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 유종호 , 신경림
임찬일의 '먼지 같은 뉴스', '공지천에서', '알고 말고, 네 얼굴' 등은 꽤 연륜이 느껴지는 시들이다. '알고 말고, 네 얼굴'은 일상적 삶에 묻혀 사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삶에 대한 회의와 체념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하겠지만 "끊어진 것들 가슴속 이야기로 이을 날이 있겠지"와 같은 구절은 작자가 가진 긍정적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호감이 간다. '공지천에서'도 그의 세상을 보는 눈이 만만치 않음을 말해준다.
당선시 : 알고 말고, 네 얼굴
임찬일
1955년 전남 나주 출생, 서울예전 문창과 졸업
알고 말고, 네 얼굴
옛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함께 다녔던 국민학교를 들추어내고
그때 가까이서 어울렸던 친구의 이름도 떠올리고
그제서야 자기가 아무개라며
나에게 묻는다
기억이 나느냐고
이것저것 지난 세월에 묻은 흔적을 증거삼아
비로소 서로를 확인하는 이 낯선 절차
그래, 물 같은 세월 흘렀으나 거기에
비추듯 남아 있는 우리들의 코 묻은 얼굴과
남루했던 시절
흑백사진처럼, 아니 아니 눌눌하게 빛바랜
창호지처럼 다소 낡은 모습으로 떠오르는
그 무렵의 일을 이제는 옛날이라고 싸잡아
네 이름처럼 불러야 되는구나
친구야, 오랜만이다 애들이 몇이고?
그래, 나랑 똑같구나 딸 하나 아들 하나라니 !
이 한통의 전화가 걸려 오기까지
삼십 년이나 걸려야만 했단 말이냐
서로 연락도 하고 언제 한번 만나자며
전화를 끊었지만 우리들의 기약은 다시 아득해지고
무슨 꿈결처럼 잊혀져서 나는 또
가물가물한 너의 얼굴을 영영 놓쳐 버릴지도 모른다
남은 것이라곤 적어 놓은 너의 전화번호
연락처를 알았으니 가끔 전화라도 하마
만나자, 만나자, 하다보면 그 말이 씨가 되어
이 세상 어느 한구석을 차지하고서
끊어진 것들 가슴속 이야기로 이을 날이 있겠지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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