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전 구형왕릉(傳 仇衡王陵)
전경
전경
전경
전경
표지석
입구
석물
호릉각
호릉각
덕양전
덕양전 홍살문
덕양전 출입문
제례
•지정 번호; 사적 214호
•소재지;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산16
•지정일; 1971년 2월 9일
•시대; 삼국시대
•분류; 왕릉
•내용; 산청 전 구형왕릉은 가야(伽倻) 10대 임금인 구형왕(생몰년 미상, 재위 기간 521~532)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는 돌무덤이다. 구형왕은 구해(仇亥) 또는 양왕(讓王)이라 하는데 김유신(金庾信; 595∼673)의 증조부이다. 521년(법흥왕 8) 가야의 왕이 되어 532년(법흥왕 19) 신라 법흥왕(法興王; ?~540, 재위 기간 514~540)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다.
전 구형왕릉을 둘러싸고 종래에는 석탑이라는 설과 왕릉이라는 2가지 설이 있었다. 이것을 탑으로 보는 이유는 이와 비슷한 것이 안동과 의성 지방에 분포하고 있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 왕릉이라는 근거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산음현 산천조(山陰縣 山川條)’에 ‘현의 40리 산중에 돌로 쌓은 구룡이 있는데 4면에 모두 층급이 있고 세속에는 왕릉이라 전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무덤에 왕명을 붙인 기록은 조선 순조(純祖) 때 교리(校理; 홍문관의 정5품)를 지낸 홍의영(洪儀泳; 1750∼1815)의 <왕산심릉기(王山尋陵記)>에 처음 보이는데 무덤의 서쪽에 왕산사(王山寺)라는 절이 있어 절에 전해오는 <왕산사기(王山寺記)>에 구형왕릉이라 기록되었다고 하였다.
전 구형왕릉은 일반 무덤과는 달리 경사진 언덕의 중간에 총 높이 7.15m의 기단식 석단을 이루고 있다. 앞에서 보면 7단이고, 뒷면은 비탈진 경사를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평지의 피라미드식 층단을 만든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무덤의 정상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돌무덤의 중앙에는 ‘駕洛國讓王陵(가락국 양왕릉)’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고, 그 앞에 석물들이 있는데 이것은 최근에 세운 시설물이다.
•특기 사항; 1793년(정조 17)에는 왕산사에서 전해오던 나무상자에서 발견된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 옷, 활 등을 보존하기 위해 ‘덕양전(德讓殿; 경남 문화재자료 50호)’이라는 전각(殿閣)을 짓고, 오늘날까지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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