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2001년 대한매일신문 당선작

문근영 2015. 4. 9. 08:28

심사평 : 송수권, 김명인


신혜정씨의 시편에는 어떤 가능성 앞에 열려 있는 발랄한 시적 감수성이 있다. 이 응모자가 선택하는 시어는 그 정밀성에 값하는 당돌함과 당당함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말의 운용에 다소의 무리가 끼어들고 그것을 쇄신할 역량이 일천하다는 약점도 함께 읽혀진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라 하더라도 결점이 있는 시를 당선작이라고 밀어올리는 심사가 마냥 편편한 것만은 아니다.
선자들은 이 응모자의 잠재적 기대치를 평가한 것이다. 더욱 정진하여 거기에 부응하길 바란다.

당선시 : 스프링 위를 달리는 말

 
 
신혜정
1978년 인천출생
서울산업대학교 문예창작과 재학
구인회 시공간 동인.

스프링 위를 달리는 말
 



분홍빛 말이 나를 유혹했어요.
말을 타려고 하는데 해진 바지 사이로 무릎이 보이네요
말장사 아저씨가 입은 회색 점퍼 소매에도 누런 솜털이 삐죽거려요
아까부터 아저씨는 저기 공장굴뚝처럼 기침을 토하고 있어요
나는 달리고 있었거든요
달리는 말 위에서 달리고 있었거든요
그래도 나는 말 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위로 솟으면 초록과 빨강 줄무늬 천막이 보이고
내려오면 내 바지처럼 군데군데 구멍난,
쓰레기더미 같은 판자집이 보였어요
연탄재들은 오늘 아침 차에 실려 떠났어요
말장사 아저씨는 네발 달린 의자에 안장처럼 앉아 있네요
아저씨가 움직일 때마다 의자가 삐그덕 소리를 냈어요.
나는 달리고 있었거든요
달리는 말 위에서 달리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말발굽 소리 대신 녹슨 스프링만 자꾸 삐그덕거렸어요
창호지 바른 우리집 창문에 불이 켜지네요
이제 말들이 리어커 바퀴에 실려 떠날 거예요
나는 달리고 싶었거든요
다리가 없는 분홍빛 말 위에서 나는 달리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엄마, 연탄재는 왜 또 내놓으세요?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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