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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 탑(海印寺 弘濟庵 四溟大師塔) 및 석장비(石藏碑)

문근영 2017. 3. 17. 10:40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 탑(海印寺 弘濟庵 四溟大師塔) 및 석장비(石藏碑)



사명대사의 사리를 봉안한 종 모양 부도


사명대사의 부도탑


사명대사 부도 기단의 연꽃 무늬


사명대사의 석장비



지정 번호; 보물 1301

소재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54 가야산 해인사 홍제암(치인리 21)

지정일; 2000928

시대; 조선 광해군 4(1612)

분류; 승탑 및 석비

내용;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 탑 및 석장비는 해인사 홍제암에 있는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의 탑() 및 비()이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과 정유재란(丁酉再亂; 1597) 때 승병장으로서 큰 공을 세운 승려로 이곳 홍제암은 사명대사가 수도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다. 홍제암이라는 암자 이름은 사명대사 입적 후 광해군(光海君)이 내린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라는 시호에서 따온 것이다.

  홍제암의 북동쪽 약 20m 지점의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명대사 탑은 조선 후기를 대표할 수 있는 거대한 종 모양의 탑으로 당당한 형태와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기단은 하나의 돌로 2단을 이루었는데, 아랫단은 사각형이고 위단은 둥근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그 위에 종 모양의 몸돌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탑의 꼭대기에는 연꽃 봉오리 모양의 보주(寶珠)를 올려놓았다.

  사명대사 석장비는 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으로 1612(광해군 4)에 세웠으며,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지은 허균(許筠; 1569~1618)이 비문을 지었다. 일제시대(1943) , 비문의 내용이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하여 일본인 합천 경찰서장이 네 조각으로 깨뜨린 것을 1958년에 다시 접합하여 세웠다. 석장비는 현존하는 사명대사 비 가운데 가장 먼저 건립되었으며, 문장이 매우 빼어날 뿐 아니라 비문에 대사의 행적이 비교적 소상하게 적혀 있어 역사적인 가치도 높다.

특기 사항; 사명대사의 탑과 석장비는 본래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던 것으로, 이러한 형식은 신라시대 이래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학문적인 의의가 있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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