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켜다
한세정
눈을 감고 입을 다무는 것은
이곳의 일이 아니다
손바닥을 마주 대고
맹세를 하는 것도
더 이상 이곳의 일이 아니다
오늘부터 꽃은 꽃이 아니며
꽃들은 모든 꽃말을
잃어버린다
이제 우리는
언 손바닥 위에서
가장 뜨겁게 피어나는 꽃봉오리를
감싸 안는 꽃받침이
되기로 한다
두 손에서 두 손으로
어둠을 밝히며
하나의 꽃이 켜질 때
온몸이 입술인 채로
새롭게 써질 꽃말을
호명한다
—《계간 파란》201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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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정 / 1978년 서울 출생. 200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입술의 문자』.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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