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계간 『시와 소금』 2012년 가을호 신인상 당선작품>

문근영 2014. 11. 4. 12:40

<계간 시와 소금2012년 가을호 신인상 당선작품>

 

귀가 낮아진다2

                                               양윤덕

 

 

 

나무들마다 초록 귀를 열고 있다

입이 뾰족한 소리, 입이 긴 소리, 입이 둥근 소리가 빨려들어간다

사계가 차례차례 빨려들어간다

침묵 한 채 집이 된다

 

때로는 갉아 먹혀도, 분비물에 뒤덮여도

소리의 주춧돌은 더 단단해 진다

질서에 순응한다

 

바닥에 닿는 소리를 들으려고

귀가 더 낮아진다

몸 아래로 내려간다

 

귀는 끊임없이 떨어져 내리고 자라기를 반복한다

처음 자란 여린 귀는 소리들로 더 단단해 진다

 

계절을 견뎌낸 나무는 비로소

초록 귀로 푸르러진다

집이 되어줄 소리들이 숲의 영령처럼 떠돈다

 

나무가 불에 탄다

타고 남은 재는 귀가 마지막으로 쏟아낸 소리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소리는

상류로 흘러 다니기도 하고 하류로 흘러 내려간다

때로는 시궁창으로 쏠리기도 한다

 

귀는 끝까지

소리를 소리로 담기위해 낮아진다

 

 

 

 

 

1

 

 

  1분은 빨간 신호등처럼 눈을 우락부락 뜬다 1분은 다혈질이다 1분은 동굴 안에 움츠리고 있는 59초를 늘 불안하게 한다 쇠귀를 달고 있는 59초의 잠을 송두리째 빼앗는다

 

  1분은 이 길과 저 길을 통과하는 찰라를 즐긴다 돌처럼 무거운 졸음도 거뜬히 들어올린다 게으름에 편안해진 59초를 거칠게 거느리고 뛰고 또 뛴다

 

  1분은 폭력이다 그리고 희망이다 1분이 재촉하는 고함소리에 피가 마른다 눈 앞에 칼바위처럼 펼쳐진 계단도 뛰도록 명령한다 1분은 자신의 동굴 안에 찰라로 들어서지 못하면 벽이 되어 지나간다

 

  허나, 1분은 옥수수의 알알이도 휘파람처럼 두, 세 배로 고소하게 뻥 튀겨 낸다 까슬까슬한 얼음 밥도 동심의 온기로 돌리고 돌린다 1분 안에 들어서면 칸막이로 나뉜 마음도 한 칸에 닿을 수 있다 입장권이 없어도 시끌시끌한 소리로 가득 메워진다

 

  1분이 어둠을 향해 치달아간다 하늘에서도 지상에서도 1분의 호스를 꽂고 욕망이 벌겋게 채워지고 있다 1분이 꾸벅 졸고 있다 그 사이도 1분이다

 

   

 

 

 

보도블럭

 

 

 

상처의 영토다

발 달린 것들 빈틈없이 독침을 박고 지나간다

수만 마리의 바람도 몰려들어 긁어놓고 뒤꽁무니로 사라진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균열

피해갈 수 없을 것처럼 옥죈다

 

내 목을 부러뜨리며 나에게서 날개를 펴는 것들

나는 몰려든 상처들로 목숨을 지탱한다

상처가 자유다

저 어처구니의 발 달린 마음들

죽치고 눌러 붙어 나와 함께 숨 쉰다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잠 깬다

속을 훑고 지나다닌다

누군가는 나에게서 상처를 묻혀간다

 

내 안의 신음소리가 나와 상처를 혼동하며 날개를 편다

상처는 어둠 안에서 잉크처럼 풀려 더 진한 어둠으로 번진다

신생의 바람 한 마리 신을 신고 내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가끔은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

내 안에서 새싹이 되고

꽃이 되어 피어난다

그렇게 다져진 상처로 나는 단단해져간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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