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한국 문화재 수난사>(26) / 한송사(寒松寺) 터 석조 보살 좌상(石造菩薩坐像)의 수난사

문근영 2017. 2. 16. 12:18

<한국 문화재 수난사>(26) /

한송사(寒松寺) 터 석조 보살 좌상(石造菩薩坐像)의 수난사



[강릉 한송사지 석조 보살 좌상] 국보 124호


한일협정으로 1966년에 일본 정부가 한국에 반환한 과거의 약탈 및 불법 반출 문화재 가운데는 일부 도쿄 국립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5점의 불상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그 중에 귀국 즉시 국보 124호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희귀한 백대리석 조각품인 보살 좌상이 있다. 좌고 92.4cm, 목이 부러졌으나 깨끗이 붙였고, 이마의 백호로 끼워졌던 큰 보옥을 누군가에게 탈취 당했을 때의 상처를 제외하면 거의 완전한 형태의 걸작 미술품이다. 원위치는 강원도 강릉시 성내동의 한송사 터. 1880년께의 어느 날 밤, 무서운 태풍으로 절간 건물들이 완전히 찌부러진 뒤로 백옥(백대리석)으로 만든 불상 둘과 비신을 잃은 귀부만이 남았더라는 전설의 절터이다.


동해안의 황량한 한송사 절터의 두 백옥 불상(보살 좌상) 중의 하나는 머리가 부러져 나간 데다 오른쪽 팔도 무참히 깨져 나간 상태였으나 또 하나는 크게 파손된 데가 없는 완전한 상이었다. 완전한 보살 좌상은 한송사가 폐사가 된 후, 즉시 인근의 칠성암(七星庵)이란 작은 암자에서 가져갔다. 그것은 사암 사이에 흔히 있는 자연스런 이전이었다. 그리고 약 30년이 지났을 때 그 완전한 백옥 불상을 찾아 일본으로 빼돌리려는 일본인 무법자가 나타났다. 한일합방의 직후인 19113월의 일이었다.


당시 강릉 측후소의 기사였다는 설이 있는 와다 유지(和田雄治; 1859~1918)라는 일본인이 한송사 터의 모래밭에 몹시 파괴된 불완전한 형태로 버려져 있던 백옥불에 완전한 짝이 있었다는 말을 듣자 한 마을 사람을 잡고 만일 그 행방을 수소문해서 알려주면 후하게 사례하겠다고 은밀히 유혹했다. 돈이 유혹을 받은 마을 사람은 즉시 사방으로 탐색한 끝에 마침내 그 소재지를 확인해냈다. 그 정보는 즉각 와다에게 제공되었고, 반출 음모는 당장 행동으로 옮겨졌다. 그는 한송사 터에서 약 30리 떨어진 언덕의 칠성암을 곧바로 찾아갔다. 그리곤 암자를 지키고 있던 중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한송사 터에서 옮겨온 불상을 양도하라고 윽박질렀다. 거부했다가는 어떤 화를 입게 될지 몰라 겁을 집어먹은 중은 겨우 불상을 천좌시키려면 반드시 격식을 갖춘 예불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조건을 말했을 뿐이었다.


일본인 악당은 매수금으로 미리 준비했던 몇 푼의 돈을 칠성암의 허약한 중에게 집어주고는 암자 밖의 풀숲에 모셔져 있던 걸작 백옥 불상을 아무런 장애 없이 탈취할 수 있었다. 그 때 이미 머리는 부러져 있었다.


탈취자 와다는 그것을 본국 정부에 대한 충성과 자신의 입명 출세를 계산한 이용물로 삼을 속셈이었다. 그는 장정 두 사람이면 거뜬히 들 수 있는 좌고 1m 미만의 석불을 어렵지 않게 주문진 선착장으로 운반한 후, 배에 실어 도쿄의 제실 박물관(지금의 국립 박물관)으로 직행시켰다. 191110월의 일이었다. 그 후 이 석불은 재선 와다가 기증함이란 카드와 함께 55년 동안이나 도쿄 국립 박물관에 진열돼 있었다.


이상이 1966년에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며 일본 정부가 한국에 반환한 문화재들 속의 걸작 대리석 조각품으로 귀국 즉시 국보가 된 석조 보살 좌상의 수난의 내력이다. 다행히 강릉에서의 불법 반출 당시의 확실한 기록과 내막이 19121월에 발행된 일본의 <고고학 잡지>에 소개돼 있어 일제 초기의 맹랑한 일본인 악당이었던 와다의 범행 내막을 정확히 알 수 있는데 그 때 그 불상의 반출자인 재선 모 씨(와다를 지칭)로부터 발견 및 반출 경위를 들었다.”는 일본인 필자는 또, “불상이 (강릉에서) 도쿄로 반출된다고 할 때에 나는 그 보물을 볼 수 있었다. 기념으로 사진도 찍었다.”고 덧붙이고 있다.


[강릉 한송사지 석조 보살 좌상] 보물 81호





한편 와다는 머리와 오른팔이 깨져 나간 탓으로 일본인 무법자들에게 유린당하지 않고 한송사 옛 터 모래밭에 그대로 남아 있던 불완전 백옥불까지도 강릉 측후소 마당에 실어다 놓았다. 그 상태만으로도 귀중한 고려시대의 백대리석 조각품이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 오랫동안 강릉시 명주군청 마당에 옮겨져 있다가 현재는 강릉 향토 사료관에서 보호되고 있다. 보물 81호로 지정돼 있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