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재 수난사>(17) /
반출 경위가 인멸된 원공국사 승묘탑(圓空國師 勝妙塔)
앞의 양평 보리사(菩提寺) 터 현기 부도탑(玄機浮屠塔)은 서울에서 찾아갔던 일본인들의 끈덕진 강청에 따라 상원사(上院寺) 주지가 그 전의 소유권 주장자인 3명의 마을 사람들과 공동으로 팔아먹은 것이었다고 당시 일본 경찰은 조사, 보고했었다. 그러나 그 때의 일본인들은 이 땅을 강점한 일제의 강세를 배경으로 거리낌 없이 조선인을 위협하고 공갈하며 최소의 돈으로 그들을 매수함으로써 값나갈 유물을 아무 데서나 불법 반출한 악질적인 고물상(골동상) 패거리였다. 그들은 양평의 현장에서 현기 부도를 120원으로 사 놓고는 서울에 앉아서 또 다른 일본인에게 500원에 팔아넘김으로써 당장 380원을 벌어들였다. 이런 일은 일제 초기엔 비일비재했다.
일찍이 이 땅에 건너왔던 일본인들 가운데 일부 악질배들은 앞서와 같은 수법의 문화재 반출 및 큰 부자가 되었고, 그들은 1945년 일제가 패망하여 철수할 때까지 큰소리치며 이 땅에서 살았다. 그때까지 각계각층의 일본인들이 개인적으로 점유하고 있던 한국 문화재의 종류와 수는 부지기수였다. 그 중엔 총독부 법령에 따라 등록된 것도 많았다. 해방 전까지 서울 남대문 시장 근처에 살았던 와다 미노루(和田 稔)가 그의 정원에 갖다놓고 즐겼던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居頓寺 圓空國師 勝妙塔)’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이웃인 남산동의 닛타 요시사다(新田義貞)가 몰래 점유하고 있었던 보리사 터의 현기 부도탑과는 달리 전문가들의 조사·평가에 따라 1938년 10월 이후 이미 고려 초기의 중요한 유물로 지정돼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원위치인 강원도 원성군 부론면 정산리의 거돈사 터에서 언제 어떤 일본인들이 어떤 수법으로 서울로 반출해 왔고, 또 어떤 경로로 남대문께의 와다의 집으로 팔려 들어갔었는지의 경위를 알려주는 기록이나 자료는 하나도 없다. 보리사 터의 그것과는 정반대의 수난 조건을 갖고 있다.
보리사 터의 것은 반출 경위는 뻔한 데 물건이 서울에서 행방불명됐고, 이 거돈사 터의 것은 서울에서 줄곧 있는 곳이 확인돼 있었으나 반출 경위와 그 증거가 완전히 인멸돼 있다. 그러나 둘은 공통점이 있다. 다 같이 지대석까지 일괄하여 반출하지 않고, 위의 탑신부만 들어옴으로써 지금 이화여대에 있는 보리사 터의 부도나 경복궁에 있는 거돈사 터의 승묘탑이 모두 지대석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돈사 터의 원공국사 승묘탑은 해방 후 보리사 터의 현기 부도탑과는 또 다른 경로로 현재의 위치인 경복궁의 석물군 속에 들어갔다. 그것은 1948년의 일이었다. 당시 미 군정청의 미술·고적 담당 고문으로 채핀이라는 미국인 할머니가 와 있었다. 그녀의 출근 근무처는 국립박물관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과거에 총독부가 지정한 문화재의 소재지를 재확인하려고 일본인 와다가 살던 집을 찾아 남대문 시장께로 발길을 돌렸다가 거기에 분명이 있어야 할 원공국사 승묘탑이 어디론가 없어진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해방 후에 누군가가 실어 갔다는 것이었다.
채핀은 경복궁으로 돌아오자 당시 박물관 연구원이었던 황수영(黃壽永; 1918∼2011)에게 어찌된 영문인가를 물었다. 그러나 누구도 미처 몰랐던 일이었다. 놀란 그들은 즉시 사라진 지정 문화재의 행방을 조사, 추적했다. 몇몇 증언으로 승묘탑의 행선지는 금세 밝혀졌다. 이 아무개라는 사람이 성북동 골짜기의 별장에 실어다가 계류와 정자 옆에 세워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미 국가에 등록돼 있는 문화재인 것을 모르고 있던 이 아무개는 박물관 측의 설명에 따라 순순히 탑을 도로 내놓았고, 승묘탑은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현재 보물 190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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