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1995년 동아일보 당선작

문근영 2015. 3. 31. 02:53

심사평 : 신경림 , 김주연


당선작의 영예에 오른 김지연씨의 '이런 세상 어떠세요'는 반어적, 동화적인 기법으로 현실을 풍자하고 있는 맛깔스러운 작품이다. 얼핏 소품의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이 작자의 다른 3편도 골고루 일정한 시적 품격을 확보하고 있어서,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해도 무방해 보였다.
특히 어린이를 시적 화자로 하고 있다든가, 어린이 문체를 훈련하고 있는 듯한 세계는 신선하다. 이러한 신선성을 앞으로 어떻게 줄기차게 밀고 나가면서 독자적인 영역을 꾸며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김씨의 시인으로서의 앞날을 판가름해 줄 것이다.
 

당선시 : 이런 세상 어떠세요

 
 
김지연
1967년 인천출생, 제주대학 국문과 졸업

 
이런 세상 어떠세요

 
날이 찌뿌둥하군요.
할 수 없어요, 늘 같은 주말로 하죠.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사람과
같은 반찬으로 밥을 먹어야겠어요.
외출은 삼가세요.
바깥 날씨쯤 잊어버려요.
당신의 영원한 TV가 다채로운 재방송을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시청률에 항상 주의해 주세요)
채널과 채널 사이 잡음은 신경쓰지 마세요.
다만 집 앞을 파대는 굴착기 소리에
심장 박동을 맞춰주세요.
곧 따끈한 아스팔트로 포장해 드릴게요.
잠깐, 채널을 바꾸지 마...세...
 
질퍽하고 부드러운 진흙바닥 위에
화면 가득 입을 쩌억 벌린 짱뚱어 두 마리
먹고 사는 입이 크면 그뿐
주먹도
피도
눈물도 없이
고개 꺽고 물러나네
먹고
사랑하고
천국 같은 진흙에 뒹굴다
물이 들면 파아랗게 뛰어올라
하늘에 젖는 짱뚱어 세상.
(아! 한가지 아쉬운 건 그곳엔
TV가 안 나온대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안테나 잊지 마세요.)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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