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한국 문화재 수난사>(53) / 새벽에 발견한 황금 보따리

문근영 2017. 4. 17. 09:55

<한국 문화재 수난사>(53) /

새벽에 발견한 황금 보따리



미술품의 도난이나 위조 행위는 유적지에서 고대 유물을 절취하는 도굴 행위와 함께 외국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미술품 범죄 사건이다. 어디서나간에 그 범행 동기는 손쉽게 큰돈을 벌려는 일반적인 범죄 심리가 지배적이지만 경우에 따라선 질투와 적의 혹은 영웅심에서 발단된 예도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일어난 최대의 세계적인 미술품 도난 사건은 1911821일에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에서 발생했던 유명한 모나리자의 실종이었다.


범행 2년 후인 191311월에 체포된 범인 페루지아(루브르 미술관의 고용인이었던 이탈리아 청년)는 지난날 이탈리아를 짓밟고 이탈리아의 문화재와 미술품들을 마구 약탈해갔던 나폴레옹에 대한 복수였다고 정치적이고 영웅적인 동기를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범인은 모나리자를 이탈리아로 숨겨 갖고 가 나는 가난하다.”면서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10만 불에 팔려고 하다가 붙잡혔던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고 가장 유명한 기록은 19271110일 밤에 경주 박물관에서 발생한 금관총 출토 유물의 도난 사건이다. 도난 사실이 밝혀진 것은 11일 아침이었다. 범인은 유물 진열실의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서 금관을 제외한 나머지 순금제 유물인 과대·요패·귀고리·팔찌·반지 등을 몽땅 싸 갖고 사라졌다. 황금 유물만 노린 도둑이었다. 차마 금관까지는 손댈 수 없었는지 아니면 싸 갖고 가기가 거추장스러워서였는지 어쨌든 그것만 무사했다.


신라 왕릉에서 출토된 황금 유물 도난 사실이 알려지자 경주 시내는 발칵 뒤집혔다. 신문들은 약 1만 원 상당의 신라 귀금속품이 도난당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용의자 몇 명이 검거되었으나 그들은 범행을 부인했고 증거도 없었다. 범인들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도난당한 순금 유물들이 곧바로 일본이나 어디로 유출되지나 않았을까? 혹은 범인이 단순한 금덩어리로 만들어 팔아먹으려고 유물의 형태를 짓이겨버리는 최악의 사태가 나지는 않았을까?’


경찰보다 경주 시민들이 더 초초해 했다.


경찰과 박물관 측에선 범인이 보통 무식한 도둑일지 모른다는 전제 하에 천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금세공품은 아무리 녹여 갖고 있어도 요즘의 금과 달라서 금방 알아볼 수 있다.”고 헛소문을 퍼뜨렸다. 또 그때만 해도 무덤 속에서 나온 물건을 집안에 갖고 들어오면 반드시 식구 중의 누가 앓거나 변고가 생긴다는 미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경찰은 앓는 사람이 있는 집이나 무슨 변고가 있는 집을 특히 주목해서 수사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는 유언도 퍼뜨려 범인에 대한 심리적인 작전도 폈다. 그러나 모두가 허사였다.


해가 바뀌어 1928년 봄이 되어도 범인과 도난 유물은 오리무중이었다. 경찰 수사는 절망적이었다. 경주로 유람객을 유치하는 데 다시없는 중요한 박물관 보물을 영원히 잃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 경주 번영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도난당한 물건의 소재지나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람에겐 1,000원의 사례금을 내겠다고 발표했다. 도난 미술품에 대한 국내 최초의 거액 현상금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정보도 단서도 잡히지 않았다. 안타깝게 5개월이 지났다.


그러던 520일 새벽 5시께의 일이었다. 경주 시내에서 변소를 치러 다니던 한 노인이 경찰서장 관사 앞을 지나다가 대문 기둥 밑에 놓여 진 흰 백로지로 싼 이상한 보따리를 발견했다. 다가가서 지겟작대기로 넌지시 찔러보니 속에서 찰그락하고 금속음이 울리고, 싼 종이의 한 켠이 벌어졌다. 그 순간 노인은 깜짝 놀랐다. 번쩍이는 황금빛, 숨을 죽이고 물건을 다시 살펴보던 노인에게 퍼뜩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박물관 도난품?


노인은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황금 보따리를 들어 가슴에 안고 거름지게를 진 채 경찰서로 곧장 달려가서 숙직실 문을 두드렸다.


노인이 들고 온 보따리는 과연 경주 박물관에서 도난당했던 그 순금 유물들이었다. 기적의 생환이었으나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범인은 반지 하나와 그 밖의 순금 장식 몇 점만 갖고 나머지를 고스란히 경찰서장 관사 문밖에 갖다놓고 다시 종적을 감추었다.


[금관총 금제 허리띠] 국보 88




현재 국보 88로 지정돼 있는 금관총 과대와 요패가 그 때 도난당했다가 되돌아온 물건이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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