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형혹수심 / 박은정

문근영 2017. 10. 31. 12:41

형혹수심

 

   박은정

 

 

 

못내 아름다워지고 싶은

두 사람을 생각한다 이것을 최후의 충돌이라고 말해도 될까

 

너의 빗장뼈를 열면

불길한 밤과 어울리는 음악이 있다

 

아무 의미가 없던 것들은 죽음으로써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가늠할 수 없는 먼 거리에서

두 개의 붉은 별이 다섯 개의 계곡을 지나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이리로 오고 있었다 솟아오른 바위를 넘고 드러난 나뭇잎을 헤치며 밤은 검고 차가워진다 이름붙일 수 없는 곳에서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녹았다가 다시 얼어붙는

 

두 사람이 만나

빛이 없어도 서로를 알아보는

알아볼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얘기를 하는

 

희미한 얼굴이 아른거렸다 이런 표정을 처음 본다는 듯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다 아무리 피해 다녀도 우리는 만날 거야 이걸 사람들은 징조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이라는

수음과 연대할 수밖에 없어서

 

위대한 왕은 죽어나가고

불구와 불수의 사이에서 무당이 헛기침을 할 때

눈앞의 거대한 행성이 부딪히는 광경

 

사라지고 있어

빛과 어둠이 없는 곳으로

우리의 주기가 같아지고 있어

 

저기, 강가에 보트가 묶여 있다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물고기들의 지느러미가 녹는

 

이제 그 무엇도 남지 않은 몸으로

검고 출렁이는 수면 위를

 

나란히 떠오르고 있다

아픔을 느낄 사이도 없이

축축한 피가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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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혹수심(熒惑守心) : 두 개의 붉은 별이 만나는 불길한 징조.

 

 

 

 

                        —《시산맥》201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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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 1975년 부산 출생. 2011년 《시인세계》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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