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편지를 쓰다 / 고경옥

문근영 2017. 9. 7. 01:04

편지를 쓰다

 

고경옥

 

 

  아파트 정문 앞 플라타너스 나뭇잎 사이로

  빨간 우체통이 서 있다

 

  그 앞을 오가며

  아무도 모르게 그 속에다

  낙엽이나 꽃잎을 집어넣을 때처럼

  남편의 몸속에 쓰윽 손을 넣는 밤이 있다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낙엽이나 꽃잎 같은 노래가 흐르는 몸

  왜 그 순간 갑자기 편지가 쓰고 싶었던 걸까

  분명 속으로만 되뇌었을 뿐인데

 

  벌떡,

  남편이 날 하얀 종이처럼 펼쳐놓고

  편지를 쓴다

 

  글자가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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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안녕, 프로메테우스』/『현대시학』 시인선 003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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