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무덤
홍일표
눈으로 새를 만들어 나무의 심장 속에 넣었습니다
새는 부리가 하얗습니다 여러 개의 아침이 쏟아져 나오고 여러 개의 생각들이 잣나무 가지에서 사카린처럼 반짝입니다
멀리까지 날아가 색을 버린 새들의 미래
함박눈이 날립니다
갓 태어난 눈사람이 걸어옵니다
허공을 건너고 도로를 횡단하고 터널을 지나고
다리가 있습니까?
들끓는 말에 놀란 얼굴이 녹아내립니다
말 한 번 건네 보지 못하고 천천히 죽어가는 연애입니다
다섯 살 아이가 웃음을 꽂아주고 갑니다
해 저문 여자가 울음을 꽂아주고 갑니다
입과 눈을 떼어내고
다리를 잃어버린 구름처럼 몸통 하나로 일생을 완성합니다
새들이 발목 없이 떠도는 지상
허공은 눈사람을 입에 넣고 녹여 먹는 중입니다
어제 스물일곱 눈꽃 같은 신부가 죽었습니다
공중은 아무리 찔러도 피가 나지 않는 밤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한 새들이 돌 속으로 들어가 무늬가 됩니다
—《문학사상》2013년 1월
-------------
홍일표 / 1958년 충남 입장 출생. 1988년《심상》신인상과 1992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살바도르 달리 風의 낮달』『매혹의 지도』, 평설집 『홀림의 풍경들』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메모 :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비탈의 난이도 / 박성현 (0) | 2016.05.07 |
|---|---|
| [스크랩] 샤파 연필깎이 / 심재휘 (0) | 2016.05.07 |
| [스크랩] 물속에 가라앉은 꽃무늬치마 / 유미애 (0) | 2016.05.07 |
| [스크랩] 코코라는 이름 / 김경인 (0) | 2016.05.07 |
| [스크랩] 낙원 빌 / 정채원 (0) | 2016.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