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대구 계산동성당(桂山洞聖堂)

문근영 2016. 1. 16. 00:31

 대구 계산동성당(桂山洞聖堂)















지정 번호; 사적 290

소재지;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20(계산동271)

지정일; 1981925

시대; 조선 고종 광무 6(1902)

분류; 종교 유적

내용; 대구 계산동성당1886(고종 23) 프랑스의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소속 아실루드 로베르(A.P. Robert; 한국명 金保綠) 신부가 경상도 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하다가 1897(고종 34, 광무 원년)에 현재의 중구 계산동 성당 자리에 있던 초가집을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1899(광무 3)에 한식 목조 ()’자형의 성당을 지었으나 다음 해에 화재로 불 타 버리자 그 자리에 A.P. 로베르 신부가 설계하였다. 프랑스중국 등지에서 건축 기술자와 도목수석공 등 30여 명을 초빙, 2년여 만인 1902(광무 6)에 현재의 성당을 짓게 되었다. 1918년의 증축으로 완성을 본 이 건물은 도심의 평지에 건축된 연건평 300평 규모의 벽돌조 건물로 전주 전동성당(사적 288)과 쌍벽을 이룬다. 지정 면적은 4,100.9[1,243]이다.

  계산동성당의 건물 평면은 라틴십자가 삼랑식(三廊式)으로 신자석(信者席)이 배치되어 있으며, 입면은 서쪽 정면에 종탑 기능의 2개의 8각형 첨탑을 세워 건축물의 수직성을 강조하고 있다. 창문은 부벽(扶壁) 구조에 아치로 설계하였으며, 정면 현관과 측랑(側廊) 위쪽에 있는 꽃무늬창은 우리나라의 건축 양식상 획기적인 것이다. 당시 대구에서는 처음 세워진 서양식 건물로 입구에 두 개의 종각에 우뚝 솟아 뾰족 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성당 건축은 고딕 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화강석 기단 위에 붉은 벽돌을 쌓고 검은 벽돌로 고딕적인 장식을 하였다. 영남 지방에 천주교를 토착화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1911년 조선 교구로부터 분리, 대구 대교구 주교좌 본당이 되었는데 초대 주임 신부에는 로베르를 임명하였다. 성당 부지에는 설계자를 기념하는 동상과 주교관이 있다. 이 성당 건물에서 동남쪽 600m 지점에 있는 관덕정(觀德亭) 순교 기념관에는 을해(乙亥)정해(丁亥)병인박해(丙寅迫害) 때 교우들의 은신처였던 한티고개신나무골 등 교우촌에서 붙잡혀 처형된 순교자들의 유물 30여 점 등 65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특기 사항; 대구 지방에서 유일한 1900년대 성당 건축물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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