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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내가 내온 육면체 큐브 (외 1편) / 함기석

문근영 2016. 4. 6. 07:56

아내가 내온 육면체 큐브 (외 1편)

 

   함기

 

 

 

묵은 접시 위에서 갈색 잠을 자고 있다

묵은 아내가 잃은 자유를 닮았다

묵은 물컹거리는 아내의 속울음이 담긴 육면체 바다

내가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자

묵 속의 침묵이 둔중하게 손을 타고 파도가 되어

내 심장을 울린다

 

햇살이 가늘고 긴 수십 개의 바이올린 줄이 되어

묵의 지붕에 내리고 있다

내가 젓가락으로 톡, 가장 가늘고 가난한 햇살 하나를 튕기자

아내의 까만 눈망울 닮은 음들이 일렁일렁

찬 물결처럼 퍼져오고

 

접시꽃 빈 꽃방에서

저녁이 줄 없는 바이올린을 켜며 오래도록 나를 쳐다본다

쇳덩이 같은 고요가 흐르고

아내의 아픈 속살이 내 입술에 닿는 첫 느낌으로

밤이 온다

 

묵 속에 밍크고래가 잠들어 있다

묵 속 어두운 바다에서 밤마다 고래의 긴 울음이 울려온다

저 덩치 큰 아내의 울분이 정말로 눈을 떠

묵 밖으로 헤엄쳐 나와 통째로

날 삼켜버릴 것만 같아 나는 촛불처럼 초조하다

 

찬 젓가락 빨며 마당을 본다

가난이 누런 진흙투성이 개가 되어 폴짝폴짝 뛰놀고 있다

내가 짜증을 내며 젓가락 하나를 집어던지자

없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뒷간으로 도망쳤다가는

대문으로 쏘옥 다시 들어온다

 

묵은 접시 위에서 고요히 요동치고 있다

묵은 꿈꾸는 혁명가고 항거 중인 상자고 변장한 선인장이다

내가 남은 젓가락을 꽂자

묵은 안으로 젓가락을 삼켜 묵은 나를 삼킨다

아내의 찬 손이 내 울음 우는 등에 닿는 첫 느낌으로

밤이 깊어간다

 

 

 

회전체 A

 

 

 

삼각형 숲이 회전한다

죽은 나무 사이로 죽은 새가 날고

나의 얼굴에서 부서져 떨어지는 핏방울과 빛과 거울

 

가늘고 긴 나사못처럼 빙글빙글 웃으며

살을 파고드는 빛

거리엔 빛을 반사하는 고양이 역광(逆光)이 달리고

 

점점 입체가 되어가는 숲

아침 점심 저녁을 세 꼭짓점으로 하는 삼각형의 내부에서

내가 내접원을 그리며 울 때

 

죽음은 돌을 게워내며 외접원을 달린다

바퀴처럼 웃는 피

드라이버처럼 회전하며 점점 투명 원뿔이 되어가는 숲

 

밑변을 달린다

빗변을 달린다

숲이 시작되는 숲의 끝점으로 역광(逆光)이 달린다

 

 

 

            —시 전문 계간지《발견》창간호(201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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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기석 / 1966년 충북 청주 출생. 한양대학교 수학과 졸업. 1992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오렌지 기하학』『뽈랑공원』『착란의 돌』『국어선생은 달팽이』, 동시집 『숫자벌레』, 동화집 『상상력학교』『코도둑 비밀탐정대』『야호 수학이 좋아졌다』『황금비 수학동화』 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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