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일생은 아득하고 / 조말선

문근영 2016. 4. 3. 08:48

일생은 아득하고

 

   조말선

 

 

 

일생은 아득하고

백살은 줄었다

 

일생은 점점 길어지고

백살은 늙은 살구나무처럼 한 그루

 

저것이 백살이라면 당신은 믿으시겠습니까

 

일생은 끝날 줄 모르고

백살은 쪼그라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늙은 살구나무

 

일생은 안개꽃으로 감싼 꽃다발과 함께 걸어가고

백살은 거기 가운뎃손가락에 핀 게 꽃이니, 욕이니

 

일생은 점점

백살은 이미

 

일생은 역사적으로 흐르고

백살은 봄에 꽃이 피었다

 

일생은 당신이 휠체어에 앉아서 멀어져가는 당신을 배웅하고

백살은 당신이 당신을 밟고 올라가는 밑동이 내려앉은 늙은 살구나무

 

너무 줄어들어서 원근법이 사라져버린

이것이 백살이라면 당신은 믿으시겠습니까

 

일생은 꼬리를 끌고

백살은 믿는 구석에서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시인수첩》2013년 여름호

-------------

조말선 / 1965년 경남 김해 출생. 1998년 〈부산일보〉신춘문예, 《현대시학》등단. 시집『매우 가벼운 담론』『둥근 발작』『재스민 향기는 어두운 두 개의 콧구멍을 지나서 탄생했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