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꽃을 켜다 / 한세정

문근영 2017. 10. 31. 12:40

꽃을 켜다

 

   한세정

 

 

 

눈을 감고 입을 다무는 것은

이곳의 일이 아니다

손바닥을 마주 대고

맹세를 하는 것도

더 이상 이곳의 일이 아니다

 

오늘부터 꽃은 꽃이 아니며

꽃들은 모든 꽃말을

잃어버린다

 

이제 우리는

언 손바닥 위에서

가장 뜨겁게 피어나는 꽃봉오리를

감싸 안는 꽃받침이

되기로 한다

 

두 손에서 두 손으로

어둠을 밝히며

하나의 꽃이 켜질 때

 

온몸이 입술인 채로

새롭게 써질 꽃말을

호명한다

 

 

                      —《계간 파란》201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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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정 / 1978년 서울 출생. 200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입술의 문자』.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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