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잔치하듯이 이웃과 더불어 살아온 겨레문화의 속살
[서평] ≪하루하루가 잔치로세≫, 김영조, 인물과사상사
세화엔터테인먼트 대표 김호심
옛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았을까? 백성은, 선비는, 임금은…. 아니 그것이 지금 현대 사회의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그러나 여기 “옛 사람들의 삶”에서 향기를 찾아내어 알려주는 책이 나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바로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이 쓰고, 인물과사상사(대표 강준우)에서 펴낸 ≪하루하루가 잔치로세≫가 그 책이다. 김영조 소장은 8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인터넷으로 쓰는 한국문화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를 수많은 사람에게 보내왔다. 그것들 가운데 365일에 맞게 골라 곁에 두고 볼 수 있게 엮어낸 것이 이 책이다.
책은 우선 명절과 24절기를 빠짐없이 챙기고 그날에 행하던 옛 사람들의 아름다운 풍속을 따스한 시선으로 소개하고 있다. “입춘엔 적선공덕행이라는 독특한 세시풍속이 있습니다. 적선공덕행은 입춘이나 대보름날 전날 밤에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해야 일 년 내내 액을 면한다는 풍속이지요. 밤중에 몰래 냇물에 가 건너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거친 길을 곱게 다듬어놓는다든지, 다리 밑 거지 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 일 따위를 실천하는 것이지요.” (71쪽)
그뿐만 아니라 정월 초이레의 “이레놀음”, 입동의 “치계미”, 동지의 “고수레” 같은 풍습을 소개하면서 김남주 시인이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을 노래했다면서 우리가 잊고 지내던 더불어 사는 정신을 곳곳에서 느끼게 해준다.
또한 “자살하는 백성이 나오지 않게 하라.”(166쪽)는 임금의 명령에 따라 수해 등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휼전이 제공되고, 가난해서 혼인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나라에서 혼수를 마련해주는 광경은 현대사회에도 깨우쳐주는 바가 크다.
▲ 조선시대 뇌물을 받은 관리는 혜정교에서 팽형으로 벌을 받았다 ⓒ 이무성
▲ 조선시대 뇌물을 받은 관리는 혜정교에서 팽형으로 벌을 받았다 ⓒ 이무성
그리고 문익점은 목화씨를 ‘훔쳐’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253쪽)나 세종임금이 겨레의 스승이라는 뜻에서 스승의 날을 세종 탄신일인 5월 15일로 정한 사연(210쪽), 이덕무의 독특한 주사(술버릇) 구별법(506쪽), 4세기 중엽 성탄절은 동지와 같은 날이었다(532쪽)는 사실도 흥미를 돋운다.
“정월보름 달떡이요, 이월한식 송편이요, 삼월삼짇 쑥떡이로다. 사월팔일 느티떡 오월단오에 수리치떡 유월유두에 밀전병이라, 칠월칠석에 수단이오 팔월가위 오려송편 구월구일 국화떡이라 시월상달 무시루떡 동짓달 새알병요, 섣달에 골무떡이라.”
이러한 노래가 있을 정도로 달마다 다른 떡을 해먹으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오던 우리 겨레의 인정 많고 아름다운 풍습을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다. 잔치문화도 사라지고 오로지 노동과 여가라는 말만 남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래서 <하루하루가 잔치로세>는 겨레문화 속살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뜻에서 매우 의미가 깊은 책이다.
▲ 단순함 속에 과학적 원리가 담긴 지게
▲ 백성의 삶 / 거리의 악사들, 소박한 미투리, 씨앗 주머니 부개기(왼쪽부터)
이 책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풍습은 물론이고 남자현 애국지사처럼 일제강점기에 조국광복을 위해 온몸을 불사른 분들에 대한 소개도 곁들여져 세시풍속과 함께 민족문화의 탄탄한 정신도 엿보이게 하는 세심함에 새삼 지은이의 겨레사랑 정신을 느끼게 해준다.
▲ 무명지 잘라 조선독립원을 쓰는 남자현 여사 ⓒ 이무성
문체는 요즘 보기 드문 “~입니다.” 체로 읽기가 편하며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지은이의 정갈한 토박이말도 다른 책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별한 모습이다. 365일을 다룬 책이라 약간 두께가 있지만 우리문화를 쉽게 풀어쓰는 지은이 특유의 글쓰기로 읽는 재미가 쏠쏠하여 책을 손에 한번 들면 365일을 다 읽을 때까지 내려놓을 수 없을 정도로 짜임새 있게 구성된 것이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다. 거기에 지은이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며 그림을 그려온 이무성 화백(한국문화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삽화 작가)의 토속적인 삽화는 읽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24절기, 4대 명절, 속절(俗節)의 현대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곳곳에 이와 관련한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하는 등 누대에 걸쳐 이룩한 겨레문화의 속살을 읽어가다 보면 ‘하루하루가 잔치로세’라는 제목처럼 이웃과 더불어 잔치를 하듯이 더불어 살아오던 인정 많고 아름다운 품성을 지닌 우리 조상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
모든 겨레가 우리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날까지 정성을 쏟을 터
[대담] ≪하루하루가 잔치로세≫ 지은이 김영조
- 이런 글을 날마다 써왔다고? 원고 마감이란 것이 피를 말리는 일임은 글을 써본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한다. 그런데 날마다 원고마감을 한 것이 사실인가?
“날마다 써왔다. 어쩌면 내가 미쳤는지도 모른다. 우리문화가 이렇게 훌륭한 것인데도 정작 제 겨레는 외면하더라. 그래서 나라도 나서서 그걸 알리려 한 것뿐이다. 물론 처음 시작할 때 주변 사람들은 오래 못 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 8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써서 오늘 현재 (2011.10.13) 2,181회를 맞았다. 내가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일이다.
물론 도중에 힘들어 여러 번 포기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날마다 ‘얼레빗 편지’를 받고 있는 수많은 독자를 생각하며 하루하루 글을 써나갔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터득했고 우리문화의 아름다운 속살에 반했다. 일을 사랑하면 그 어떤 고통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가 내 곁에 있는 한 이 일은 죽는 날까지 계속 할 것이다.”
- 얼레빗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어려운 점은 먼저 글감 찾기이다. 독자들에게 쉽고도 재미있고 유익한 글을 보내주려면 좋은 자료를 토대로 글을 써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 날마다 다른 주제로 글을 쓰려고 자료를 찾아 도서관은 물론이고 직접 발로 방방곡곡을 뛰어다녔다.
그야말로 ‘자료 찾아 삼만 리의 삶’이었다. “거웃대”나 “봇뒤창옷” 따위를 쓰려고 제주 현지를 찾고 “농다리”나 “직지심경”을 쓰려고 충청도 땅을 찾아다닌 것은 물론이고 글 속에 나오는 각 지방의 문화유산은 거의 직접 가서 취재한 것들이다. 또 삼현육각이나 서도소리 같은 전통문화를 소개하려고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공연장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그런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따랐지만 그때마다 나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뛰었다.”
- 그렇다면, 글을 쓰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한번은 충남 예산의 수당기념관에 갔는데 그곳에 계시는 분으로부터 날마다 ‘얼레빗’ 읽는 재미로 사는데 얼레빗이 오지 않는 토ㆍ일요일은 온종일 허전한 맘에 일이 손에 안 잡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보람을 느꼈다. 또 고등학교 교사인 한 독자는 얼레빗을 아침에 읽고 나면 혼자 보기 아까워 인쇄해서 동료교사들과 함께 읽는다고 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나의 고생은 봄 눈 녹듯 사라진다. 나의 글쓰기가 누군가의 삶을 기쁘게 한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끼고 행복감을 맛본다.
-날마다 쓰는 인터넷 한국문화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는 무료인가? 전업작가로 글을 쓰면서 자료구입과 활동에 드는 경비는 어떻게 마련하나?
“물론 무료이다, 누구나 번개글주소(이메일)만 주면 아침마다 얼레빗 편지를 배달해 준다. 조건은 없다. 다만, 가끔 짧은 격려 글이라도 보내주면 고마울 것이다. 한 가지 더 석 달 이상 보신 분에게는 후원회비를 보내주십사하는 편지를 보낸다. 의무는 아니지만 월 5천 원 이상 정성을 보내주는 분들이 있어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자기가 가진 좋은 자료를 보내주는 분도 계시는데, 이러한 일들이 내겐 큰 힘이다. 말이 전업작가이지 고정 수입 없이 글쓰기에 매달리는 일이란 천형(天刑)의 길이다. 겨레문화를 사랑하지 않으면 걷기 어려운 길이다.”
- 얼레빗 편지 쓰는 것 말고 또 하는 일은 무엇이 있는가?
“우리 문화를 알리는 글을 써서 인터넷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고, 강연도 한다. 또 몇 년 전부터는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알리는 작업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물론 이 일은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소장, 이윤옥) 회원들과 함께하고 있는데 국내의 문화는 물론이고 이웃나라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알리는 일도 매우 뜻 깊은 일이라고 본다. 그간에 써 발표한 글을 이번에 이 소장과 공저로 펴내는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 답사기≫ <도서출판 바보새>가 곧 세상에 나온다.”
- 앞으로 할 일이나 펴낼 계획으로 있는 책은?
“내 평생의 꿈은 우리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안에서 우리문화의 고갱이(진수)를 전하는 일이다. 이제 우리문화는 서양문화에 밀려 그 고갱이를 맛볼 수 없는 어려움에 부닥쳐있다. 따라서 우리옷(한복)을 입고, 우리음악(국악)을 들으며, 우리 먹거리로 배달겨레의 삶을 부담 없이 즐겨보는 공간을 만들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몸소 우리 것의 고갱이를 맛보게 해주고 싶다.
요즘 “영어마을”이라 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미국 마을을 만들어 놓고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생활하게 하는 곳이 늘고 있다. 그런 것도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우리문화의 우수성 역시 체험 아니면 그 매력을 느낄 수 없으므로 이러한 부분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나타나 함께 ‘우리문화 알리기’를 해나가고 싶다.
또 하나는 다문화가정을 위한 책을 쓰고 있다. 이 역시 표피적인 한국 알리기가 아니라 품위 있고 깊이 있는 한국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글을 쓰고 있다. 다문화가정을 꾸리고 사는 이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한국어이지만 이와 더불어 시급한 것은 한국인이 수천 년 지녀온 품성과 정서를 배우고 이해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한국어 교재에만 신경 쓰고 정작 우리문화를 밀도 있게 다룬 책은 없다. 껍데기만 다루거나 너무 전문적이어서도 안 되는 것이 다문화가정을 위한 책이다. 물론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분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이분들을 위한 책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 이 기회에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지금 우리 국민 대다수는 서양문화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물론 국제화가 된 이 세상에 서양문화를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잃으면 결국 우리나라는 서양의 정신적 나아가 경제적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다. 책 읽을 시간도 없이 바쁜 현대인들이지만 하루에 단 5분 만이라도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를 통해 속 깊은 우리문화의 속살을 읽고 사색하여 부자보다는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넉넉한 독자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담 내내 김영조 소장은 몇 번인가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김 소장은 “몸이 아프다가도 한국문화 얘기만 나오면 기운이 샘솟는다.”라고 했다. 기독교 전도사가 전도에 열심인 것처럼 김 소장의 모습에서 ‘한국문화 전도사’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몇 번이고 “한국문화는 더불어 사는 문화”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삶을 생활화하면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이웃 역시 모두 행복해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이들이 효 정신이 없다고 개탄하는데 효 자체 공부보다는 우리문화를 가르치면 저절로 효는 우러나오는 것이라며 “우리문화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10월 문화의 달에 참으로 뿌듯한, 기자 자신이 행복해지는 대담을 했다. 우리문화 전도사 김영조 소장이 펼치는 우리문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 겨레의 슬기로움과 높은 문화 의식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가슴 뿌듯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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