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노작문학상수상작
다행한 일들
김소연
비가 내려, 비가 내리면 장롱 속에서 카디건을 꺼내 입어, 카디건을 꺼내 입으면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조개껍데기가 만져져, 아침이야
비가 내려, 출처를 알 수 없는 조개껍데기 하나는 지난 계절의 모든 바다들을 불러들이고, 모두가 다른 파도, 모두가 다른 포말, 모두가 다른 햇살이 모두에게 똑같은 그림자를 선물해, 지난 계절의 기억나지 않는 바다야
지금은 조금 더 먼 곳을 생각하자
런던의 우산
퀘벡의 눈사람 아이슬란드의 털모자
너무 쓸쓸하다면,
봄베이의 담요
몬테비데오 어부의 가슴장화
비가 내려, 개구리들이 비가 되어 쏟아져 내려, 언젠가 진짜 비가 내리는 날은 진짜가 되는 날, 진짜 비와 진짜 우산이 만나는 날, 하늘의 위독함이 우리의 위독함으로 바통을 넘기는 날,
비가 내려,
비가 내리면 장롱 속 카디건 속 호주머니 속 조개껍데기 속의 바다 속 물고기들이 더 깊은 바닷속으로 헤엄쳐 들어가, 모두가 똑같은 부레를 지녔다면? 비가 내릴 일은 없겠지,
비가 내려, 다행이야
『문학과사회』2010년 여름호
김소연 시인
1967년 경북 경주 태어났다. 1993년〈현대시사상〉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극에 달하다》《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수학자의 아침》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등이 있다. 노작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출처] 다행한 일들 / 김소연 |작성자 마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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