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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삼스님, 외팔로 만파식적을 불다

문근영 2016. 4. 7. 00:55

이삼스님, 외팔로 만파식적을 불다

[공연] 이삼스님 대금독주회, 국립국악원 예악당

 

 

 

▲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대금독주회를 하는 이삼스님  ? 최차환

 

 

통일신라 제31대 신문왕 때 일이다. 동해 한가운데 생긴 거북이 머리 같은 모습의 조그만 산 위에 한 개의 대나무가 있어 낮에는 두 개가 되고 밤에는 한 개로 합쳐졌다. 임금이 신하를 시켜 그 대나무를 잘라 옆으로 부는 악기로 만들었다. 이 악기를 불면 "적병이 도망가고 병이 치유되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바다의 거친 파도가 잔잔해졌기 때문에 국보로 소중하게 여겼다."라고 하여 “만파식적(萬波息笛)”으로 불렀다고 전한다.

 

그 만파식적 소리가 기축년 한 봄밤에 많은 이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그것은 이삼스님의 ‘여음적을 통한 외팔 연주였다. 지난 3월 22일 늦은 5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이삼스님 대금독주회”를 말함이다.

 

이삼스님 그는 누구일까? 스님은 이미 세상을 뜬 전 정악대금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녹성 김성진 선생에게서 대금을 배웠지만 교통사고로 한쪽 팔이 마비된 뒤 한쪽 팔로만 연주할 수 있는 ‘여음적’이란 대금을 개발하여 연주한다. 두 팔로도 연주가 어렵다는 대금을 한쪽 팔로 연주하는 인간승리이다.

 

이삼스님의 대금 연주는 어려운 정악대금 소리를 부담없이 쉽게 들려주는 매력을 지녔다. '정악'이란 말 그대로 '바른 음악'이지만 다르게 표현하면 탈속한 듯한 음악, 번잡하고 분주한 것이 아닌 편안하고 차분한 음악이며, 들어서 마음이 포근해지고 넉넉해지지 않으면 정악이 아니라고 한다. 스님은 대금을 비롯하여 단소, 가야금, 거문고 아쟁 등 국악기를 한쪽 팔로 손수 만들고 있다.

 

 

그 이삼스님의 대금독주회는 전통예술계 해설의 거장 최종민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의 맛깔스러운 해설과 함께 경풍년 “우조두거”로 시작한다. “우조두거”는 전통 성악곡인 가곡 “잦은한잎” 중 두거를 노래 없이 삼현육각으로 연주하는 곡이다. 첫 연주인데 음향 문제인지 조금은 날카롭게 들려 아쉽다.

 

그리곤 평조회상 “상영산”을 대금·해금 병조로 들려준다. 물론 대금은 이삼스님, 해금은 국립국악원 윤문숙 씨이다. “상영산”은 “영산회상” 3곡 중의 하나이다. 스님과 윤 씨는 오래 호흡을 맞춘 분들로 환상적인 어울림을 자아낸다. 다만, 역시 음향문제로 해금 소리가 따듯하지 못하다.

 

이어서 “수룡음” <농>으로 불리는 “잦은한잎” 중 평농을 노래 없이 삼현육각으로 연주하는 기악합주곡인데 이날은 스님의 독주곡으로 듣는다. 이제야 음향이 잡힌 모양이다. 스님의 아름다운 대금 소리가 기막히다. 청중은 대금 소리에 꼼짝 못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대금 소리는 그야말로 애간장을 태우는 소리 바로 그것이다.

▲ 이삼스님 대금독주회에서 맛깔스럽게 해설하는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최종민 교수  ?최차환            다음은 중광지곡 “상영산” 대금·가야금 병주다. 스님과

                                                                         국립국악원 정악단 송인길 전 예술감독이 호흡을 맞춘다. 평소 산조가야금에 익숙한 청중들에겐 정악가야금 소리가 좀 낯설게도 들린다. 하지만, 이내 대금과 가야금의 어울림에 푹 빠진다. 대금·가야금 병주가 끝나자 다시 스님의 중광지곡 “세령산” 독주가 이어진다. 대금 소리는 점점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곤 수연장지곡 “하현도드리” 합주가 펼쳐진다. 스님의 대금에 해금 윤문숙, 가야금 송인길, 거문고 이오규 용인대 교수, 장구 사재성 전 국립남도국악원 예술감독이 함께한다. 이 시대 정악 대가들이 가슴을 하나로 하여 환상의 소리를 들려준다.

 

 

 

 

▲ 이삼스님 대금독주회에서 수연장지곡 “하현도드리” 합주를 하는 가야금 송인길,  해금 윤문숙, 

 이오규 용인대 교수,  장구 사재성 전 국립남도국악원 예술감독(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최차환

 

 

기악 연주의 마지막은 “요천순일지곡”, “청성 자진한잎‘이라고도 부르는 “청성곡” 대금 독주다. 청성곡은 선이 굵고 쭉 뻗는 소리와 잔가락의 시김새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음악이다. 스님의 청성곡은 잠시 가슴을 졸이게 하다가 다시 느긋한 여운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조용히 침잠하게 하는 아름다움이 뿜어난다. 가느다란 선율이 조용조용히 이어지며 청중은 눈을 감는다.

 

청중 한 사람이 잠시 조는 듯하다. 그런데 스님은 조는 것은 정상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정악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기 때문이라나?

 

기악 연주가 끝나자 이젠 중무형문화재 제30호 남창가곡 준보유자 이동규의 “편락”, 여창가곡 보유자 김영기의 “편수대엽” 그리고 이동규·김영기의 합창 “태평가”를 듣는다. 어려운 시절 그들은 태평가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 이삼스님 독주회에서 가곡 "편락"과 '태평가를 부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남창가곡 준보유자 이동규  ? 최차환

   

 

 

▲ 이삼스님 독주회에서 가곡 "편수대엽"과 '태평가를 부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가곡 보유자 김영기  ? 최차환

 

 

 

▲ 이삼스님 독주회에서 가곡을 부르고 반주를 하는 연주자들 

앞줄 이동규, 김영기 / 뒷줄 송인길, 윤문숙, 이삼스님, 사재성, 이오규(왼쪽부터)  ? 최차환

 

 

흔히 사람들은 가곡 하면 ‘선구자’나 ‘가고파’ 등 서양발성에 의한 노래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오랫동안 불러왔던 전통가곡이 있다. 가곡은 시조시를 노랫말로 삼아 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인데 고려말부터 이어져 조선 영조 무렵 가장 꽃을 피운 것이다. 지금은 들어볼 기회가 별로 없어 사람들에게 잊힐뻔한 이 전통가곡은 정말 청아하고 아름다운 노래다.

 

전통가곡을 처음 듣는다는 옆자리의 한 청중은 정말 귀한 노래라고 감탄한다. 그러면서 “나는 가곡 하면 그리운 금강산이나 그네 등만 생각했다. 그런데 저런 아름다운 가곡이 예부터 있었다니 기가 막히다.”라고 말했다.

 

아직은 차가운 살바람이 몸속을 파고드는 봄밤에 이삼스님의 여음적은 많은 고통 받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스님의 만파식적은 더 나아가 모든 세상의 어려움을 잠재울 것이란 희망을 품어본다.

 

 

  

▲ 이삼스님이 직접 개발하고 연주하는 외팔로 부는 대금, 여음적  ? 김영조

출처 :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글쓴이 : 김영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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