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 둘 상식

[스크랩] 독자얼레빗 54. 재일교포로 처음 참여하는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에 부쳐…

문근영 2015. 4. 12. 06:34

독자얼레빗 54. 재일교포로 처음 참여하는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에 부쳐…
 
 
 


                


일본에 사는 외국적 영주권자에게 지방참정권을 요구한 것이 1975년 9월 1일이었다. 재일대한기독교회 고쿠라교회 시무 고 최창화 목사가 북큐슈시장에게 공개질문서를 제출한 것이다. 그는 통치기관에 권리가 없고 의무만 있는 것은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지적했다. 예리한 인권감각이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 못(안)하는 것은 “무식해서인가? 무서워서인가? 아니면 게을러서인가?”라고 질책했던 것이다.

인권감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문제의식과 부조리와의 씨름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다. 최목사는 종교의 할 일을 내면(영, 마음)세계에서 실생활 (정치. 사회)에 까지 넓혀 준 분이다.

일본은 아직 실시하고 있지 않지만 한국에선 나라밖 동포의 기본적 인권을 존중하여 이번에 처음으로 실시하여 나도 한 표를 던지게 되었다. 투표를 하려면 사전에 유권자 등록을 마쳐야 하는데 이번에 참여한 동포는 약 18,600명이다. (전체 유권자의 4%)

54석을 놓고 싸우는 비례선거 명부에는 재일한국인 2세 강종헌 씨(교토 거주、와세다대학 객원교수, 60살) 가 야당인 통합진보당의 18번째에 들었다. 강씨는 “남북평화통일정책 제언과 본국 사람들에게 재일동포를 이해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라고 말한다.

과거 고국이 장기집권 시대였기에 일본 생활 수십 년 만에 이번 선거가 내게는 제대로 된 의사반영을 하는 최초의 선거인 셈이다. 그래서 더 감개무량한 생각이 든다. 나와 비슷한 나이로 오키나와에서 준교수로 근무하는 친구는 한 표를 던지려고 선거장소인 후쿠오카까지 무려 2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날라오는 열성을 보였다.

일제강점기에 현해탄을 건너가 영주하게 된 동포와 그 자손은 현재 약 39만 명이다. 그들은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때에 특별영주자로 인정받았다. 해방 당시 약 60만 명이었는데 여러가지 사회적인 탓으로 해마다 1만 명 정도 일본국적을 취득하는 경향이 계속된 탓으로 줄었다. 일본정부가 외국적 주민에 대하여 철저하게 귀화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이 큰 이유이다.

87년 인생에 처음으로 한 표를 던지는 도쿄의 이학래 (西東京市) 씨 모습이 아사히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는 17살이었던 1942년 구 일본군 군속으로 고향에서 태국으로 보내져 연합군 포로 감시 일을 했는데 전후에 포로 학대의 전범으로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다. 감형 후 1956년 출소했지만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친일파라고 비난받는 신세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시대가 변하면 제도도 변한다. 일본에서도 하루속히 지방참정권이 생겨 재일동포와 외국적 주민도 시장, 지사, 시현의회 의원선거에 입후보하거나 한 표를 던지는 날을 기대한다. 물론 그날은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다. 본국에선 이미 외국적이지만 5년 이상 국내 거주자에게 지방참정권을 줬는데 이 정책은 아시아에서 첫째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오사카 청년협회는 한국어와 국내 사정을 모르는 동포를 위하여 각 정당과 후보자에게 재일한국인 정책과 남북평화 통일정책 등을 질문하고 그 답변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자신의 의사를 대신하여 정치해줄 후보를 선택하고 그리고 세금을 낸다. 이것이 의회 민주주의의 바탕인 것이다. 일본에는 230만 명의 외국적 주민이 산다. 35년 전에 일본사회에 던져진 소수자의 문제 제기는 퇴색되지 않고 여전히 신선한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독자 주문홍 / 목사, 일본 후쿠오카현


                
         


               

출처 :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글쓴이 : 김영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