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산부인과
박남희
달력에는 네모난 문이 여러 개 있다
바람이 불면 펄럭이는 문과 문 사이
우리네 근대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달력 산부인과,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6.25 근처에서
죽은 아이들을 낳고
4.19와 5.18 근처에서
손에 돌멩이를 움켜 쥔
이상한 아이들을 낳았다
달력이 한 번씩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사생아를 낳고, 기형아가 태어나는
이상한 산부인과
누구는 그 애들의 아버지가 가난이라고도 하고
미친 별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모른다
네모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영화가 시작되기 전 을숙도에서
부러진 갈대들 사이로 새들이 세상을 뜨고*
또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직 세상을 뜰 수 없는 아이들이
자궁 속 비디오 방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웅크리고 있다, 출생을 기다리고 있다
요즘도 그 산부인과는 성업 중이다
최신 정보에 의하면
앞으로 태어날 복제아기부터
사이버 아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곳을 알고 있다고 한다
나는 오늘 달력 한 장을 떼어냈다
떨어져 나간 달력 속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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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상> 2005년 가을호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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