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 유종호 , 신경림
예선을 거쳐 올라온 작품 중에는 산문체의 시가 많았는데 대체로 읽기에 지루하고 답답했다. 리듬이 없는 것이 그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현대시가 노래하는 데서 사고하는 데로, 영탄하는 데서 추구하고 발견하는 쪽으로 변화해 온 것만은 사실이지만, 시에 있어 리듬은 힘이요, 재미의 원천이라는 점이 간과될 수는 없는 것이다.
김창진의 시들은 도시 변두리의 일상인들에게 보편적인 정서를 형상화한 것들이다. 얼핏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요, 누구나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을 그렇지 않은 것으로 다듬은 데서 이 시인의 솜씨가 돋보이는데,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어, 가장 잘 다듬어진 '외출'은 말할 것도 없고 '평화시장'이나 '귀순열차에서'같은 장황해서 압축해야 할 필요가 있는 시들까지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더욱이 '외출'의 "고민 끝에 모조하는 근엄한 미소들"이나 "딴전 피듯 파란 하늘을 본다" 혹은 '귀순열차에서'의 "이 열차 안의 이렇게 아는 것 없고 힘없이 지친 삶들은 어느 정부로 귀순해야 하나요?" 같은 대목은 세상을 보는 만만찮은 눈과 재간 없이는 얻어지지 않는 것들이다. 김창진의 '외출'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면서 심사위원들은 이 시인이 시에서 빼고 압축하는 법을 조금만 익히면 빼어난 시인이 되리라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당선시 : 외출
김창진
1967년 봉화출생, 서울예전 광고창작과 졸
외출
이른봄, 나는 외출을 하였다
겨울에 익숙한 외투로
아직 한쪽은 겨울로 남은 몸을 감추고
봄 길로 나서면 봄 햇살에
큰크리트 벽들도 금세 싹을 틔울 것만 같다.
내 몸의 어디에서도 살갗을 뚫고 무엇인가 돋는 듯하다.
길가엔 동시상영 포스터와 선거 벽보들이
나란히 봄볕을 피해 긴 담을 따라
월장을 한참 준비중이다.
신축성 없는 마분지 같은 얼굴들이
고민 끝에 모조하는 근엄한 미소들은
깨알같은 자신의 약력 밑에 한 줄의 그것들을 더하기 위해
이 낯선 곳으로 애마부인 7과 외유를 나왔다.
난 그 앞에서 문맹이 되고픈 충동을 느낀다.
귀중하다는 나의 한 표 행사를 고민해야 할 걱정에 싸였다가
딴전 피듯 파란 하늘을 본다.
봄볕을 받고
개나리와 아지랑이가 출마를 하였으면
노랑나비가 빨리 봄을 노래하였으면
나도 아직 일부가 차가운 몸을 안고 봄으로 간다.
봄이 공천하는 많은 새 생명이 돋는 곳으로
나는 외출을 한다.
봄날은 우리에게 공약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한 햇살을.
예선을 거쳐 올라온 작품 중에는 산문체의 시가 많았는데 대체로 읽기에 지루하고 답답했다. 리듬이 없는 것이 그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현대시가 노래하는 데서 사고하는 데로, 영탄하는 데서 추구하고 발견하는 쪽으로 변화해 온 것만은 사실이지만, 시에 있어 리듬은 힘이요, 재미의 원천이라는 점이 간과될 수는 없는 것이다.
김창진의 시들은 도시 변두리의 일상인들에게 보편적인 정서를 형상화한 것들이다. 얼핏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요, 누구나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을 그렇지 않은 것으로 다듬은 데서 이 시인의 솜씨가 돋보이는데,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어, 가장 잘 다듬어진 '외출'은 말할 것도 없고 '평화시장'이나 '귀순열차에서'같은 장황해서 압축해야 할 필요가 있는 시들까지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더욱이 '외출'의 "고민 끝에 모조하는 근엄한 미소들"이나 "딴전 피듯 파란 하늘을 본다" 혹은 '귀순열차에서'의 "이 열차 안의 이렇게 아는 것 없고 힘없이 지친 삶들은 어느 정부로 귀순해야 하나요?" 같은 대목은 세상을 보는 만만찮은 눈과 재간 없이는 얻어지지 않는 것들이다. 김창진의 '외출'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면서 심사위원들은 이 시인이 시에서 빼고 압축하는 법을 조금만 익히면 빼어난 시인이 되리라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당선시 : 외출
김창진
1967년 봉화출생, 서울예전 광고창작과 졸
외출
이른봄, 나는 외출을 하였다
겨울에 익숙한 외투로
아직 한쪽은 겨울로 남은 몸을 감추고
봄 길로 나서면 봄 햇살에
큰크리트 벽들도 금세 싹을 틔울 것만 같다.
내 몸의 어디에서도 살갗을 뚫고 무엇인가 돋는 듯하다.
길가엔 동시상영 포스터와 선거 벽보들이
나란히 봄볕을 피해 긴 담을 따라
월장을 한참 준비중이다.
신축성 없는 마분지 같은 얼굴들이
고민 끝에 모조하는 근엄한 미소들은
깨알같은 자신의 약력 밑에 한 줄의 그것들을 더하기 위해
이 낯선 곳으로 애마부인 7과 외유를 나왔다.
난 그 앞에서 문맹이 되고픈 충동을 느낀다.
귀중하다는 나의 한 표 행사를 고민해야 할 걱정에 싸였다가
딴전 피듯 파란 하늘을 본다.
봄볕을 받고
개나리와 아지랑이가 출마를 하였으면
노랑나비가 빨리 봄을 노래하였으면
나도 아직 일부가 차가운 몸을 안고 봄으로 간다.
봄이 공천하는 많은 새 생명이 돋는 곳으로
나는 외출을 한다.
봄날은 우리에게 공약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한 햇살을.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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