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 여래 좌상(南山 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

문근영 2015. 7. 21. 06:52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 여래 좌상(南山 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



전경







석조 여래 좌상 불신과 앙련좌


석조 여래 좌상 원반석


석조 여래 좌상 하대석


지정 번호; 보물 187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1-1 남산 용장사지

지정일; 1963121

시대; 통일신라

분류; 석불

내용;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 여래 좌상남산 일원(사적 311)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의 용장사 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대현(大賢)과 관련이 있어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자씨석 장륙상(慈氏石 丈六像)이 이 불상이라는 설도 있다. 자연석 기단(基壇) 위에 3층으로 된 높은 대신(臺身)과 대좌(臺座)가 있고, 그 위에 사각형의 좌대(座臺)를 같은 돌로 만들었다. 현재 머리 부분은 없어졌고,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대좌에 비해서 불상은 작은 편이다.

  남산 용장사곡 석조 여래 좌상의 전체 높이는 4.56m, 불상의 높이는 1.41m, 재료는 화강석이다. 목에는 번뇌도(煩惱道)업도(業道)고도(苦道)를 의미하는 세 줄의 뚜렷한 삼도(三道)가 있고 어깨는 넓지 않으며, 가슴 또한 풍만하지 않은 체구로 어떤 승려의 자세를 보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양어깨를 모두 감싸고 있으며, 옷자락이 대좌 윗부분까지 흘러내리는데 마치 레이스가 달린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왼손에는 보주(寶珠; 불탑의 꼭대기 위에 얹는 장식)를 얹고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대좌는 자연 기단 위에 있는 특이한 3층탑이라 생각될 만큼 특이한 원형인데 맨 윗단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특기 사항; 특이한 대좌뿐 아니라 석불 자체의 사실적 표현이 작품의 격을 높여주며, 삼국유사에서 보이는 유명한 승려 대현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유명한 불상이다. 대현의 활동 기간에 제작되었다고 보아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야기; 대현 스님은 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 때 남산 용장사에 있었다. 용장사에는 돌로 만든 큰 미륵부처님이 있었는데 대현 스님은 날마다 합장하고 염불하면서 미륵부처님을 돌았다. 대현 스님이 미륵부처님을 돌고 있으면 돌로 만든 부처님도 대현 스님을 따라 머리를 돌렸다 한다. 지금 용장사 터에 3층 원형 대좌 위에 머리가 떨어진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데 그 부처가 대현 스님이 돌던 미륵부처일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753(경덕왕 12), 불국사와 석불사를 세우기 시작한지 3년째 되던 해다. 이 해 여름에 가뭄이 심해서 계곡마다 물이 없어 곡식이 모두 말라죽게 되었다. 경덕왕(재위 742~765)은 이를 걱정하여 대현 스님을 불러 비를 빌게 하였다. 대현 스님은 대궐에 축우단을 모으고, 여러 가지 제수를 차려 놓고, 정화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화수를 길러 간 사람이 오지 않아 제를 올리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에야 숨을 헐떡이며 물을 길러 갔던 사람이 물을 들고 왔다. 제사를 관리하는 이가 왜 이렇게 늦었느냐?” 하고 그를 크게 꾸짖었다. 물 길러 갔던 사람은 대궐 우물이 모두 말랐기 때문에 먼 곳에 가서 길러 오느라 늦었습니다.” 하고 사죄하였다. 대현 스님은 그 말을 듣고 그러면 진작 그렇다고 말할 일이지.” 하면서 향로를 받아 들고 하늘을 바라보니 불시에 쏴아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우물에서 분수처럼 물줄기가 솟아오르는데 그 높이가 70[21m]이나 되었다. 잠깐 동안에 대궐 우물에 물이 차고 넘치니 모든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그 후부터 이 우물을 금광정(金光井)이라 불렀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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