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시

[스크랩] 안개 해부학 / 문근영

문근영 2015. 10. 13. 07:30

                        안개 해부학

 

기침에서 가래가 떨어졌다면 구제역을 의심해야 한다

구덩이에 돼지들 밀어 넣으신 아버지

몸 안에서 토해내는 기침 끝에 살점 허물어지던 시간을

망초가 밀어 올렸다

그 후 온통 먹통이던 하늘가에 흰 꽃 무덤이 생겨났다

아버지의 젊음을 갉아먹은 건 빈 축사 탓이라고

어머니는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가슴 한복판에 한 뼘 정도의 먹줄이 퉁겨지고

갈비뼈를 자르고 난 후 꺼내놓은 아버지의 심장은 자욱한 안개

상처의 자리에서 돋은 망초꽃이 엷은 창문을 흐리게 하던 새 벽녘

몸에 새긴 길은 휘청거리고

몸 하나를 지우고 몸 하나가 살아나는 순간

판막 건넨 돼지는 또 어딘가에 묻힐 것이다

강을 비틀거리던 안개의 걸음에서 물기 젖은 이마 드러내는 망초꽃은

통증 도려낸 후 돋은 새살이다

노란 동공에서 번져나는 별빛 아래 남겨졌던 빈 축사의 여물통은

무더기로 핀 망초 같은 김을 피워 올린다

판막 꺼낸 돼지의 몸 절개선을 안개가 촘촘히 꿰매고 있다

출처 : 대구문학 – 시야시야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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