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창원 성산 패총(城山 貝塚)

문근영 2016. 5. 1. 10:20

창원 성산 패총(城山 貝塚)





발굴 전경


야철지 보존 처리 상태


출토 유물



지정 번호; 사적 240

소재지;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외동 86-1

지정일; 1974112

시대; 철기시대

분류; 패총

내용; 패총은 선사시대에 인류가 조개를 먹고 버린 껍데기와 생활 쓰레기가 쌓여 이루어진 것으로 조개더미 유적이라고도 하는데 당시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창원 성산 패총은 마산만에 면한 창원 평야의 중심부에 있는 높이 49m의 독립된 구릉 위에 있다. 1968년 부산대학교에 의해 1차 발굴이 시도되었고, 19742월부터 5월까지 재조사를 실시하였다. 패총이 분포하는 구릉의 정상부는 약 35,000[10,606]에 달하는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패총은 동남서북쪽의 3개 경사면에 흩어져 있다. 비탈진 곳에 패총들이 쌓여있는데 A지구, B지구, C지구라 부른다. 지정 면적은 109,478[33,176]이다.

  성산 패총10~30의 표토층 밑에 두께 2~3m의 두꺼운 패각층이 형성되었으며, 그 속에서 김해식 토기의 파편들이 발견되었는데, 하층에서는 주로 적갈색 토기, 상층에서는 회청색 경질의 토기와 신라 토기가 출토되었다. 석기로는 홈자귀와 반달형 석기, 골각기(骨角器)로는 화살촉바늘송곳칼자루 등과 철제품으로는 손칼이 출토되었으며, 그 밖에 구리 팔찌 1개가 발견되었다. 구릉 꼭대기에는 흙으로 쌓은 성의 일부가 남아 있었으나 성벽에서 수습된 토기는 이 성이 패총 유적과 관계가 적은 신라 때의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패총의 일부가 신라 때까지 계속 쌓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유적에서 나온 오수전(五銖錢)은 유적의 처음 쌓인 시기를 알려주는 자료로서 기원전후 시기부터 유적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라 토기의 형식을 보면 AD 4세기 무렵까지 이어지며, 성벽에서 나온 중국 당나라 화폐인 개원통보(開元通寶)의 연대를 통해서 AD 5세기 무렵까지도 계속 이어지는 유적임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서남구의 발굴에서는 중국 한대(漢代)의 화폐인 오수전 1개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김해 회현리 패총(사적 2)에서 나온 화천(貨泉)과 함께 초기 철기시대 유적에 대한 연대 결정에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 패각층 밑의 생토면(生土面)에서는 철이 녹아 흐른 야철지(冶鐵址)2군데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동래 패총에서 발굴된 같은 시기의 제철 유적과 함께 우리나라 고대 제철사(製鐵史) 관계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특기 사항; 위치나 규모로 보아 오랜 기간 동안 창원 지역의 중심지이었음을 보여주며, 창원 분지 내에 있는 내동 패총, 가음정동 패총 등의 유적과 함께 당시의 생활 유적으로 중요하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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