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달 (외 1편)
정숙자
소용돌이 휘말려 대가리 박살났을지라도
산산조각 다시 뭉쳐
강물의 호수의 바다의 심장이 되는
늦가을 어스름이면 쩌렁쩌렁
더욱더 불타오르는
그물로 작살로도 건질 수 없는
눈으로만이 만질 수 있는
오로지, 오직 한 마리
모남 메마름 게으름 서두름 없이
물결 한 결 헤집음 없이
산 넘어 또 산 넘어 서방정토까지 혼자이지만
접었다 폈다 마침내 둥글어지는 독야청청 저 물고기!
실개울에도 흐르고 있어
우리들 가슴에도 뿌려져 있어
내 인생 견문록 참회록에도 새겨져 있어
천천히 찬찬히 구름과 바람 사이를
온밤을 꿋꿋이 돌보고 있어
모래의 각(角)
닳아지면 둥글어지고 둥글어지면 다시 깨졌다
늘 새로운 각이 솟았다
웅크리고 깨지고 죽고 죽어 다시 굴렀다
영원히 태어나지 않아도 좋을 소멸에 이르는 길은 온전히 몸 벗는 일
바위를 벗고 돌을 벗고 최후의 각마저 벗고 낙타가 차올리는 발자국마다 송이송이 돌아가는 흙먼지들아
드디어 날아가는 명사산(鳴沙山) 능선들아
버리는 것은 줄이려는 것
줄이는 것은 벼리자는 것
둘레 40,000km 덩어리째 떠도는 이 행성도 어느 먼 하늘에서는 별이라 호칭하리라
모난 꽃들, 떠오른 발들, 물소리 삐걱대는 가슴팍들아
완전 마모의 시간을 찾아 나뒹구는 검은 돌들아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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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자 /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감성채집기』『정읍사의 달밤처럼』『열매보다 강한 잎』『뿌리 깊은 달』, 산문집『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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