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통영 연대도 패총(煙臺島 貝塚)

문근영 2016. 6. 9. 06:50

통영 연대도 패총(煙臺島 貝塚)



전경


인골 노출 상태(5호 유구)



패각 퇴적층 위


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 토기편


지정 번호; 사적 335

소재지;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연곡리 24-17 [연대도]

지정일; 19901031

시대; 신석기시대

분류; 패총

내용; 패총은 선사시대에 인류가 먹고 버린 조가비와 생활 쓰레기가 쌓여 이루어진 것으로 조개더미 유적이라고도 하며 당시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통영 연대도 패총은 섬의 동북쪽을 따라 ‘U’자형으로 펼쳐진 모습이며, 북쪽은 바닷가로 비스듬히 이어지고 동쪽은 가파른 언덕을 이룬다. 통영 항에서 직선거리로 11가량 떨어져 있으며, 정기 여객선으로 1시간 소요된다. 1987년 셀마 태풍 때 유적의 일부가 유실되었으며, 1988~1992년 국립 진주박물관에서 4차례에 걸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지형의 모습으로 보아 시대에 따라 바다의 높이가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지정 면적은 5,888[1,784]이다.

  연대도 패총7층으로 쌓은 흔적이 구분되며 아랫부분인 4층에서 7층은 신석기시대의 문화층이다. 주로 조개검은흙자갈과 토기들과 사람 뼈들이 나왔으며,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체질과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준다. 윗부분인 2층과 3층에서는 조선고려삼국시대의 토기와 자기들이 나와 이 유적이 매우 다양한 문화층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유적은 발굴단에 의해 임의로 지구와 지구로 나누어졌으며, 전자는 남해안 신석기시대의 조기(早期)전기, 후자는 중기후기만기로 편년되어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전기(全期)를 대표할 수 있는 유적으로 밝혀졌다. 특히 인골이 함께 나온 매장 유구(埋葬遺構) 13기가 조사되어 당시의 매장법묘제 및 자연 인류학적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즉 매장 유구는 일정한 구역에 집중되고 있는 양상이어서 당시에도 사후 공간에 대한 개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간단히 판 묘광(墓壙; 무덤구덩이)에 납작한 돌을 깐 후 주검을 신전장(伸展葬; 펴묻기)하고 각종 부장품(副葬品; 껴묻거리)을 넣은 다음 그 위에 자갈돌을 덮었으며, 모든 인골은 머리를 서쪽으로 향하고 있어 방위 개념도 있었던 것 같다. 조사된 13기의 매장 유구 중 7호에서는 5~6개체의 완형 토기(完形土器), 숫돌, 뼈로 만든 치레걸이 등이 껴묻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골 오른쪽 발목에는 짐승의 이빨로 만든 발찌가 끼워진 채 출토되었다. 14호에서도 인골 왼쪽 팔목 부위에 대롱옥[管玉] 팔찌가 끼워져 있었다. 이는 다른 매장 유구와는 현격히 구분되는 점으로 당시 인들의 신분 차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출토된 유물 중에는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압인문(押引文) 토기태선침선문(太線沈線文) 토기퇴화침선문(退化沈線文) 토기 등과 함께 일본의 도도로키[]식 토기, 흑요석(黑曜石) 원석(原石), 돌 숟가락[石匙] 등 일본 규슈[九州] 지방과 연관성 있는 것들이 있어 당시 매장 유구의 문화 교류를 엿볼 수 있다. 한편 육지산의 대중형 짐승[사슴멧돼지너구리수달 등]과 조류[두루미꿩 등], 해안암초 지대에서 포획된 조수류[강치독수리갈매기 등]와 연안어[북어쥐치대구 등], 회유어[고등어방어 등], 상어 무리, 고래돌고래 무리 등의 풍부한 동물들의 유존체(遺存體)가 밝혀졌으며, 각종 조개류, 암질 등의 분석이 완료되면 당시의 생태계와 자연 환경, 생활양식 등이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주거 생활공간이 밝혀지지 않은 아쉬움이 있지만, 풍부한 어패류짐승 뼈이음식 낚시그물추 등의 출토로 미루어 볼 때, 이들은 고기잡이를 주로 하면서 사냥이나 식물 채집을 하기도 하는 식량 채집 경제를 꾸린 것으로 생각된다.

특기 사항; 출토 유물 가운데 일본 신석기시대 토기들도 있어 당시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에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며, 남해안의 부산 동삼동(사적 266)과 상노대도 유적들과 함께 연구되어야 하는 유적이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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