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 둘 상식

[스크랩] 독자얼레빗 52. 죽서루와 여류시인 이옥봉에 대한 학술적 시각에 대하여...

문근영 2015. 4. 16. 09:43

독자얼레빗 52. 죽서루와 여류시인 이옥봉에 대한 학술적 시각에 대하여...
 
 
 

                        


강원도 삼척에 있는 죽서루는 한국인들이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는 명승지이다. 죽서루는 정자 아래쪽으로 길게 흐르는 오십천과 어울려 예전에는 더 없는 풍광을 자아냈겠지만 지금은 오십천 너머에 삐죽삐죽 솟아 있는 아파트와 고층 빌딩들이 예전 풍광을 죽인지 오래라 정자에 올라 있어도 별로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여류시인 이옥봉이 남편 조원을 따라 이곳 삼척에 와서 살 때에는 이보다 멋진 풍광이었으리라.

최근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에 실린 “(2256) 삼척 죽서루에 얽힌 옥봉 이씨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이옥봉 연구가이신 이종문 교수의 지적이 있었다는 (2269)의 알림판 글과 덧붙인 이종문 교수의 글’이 실려 다시 찬찬히 읽으면서 독자로서 생각하는 바 있어 몇 자 적어본다. 먼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이나 상식을 바로 잡아 주려고 ‘이옥봉 연구’ 글을 보내주신 이종문 교수님의 노력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학문적인 이야기로서 민간에 유포되어 있는 전설이나 구전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철원에 가면 ‘고석정’이라는 풍광 좋은 곳이 있는데 한탄강 굽이치는 곳에 고즈넉한 정자를 세워둔 모습이 꼭 삼척의 ‘죽서루’ 같은 느낌이다.

이곳에 가면 임꺽정(林巨正) 전설이 전해지는데 임꺽정은 명종(명종실록 26권, 15년(1560) 기록)때 실재 인물이다. 그러나 임꺽정이 지금 자리인 고석정에 머물고 갔다는 기록도 없고 고석정이 보이는 한탄강 언저리에서 의적(義賊)활동을 했다는 증거도 없다.

그러나 지금 철원 사람들은 임꺽정과 고석정을 동일시한다. 물론 나도 철원땅 고석정에 이르면 의적 임꺽정을 떠올리게 된다. 임꺽정이 구체적으로 어느 곳에 가서 어떠한 일을 했는지에 대한 시간 순서적인 문헌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꺽정과 고석정이 관련이 없다고 하기도 어렵다고 본다.

같은 맥락으로 본다면 당시 이옥봉은 조원의 첩실이긴 하지만 삼척에 부임한 남편을 동행했다. 그러할진대 옥봉이 죽서루를 다녀가지 않았다는 것은 단정할 수 없다. 설사 옥봉이 죽서루에 대한 시를 짓지 않았다 해서 옥봉과 죽서루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고 본다. 당시 옥봉은 지금의 대통령처럼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서 항상 기자를 달고 다니는 신분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었을 리 만무다. 그러나 누가 아는가! 옥봉이 날이면 날마다 죽서루에 올라 시름에 찬 첩실 생활의 고달픔을 흘러가는 구름과 바람에 실려 노래했는지 말이다.

“자료를 통해서 볼 때 이옥봉이 죽서루를 특별히 사랑한 자취를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죽서루에 얽힌 슬픈 사랑이야기라는 제목에 상응하는 슬픈 사랑의 구체적인 실체를 확인하기도 어렵다.”는 이종문 교수의 국문학적인 견해는 충분히 검증된 이야기일 테지만 “상상할 수 있는 죽서루의 사랑” 또한 있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것은 임꺽정 이야기가 오랜 세월 구전으로 전해져오면서 전설로 굳어진데다가 소설, 영화,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또 윤색되어 오늘의 모습이 된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문제시 삼고 싶은 것은 이옥봉이라는 여류에 대한 명확한 증빙자료가 나타나서 ‘이옥봉이는 죽서루에 발도 안 들여 놓았다.’라는 기록이 없는 한 후대에 추가되는 상상력의 가지까지 자를 필요는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임꺽정이도 최초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단 몇 줄이 고작이다. 그러나 지금 그에 대한 기록은 논문, 소설,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 등으로 수백 수천 장 더해가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종문 교수의 ‘근거 있는 국문학적인 견해’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짧은 독자의 생각으로는 김영조 소장이 다룬 ‘이옥봉의 구슬픈 사랑이야기’를 “전설”이나 “구전” 모습으로 해부하지 않고 들어줘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김영조 소장은 이 글의 자료로서 삼척문화원과 강원도민일보 기사를 인용했다고 했는데 옥봉 아씨뿐 아니라 죽서루에 다녀간 사람은 후대에 많을 것이다. 그 인물들의 발자취를 일일이 확인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다. 다만, 아무개가 어느 시기에 삼척에 가서 살았다면 유명한 죽서루 누각에 올라 흘러가는 오십천을 감상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 않겠는가! 국문학도 문학일진대 문학적 상상을 어느 선까지는 포용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출처 :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글쓴이 : 김영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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