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금정산성(金井山城)

문근영 2017. 6. 10. 09:05

금정산성(金井山城)




남문


동문


서문 주변


원효봉-고담봉 방향(북문 주변)


 4망루-3망루 방향 성곽


4망루-3망루 방향 성곽


지정 번호; 사적 215

소재지;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43 외 금정산

지정일; 197129

시대; 삼국시대, 조선 숙종 29(1703)

분류; 성곽

내용; 금정산성은 조선시대에 돌로 쌓은 석성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을 겪고 난 후인 1703(숙종 29)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쌓은 곳이다. 전체 길이는 약 17km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1703(숙종 29)에 경상 감사(慶尙監司; 2) 조태동(趙泰東)의 건의로 동래 부사 박태항(朴泰恒; 1647~1737)에게 책임지어 쌓게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에 앞서 1667(현종 8) 통제사(統制使; 2) 이지형(李枝馨)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 지방이 내려다보이는 중요한 곳에 있어 바다로 침입하는 적에 대비한 성임을 알 수 있으며, 성의 크기나 성벽을 쌓은 양식으로 볼 때 처음 성을 쌓은 시기는 보다 앞선 시기까지도 올려 볼 수 있다.

   1707(숙종 33)에는 성이 너무 넓다 해서 성의 중간에 남북을 구분하는 성을 쌓았고, 1774(영조 50)에는 성이 너무 커서 지키기 어렵다 하여 일단 폐지하였다. 1806(순조 6)에 성을 다시 고쳤으며, 성벽은 화강암을 자연석 그대로 이용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동문·서문·남문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에 북문을 복원하였다.

특기 사항; 금정산성은 현재 4의 성벽이 남아 있으나, 조선 후기에 도성과 주변의 대규모 방어 시설을 충실히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산성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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