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재 수난사>(45) /
구미 미술관에 들어가 있는 한국 불화(佛畵)들
1970년대 초 국립 중앙박물관은 구미 각국의 주요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의 불화들 가운데 현재 국내에선 하나도 확실한 것이 보존돼 있지 못한 고려시대의 것들이 적지 않음을 처음으로 확인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된 '수월관음도'.
관음보살은 어둠 속의 빛처럼 앉아 있고 발치에는 예배하는 여러 중생들이 작게 묘사돼 있다.
사진=국립 중앙박물관 제공
1971년 7월, 미국의 여러 미술관을 시찰하러 떠났던 황수영(黃壽永; 1918∼2011) 관장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동양관의 일본인 불화 전문가 호리오카로부터 한국 전문가의 평가와 의견을 듣고 싶다는 구미 미술관 소장의 한국 불화 약 50점의 사진을 복사해 받았다.
황 관장이 미국에서 가져온 한국 불화의 사진을 검토한 박물관의 전문가 최순우(崔淳雨; 1916∼1984)·정양모(鄭良謨; 1934~ ) 학예 연구관은 그 중의 적어도 5∼6점은 분명히 고려 때 것이고, 다른 10여 점은 조선 전기 것으로 보았다. 호리오카가 조사한 구미의 한국 불화 소장 미술관은 그가 연구원으로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비롯해서 미국 안의 프리어 미술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호놀룰루 미술관 외에 영국의 대영박물관,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미술관, 독일의 베를린 미술관, 벨기에의 브뤼셀 미술관 등이었다.
언제 어떤 경로로 반출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기왕에 한국에서 유출된, 국내에도 없는 귀중한 불화들이 구미의 큰 미술관에 잘 보존돼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오늘의 국내 학도로서 우리의 옛 불화를 연구하려면 불가피 일본이나 구미로 찾아가야 하게 되었으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외국의 미술관 혹은 개인에게 유출돼 있는 한국 불화의 대부분이 구한말 이후 일제 식민지 아래에서 일본인 무법자들에게 약탈당했거나 일부 어리석은 중들이 그들에게 매수되어 헐값으로 팔아넘긴 것들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중의 일부가 일본을 통해서 구미로 전매돼 나간 것이다.
구한말 이후, 이 땅에서 각종 역사 문화재 약탈로 일확천금을 꿈꾸던 일본인 무법자들에게 가장 손쉽고 가벼운 약탈 대상의 하나가 불화였다. 큰 불상이나 석탑 같은 것을 불법 반출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랐지만 불화는 돌돌 말면 한 손에 잡히는 가벼운 물건이었다.
한 예로 양산 통도시의 불화들이 일본인 무법자에게 약탈당한 것은 1900년을 전후한 때였다. 1903년 2월에 일본에서 발행된 <고고계>란 잡지에 당시 도쿄 제실박물관에서 전시되었던 불법 반출의 통도사 불화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다.
“이 조선 불화는 본시 경남 통도사에 있던 것으로 본존 2체 외에 성상 혹은 천부 수호신 같은 것도 있다. 또 악기를 갖고 있는 보살상 같은 것도 있다. 시대는 3백 년 전쯤 되어 보이며 착색이 선미하고 묘법도 훌륭하여 한번 볼 만하다.”
한국에서의 일본인들의 문화재 약탈과 일본으로의 불법 반출은 구한말에 서울에 와 있던 서양인 외교관과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비난의 소리가 높았던 것 같다. 1906년 12월의 황태자 혼례식에 특사로 왔던 당시 일본 궁내상 다나카 미쓰아키(田中光顯; 1843~1939)가 개성 남쪽의 풍덕에서 경천사 십층 석탑을 일제의 무력과 일본인 골동상을 앞세워 약탈해 갔던 사건은 이미 앞에서 소개했지만, 1907년 5월 28일자 일본의 <후쿠오카 일일신문>에 보도되었던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1970년대 초 서울의 국사 편찬 위원회 자료실에서 발견되었다.
“과반, 한국의 황태자 전하 어혼례 때 특사로 파견되었던 다나카 궁내상은 그 때 한국의 역사상 국보인 백옥제(흰대리석) 다층탑이 둘이나 있는 것을 보고, 그 진품에 침을 흘린 나머지 둘 중의 하나인 경기도 풍덕에 있는 것을 지난 2월 4일 서울에 거주하고 고물상(일본인)으로 하여금 군민의 저항을 물리치고 다소의 무력도 사용하여 무난히 인천으로 빼내고, 3월 15일 도쿄에 도착시켰는데, 이 탑은 값으로 치면 200만 원을 호가할 만큼 희귀한 진품인 데다가 다나카가 그것을 반출해 오는 과정의 수속이 의심스러워 목하 미국에서도 이 문제에 관해 비난의 소리가 높다는 것이고, 그 곳(미국)에 체재 중인 구로키 다메모토(黑木爲楨; 1844~1923) 대장 같은 이가 매우 난처한 처지에 몰려 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한국 문화재 약탈 내막을 폭로한 미국의 신문 보도에 당시 일본 정부는 몹시 당황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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