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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뿌리 깊은 달 (외 1편) / 정숙자

문근영 2016. 4. 24. 06:41

뿌리 깊은 달 (외 1편)

 

   정숙자

 

 

 

소용돌이 휘말려 대가리 박살났을지라도

산산조각 다시 뭉쳐

강물의 호수의 바다의 심장이 되는

 

늦가을 어스름이면 쩌렁쩌렁

더욱더 불타오르는

그물로 작살로도 건질 수 없는

눈으로만이 만질 수 있는

오로지, 오직 한 마리

 

모남 메마름 게으름 서두름 없이

물결 한 결 헤집음 없이

산 넘어 또 산 넘어 서방정토까지 혼자이지만

 

접었다 폈다 마침내 둥글어지는 독야청청 저 물고기!

 

실개울에도 흐르고 있어

우리들 가슴에도 뿌려져 있어

내 인생 견문록 참회록에도 새겨져 있어

 

천천히 찬찬히 구름과 바람 사이를

온밤을 꿋꿋이 돌보고 있어

 

 

 

모래의 각(角)

 

 

 

닳아지면 둥글어지고 둥글어지면 다시 깨졌다

 

늘 새로운 각이 솟았다

웅크리고 깨지고 죽고 죽어 다시 굴렀다

영원히 태어나지 않아도 좋을 소멸에 이르는 길은 온전히 몸 벗는 일

바위를 벗고 돌을 벗고 최후의 각마저 벗고 낙타가 차올리는 발자국마다 송이송이 돌아가는 흙먼지들아

드디어 날아가는 명사산(鳴沙山) 능선들아

버리는 것은 줄이려는 것

줄이는 것은 벼리자는 것

둘레 40,000km 덩어리째 떠도는 이 행성도 어느 먼 하늘에서는 별이라 호칭하리라

 

모난 꽃들, 떠오른 발들, 물소리 삐걱대는 가슴팍들아

완전 마모의 시간을 찾아 나뒹구는 검은 돌들아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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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자 /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감성채집기』『정읍사의 달밤처럼』『열매보다 강한 잎』『뿌리 깊은 달』, 산문집『밝은음자리표』.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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