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제 1회 〈이상 시문학상〉수상작, 모두가 예술이다 / 이승훈

문근영 2014. 10. 25. 18:49

모두가 예술이다

이승훈

 



용인 공원 식당 창가에 앉아 맥주를 마신다. 앞에는 정민 교수, 옆에는 오세영. 유리창엔 봄날 오후 햇살이 비친다. 탁자엔 두부, 말린 무 졸임, 콩나물 무침, 멸치 졸임. 갑자기 가느다란 멸치가 말하네. "생각해 봐! 생각해 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라는 건지 원! 멸치 안주로 맥주 마실 때 "이형은 목월 선생님 사랑을 그렇게 받았지만 생전에 보답을 못한 것 같아." 종이컵에 하얀 막걸리 따라 마시며 오세영이 말한다. "원래 사랑 받는 아들 따로 있고 효자 아들 따로 있는 거야." 그때 내가 한 말이다. 양말 벗고 햇살에 발을 말리고 싶은 봄날.

"이군이가? 훈이가?" 대학 시절 깊은 밤 원효로 목월 선생님 찾아가면 작은 방에 엎드려 원고 쓰시다 말고 "와? 무슨 일이고?" 물으셨지. 난 그저 말 없이 선생님 앞에 앉아 있었다. 아마 추위와 불안과 망상에 쫓기고 있었을 거다. 대학 시절 처음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나올 때 "엄마야! 이군 김치 좀 주게. 이군 자취한다." 사모님을 엄마라 부르시고 사모님은 하얀 비닐봉지에 매운 경상도 김치를 담아 주셨다. 오늘밤에도 선생님 찾아가 꾸벅 인사드리면 "이군이가? 훈이가? 와? 무슨 일이고?" 그러실 것만 같다.


― 제 1회 〈이상 시문학상〉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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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 1942년 강원도 춘천 출생. 196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물 A 』『당신의 방』『비누』『너라는 환상』『이것은 시가 아니다』등.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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