어
저기, 강가에 보트가 묶여 있다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물고기들의 지느러미가 녹는
이제 그 무엇도 남지 않은 몸으로
검고 출렁이는 수면 위를
나란히 떠오르고 있다
아픔을 느낄 사이도 없이
축축한 피가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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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혹수심(熒惑守心) : 두 개의 붉은 별이 만나는 불길한 징조.
—《시산맥》201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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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 1975년 부산 출생. 2011년 《시인세계》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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