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2012년 여름호 애지신인문학상 당선작/ 정동재

문근영 2015. 5. 8. 03:39

산순이를 온전히 읽다 외 4편

정동재

 

민망하지만, 끝까지 쳐다만 보고 있어야 했던

산순이의 짧은 봄날

이랑에 씌운 비닐 다 찢어진다는 옆집노인장 성화로

발정 난 암캐의 목걸이를 풀어주지 못했다

복날 잡으면 딱 한 그릇 깜인 옆집 개 한 마리

꼴에 수캐라고 다섯 배나 큰 산순이 뒤꽁무니를

몇 일째 핥고 다닌다

아무리 용을 써도 코만 성기에 닿는다

컹컹 울기도 하고

깽깽 신음 소리도 내며 산순이 머리에다 펌프질이다

만, 두 살배기 초산을 훌쩍 넘긴 산순이

오늘은 제발 잘 해보라는 듯 자세를 낮춘다

의외였다

의외는 의외의 안쪽을 들어서게 되었다

직립으로 누워서 벌이는 일쯤은 사람에겐 자연섭리였다

함부로 누워버린 어떤 육체관계에 대해

늘 우리의 섭리는 옆집 개새끼만도 못한 연놈이라고 지칭했다

사람의 길은 뜻밖에도 사람만이 아니였다

앞길이 조금 더 트였다

 

*섭리-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 

 

 

숨을 거두었다는 말

 

 

숨을 거두었다는 말

지상에 그 누가 맘대로 숨을 거둘 수 있다는 말인가

생략된 주어를 쫓는다

마주 보며 막 식탁에 오른 따끈따끈한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마신다

그러므로 산책길은 왕성하다

사방은 내내 투명하다

같이 호흡한다는 것은 폐부 깊숙이 내통한다는 말 그러므로

생전에 은밀히 내통하였다는 말 누군가에게 툭툭 던진다

한통속이었으므로 모든 숨 거둬들이는 숨통아

너의 허공과 허무와 허기가 전염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

한평생 호흡으로 남은 것은 너에 대한 그리움이 번져 버려진 그늘 모퉁이

숨 쉬는 오랑캐꽃까지의 연민뿐이구나

흉부에 하늘만큼 고인 허무와

다가가도 만져지지 않는 너에 대한 목마름으로 나는

피붙이를 사랑하는 일이 하여 전부였노라

하늘인 너와 폐부에서부터 연결된 심장의 박동으로

모든 것들은 숨지는 날까지 손이 데고도 남을 붉은 꽃을

위로, 위로 피워낸다

숨을 거둔다는 말은

비로소 한 떨기 꽃이 되고 열매가 되어 너에게로

초청되는 일이다

 

 

 

내 안의 1人 극장

 

 

때론 스치는 바람에도 말을 걸고 싶었다

자꾸 말을 걸다 보면 나를 알아주는 이가 생길 거라고

세상을 향해 침을 튀어가며 오토리버스 노래 테이프처럼 지내곤 했다

인연일까? 붙잡아 보면 손가락 사이로 살점 섞인 모래알들이

우수수 시간 속으로 떨어져 나갔다

사막의 순례에는 눈을 뜨지 못하게 하는 모래바람이 낯설지 않다

나의 노래는 말라 버렸고 주파수는 바닥이었으며

그때 나를 받아주는 내가 내 안에서 불현듯 일어났다

나라고 말했을 때 나 이외의 모든 것은 남이 되어버렸다

쉽게 등 돌려 모두 배웅해버린 후 매일 찾아드는 정적을 맞이해 보시라

처량 만고 끝에 비로소 찾아오는 귀한 손님접대를 연상해보시라

살아온 날만큼 길어진 것이 외로움이라면 외로움의 몸통은 두려움이 아닌지

의구심이 고개 들었고 나를 몸통처럼 노려보기 시작했다

마치 예외의 경우처럼 까다로운 나를 나조차 난해해했으므로  

윈도의 오에스 시스템체계구성의 맥락을 따르기로 했다

코끼리가 잡아먹은 뱃속에 사람은 코끼리의 새끼를 잡아먹었다

두렵지 않다 에 동그라미를 매긴다.

코끼리가 잡아먹은 뱃속에 그린벨트는 물과 공기를 빨아먹었다

두렵지 않다 에 동그라미를 매긴다.

내가 잡아먹은 뱃속에 나는 부모와 친구와 선생님을 뜯어먹고 있었다

두렵지 않다 에 동그라미를 매긴다.

세월이 잡아먹은 뱃속에 나는 나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두렵다 에 동그라미를 쳐진다.

잠시 나를 주장하는 순간 집사람도 아이들도 잠시 남이 되어버린다

그 후

나는 나를 남이라고 불렀다

나는 남에게

남은 나에게 혼잣말을 주고받는다

이 극장에서는 일월의 틈새 사이 모레 알을 물어 나르는 개미 한 마리까지

재조명 된다

 

 

 

꿈 꾼다는 것

 

 

밤새 거실에서 내 사랑이

내 옆에서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며 환하게 웃는다

왜 그래?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두 손으로 어깨를 잡고 고개가 넘어갈 정도로 세차게 흔드는데

“영화 같지 않아? 그 사람 조연이야”필연처럼 말을 한다

꿈결인데도 엉겁결에 닦아도, 닦아도, 눈물이 그칠 줄 모른다

영화관 어둠 속에서 일정속도를 유지하던 필름은

문밖을 나서면서 묻지 마 살인까지 숨 가쁘게 치닫는다

언제 뵈어도 미인이시네여

삼십 줄 박씨 이방인 같지 않은 말투로 사라진다

꿈에서 깨고 보니 사람이더라고 허심탄회하게 토로한 장자의 나비 역시

조연을 생생히 그려내는데서 기초했다 

상쾌한 아침 바람이 머릿결을 흔들자 마음결에 하늘빛이 스민다

“좀 나아졌어요?”

(괜히 미안하다는 듯 묻는다)

꿈꾼다는 것은

자칫, 스케치한 바람의 머릿결에 꽃뱀무늬 덧칠을 해보는 일

저런! 그림그리기로 얼룩져버린 태양이라니

조연의 출연으로 눈물은 이미 바다로 흥건하다

비늘을 다쳐 속살에 고름이 차오르는 물고기 한 마리

날개가 꺾여 지느러미조차 가누지 못한다

꾸덕꾸덕 사흘 나흘 상처를 핥고 있는 심연의 해류, 고로

바다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네 입에 간 맞추지 말고 바다를 보라 

쉼없이 바다가 철석인다

 

 

 

무용총사신도

 

 

사막은 물의 묘지라고 암기한다

남근은 삼십육 점 오도의 골짝은 뜨거워 좋아 죽는다고

미친 듯이 기록을 남긴다

명당을 쓸 때는 좌청룡 우백호 남 주작 북 현무를 살핀 연후에

산의 아랫도리를 더듬어

클리토리스 같은 봉긋한 봉분을 만들어 의인화시키고 

누구누구의 묘라고 적는다

하늘을 오르내린다는 잡지 속, 사신四神,

잉걸불처럼 타오르는 청룡의 눈빛 

당시 하늘을 대신했다는 임금 앞에 인도한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은밀한 깊은 밤 골짝은 청룡의 말대로

항상 촉촉하다

아파트 베란다 발코니에

현무의 둥근 꼬리처럼 어둠이 새벽이슬을 빚고 있다

자본주의가 밤낮으로 파고 있는 여기는

이십일 세기 지구 사막화의 요충지

이 밤 이 거리 저마다 타고난 천성대로

또는 후천적 영향으로

사람들은 미친 듯이 또 기록을 후려갈길 것이다

태어나자 중심을 잃은 사생아 몇

변기에 걸려 떠들썩하게 기록될 것이다 

 

정 동재

이메일 qufdlthsus@hanmail.net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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