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2014년 4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류성훈

문근영 2015. 6. 9. 08:05

과도 (외 1편)

 

      류성훈

 

 

 

   더위가 더위를 깎는다. 싫어하는 과일만 더 달게 익어가는 일요일이 교과과정에 포함되어간다. 장난감을 돌려주지 않았다고 현관에서 매를 맞은 날. 싸우지 말라고 옥상은 한낮이 어지른 열기를 밤에게 되돌려주었고, 아무도 감사히 받지 않는 걸 알 만큼 머리가 굵어졌다. 수학에는 수학이 있지만 윤리에는 윤리가 없음이 신기했을 뿐. 나는 땀이 없는 동식물들이 예초기에 갈려나가는 것을 바라봤다. 실은 아무도 싸우지 않았고, 어질러진 방은 불안하고, 깨끗하게 마른 집들은 서로가 불안할 뿐. 스스로에게 장점이 없다는 점에서 여름은 나와 닮았고, 그때에 나는 더위를 혼자 다 먹었기에 더 진화할 수도, 더 하등할 수도 있었다.

 

   잘 깎은 교육을 연필로 찍어 올려 볼 때도 은밀해야 했던 나이. 혼자만 힘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가정이 스스로 힘을 잃어버린 세상을 아랫목에서 지켜볼 때, 상하기 전의 껍질에선 식물의 창자 냄새가 났다. 지나치게 쏟아진 후에는 늘 지나치게 맑은 것. 아직은 견딜 만했고, 그래서 나는 과도, 라는 단어를 좋아했고, 여름은 내가 좋아한 과도함과 지나침 어디쯤 자제력을 잃은 채 매를 들고 있었을 것이다. 아빠 차 전조등에 까맣게 붙은 여름의 체액을 닦는다. 그건 시간보다 세제에 더 잘 지는 거라고 아직 고해성사를 할 수 없는 내게 안도할 때, 아픔은 어떤 병변이 아니라 반추가 없는 모든 목숨이었다.

 

 

 

번개표 / KUMHO 220V 60W B1

 

 

불이 나갔다

밖으로 나가는 발소리

 

전구가 갓 속에서 혼자 죽듯이

나는 철물점처럼 문을 닫는다

 

누구를 볼까,는 결국

무엇을 볼까,로 바뀌는 것

나는 누구에 의해 무엇처럼

던져져 있던 것

 

눈에 먼지가 들어가지 않을

방법이 없을 때, 신발을 벗을 때

붉은 천장에 아직 네가 있다

 

전등갓에 손을 덴다

정리란 다만 제자리가 없으므로

하는 것이다

 

 

 

                       [2014년 4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문장웹진》201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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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훈 / 1981년 부산 출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2년〈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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