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2012년 제10회 애지문학상 수상작 발표

문근영 2014. 10. 25. 18:48

2012년 제10회 애지문학상 수상작 발표

 

계간시전문지 {애지}가 주관하는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남자 시부문에 함기석, 여자 시부문에 양애경이 2012년 10월 10일 제10회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제10회 애지문학상 후보작들로는 함기석 [저녁의 비행운飛行雲], 신용목 [우리는 이렇게 살았지], 백무산 [빈집], 유종인 {눈길을 쓸다], 최서림 [자화상], 안도현 [그 집 뒤뜰의 사과나무], 안상학 [앙숙], 김백겸 [여미지 식물원], 양애경 [여자], 박이화 [청보리밭], 이경림 [꿈], 송종규 [녹색부전나비의 문제], 김이듬 [너라는 미신], 이근화 [한밤에 우리가], 강성은 [환상의 빛] 등 15편이 올라와 있었다. 제10회 애지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이 15편의 시들 중, 양애경의 [여자]와 함기석의 [저녁의 비행운飛行雲]을 흔쾌하게 제10회 애지문학상 수상작품으로 선정할 수가 있었다.

애지문학상 상금은 각각 500만원이며 시상식은 12월1일 대전 충남대학교 정심화홀에서 있을 예정이다.

2012년 제10회 애지문학상 시부문 심사평

시인에게 문학상을 주는 이유는 특별하다. 뭔가 큰 성취를 얻었다고 칭찬하거나 더 잘하라는 격려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일반적인 상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한 시인의 시적 성취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잣대는 아무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상을 줘서 격려한다는 것은 문학적이지 않은 일이며 그것은 자칫 시인에 대한 모욕일 수 있다. 문학상을 준다는 것은 어떤 작품이 지금 이 시대에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상을 주고받는 행위를 통해 그러한 가치를 공유하자는 데 바로 문학상의 의미가 있다.

이번 애지문학상 심사는 바로 이러한 문학상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작업이었다. 작년 겨울호부터 올해 여름호까지 <애지>를 포함한 여러 문학지들에 실린 작품 중에서 먼저 후보작들을 선정했다. 시인의 명망성이나 시적 표현의 시류성은 평가의 중요 기준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한 시인이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사회와 인간을 보고자 하는지 그 시선의 깊이를 가진 작품을 후보작으로 선정했다. 총 15편의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들이 논의했으나 함기석 시인의 「저녁의 비행운」과 양애경 시인의 「여자」를 수상작으로 선정하자는 데 쉽게 합의하였다.

함기석 시인의 「저녁의 비행운」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작품이다. 가난과 비루함으로 점철된 일상의 삶을 시인이 열망하는 자유와 대비시킴으로써 그것이 가진 고통의 함량을 배가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시인은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런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욕망과 욕망이 부풀리는 쾌락 속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아름다운 슬픔을 포기하거나 애써 피하며 살고 있다. 함기석 시인의 이번 수상작은 바로 이러한 슬픔을 다시 일깨워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쾌락이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인식의 깊이와 미학적 성취가 수상작으로 선정된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양애경 시인의 「여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도드라진 작품이다.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는 다른 존재를 타자화하는 데 있다. 정치도 자본도 모두 인간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면서 발전해 오고 있다. 너는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는 나에게 무엇인가가 중요한 시대인 것이다. 양애경 시인의 「여자」는 그런 대상화가 대세가 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한 존재가 어떻게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그 의미가 가진 진정성과 허무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요설적이고 난삽한 언어가 주류인 세태 속에서 쉽고 명확한 언어가 어떤 깊이를 만들어내는지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두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아울러 이번 수상이 두 시인에게나 우리 <애지>에게나 큰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심사위원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심사평 황정산)

 

수상작: 시부문

 

여자

양애경

 

 

양잿물로 삶아

햇볕에 잘 말린 란닝구처럼

하얗고 보송한 여자

 

가슴팍에 코를 묻으면

햇빛 냄새가 나는 여자

머리칼에 뺨을 대면

바람 냄새가 나는 여자

잘 웃는 여자

낡은 메리야스처럼

주변 습기를 금방 흡수해

쥐어짜기만 하면 물이 흐르는 여자

잘 우는 여자

 

편서풍에 날아간 여자

빠른 시냇물에 둥둥 떠 급히 흘러간 여자

오래 입고 여러 번 빨아 얇아진

그 여자

 

지금 어디?

----양애경 [여자] 전문

 

저녁의 비행운飛行雲

함기석

 

 

아픈 아이를 안고 창밖을 본다

내일이 어린이날인데 하늘엔 어두운 핏줄만 뻗어가고

내가 가꿔온 꿈이 사마귀처럼 사각사각

내 내장을 파먹고 아이의 웃음을 파먹고 있다

옆집 무화과나무 아래 싹튼 상추들이 모두

만 원짜리 지폐로 보인다 저 싱싱한 지폐에 구름과 삼겹살을 싸

배터지게 먹고 돼지가 되고 싶은 날이다

대문가 목발을 짚고 올라온 어린 나팔꽃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저녁의 눈동자는 점점 커져 서녘하늘 전체가 붉은 갯벌로 변해가고

벼랑이 보이는 해안으로 새들이 날아간다

 

햇살 하나가 가만히 다가와 아이의 상처 난 뺨을 혀로 핥아준다

흰 이가 막 돋아난 햇살의 빨간 잇몸

공기들이 만드는 투명한 파도가 쉼 없이 일렁이고

아이는 약에 취해 잠든다

나는 아이의 등을 다독거리며 놀이터 모래밭을 바라본다

아침부터 온종일 허공을 날다 저녁에

모래밭에 떨어져 죽은 새

새가 남긴 마지막 무늬와 추상의 발자국들이

사람의 문장보다 아픈 저녁이다

나는 잠든 아이를 꼭 안고 속으로 울음을 삼킨다

 

점점 붉게 지쳐가는 하늘과 대지

저 두 장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는 검붉은 침묵들

거미의 입으로 들어간 벌레와 빗방울과 어둠이

환한 허공의 집이 되기까지

삶의 습한 저지대를 비행하는 아픈 비행운들

멀리서 석양에 젖은 새들이 하늘을 돌고

나무의 혼들이 죽은 나뭇가지 끝에서 빠져나와 찬 물결처럼 고요히

허공 저편으로 퍼져가는 것이 보인다

---함기석 [저녁의 비행운飛行雲] 전문

 

양애경 연보

■ 1956년 서울에서 공무원인 아버지 양한영과 어머니 윤숙현 사이의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나다.

■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읽은 책은 󰡔알프스의 소녀󰡕였으며, 이후 만화에 빠져 맞춤법에 통달하게 되다.

■ 대전시청 공보실장으로 전근하신 아버지를 따라 국민학교 3학년 때 대전으로 이사오다. 전학 온 대흥국민학교에서 ‘프랑스 튀기’라는 둥 하는 근거없는 이유로 잠깐 적응에 곤란을 겪다.

■ 할리우드 영화광인 엄마를 따라 영화관을 섭렵하다. 글짓기대회 입상 상품으로 받은 󰡔과학모험이야기󰡕에 몰두하여 S.F에 맛들이다.

■ 대전여중 시절 도서관에서 낭만주의 시선집을 읽고, 바이런과 릴케의 시에 반하여 시쓰기를 시작하다.

■ 대전여고 시절 ‘머들령’이라는 고교 문학서클에 들어 작품에 대한 기본기를 기르다. 고교생 문예현상에서 여러 차례 수상도 하다.

■ 1975년에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선배인 김백겸 시인을 만나 ‘화요문학’ 활동을 시작하다.

■ 1979년 유성여자중학교 국어교사가 되다.

■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오다. 같은 해 충남대학교 대학원에서「신석정연구」로 석사학위를 받다.

■ 1984년에 김백겸, 고운기, 안도현 등과 ‘시힘’ 동인을 결성하여 현재까지 이어지다. 대전에서 ‘새여울’, ‘호서문학’에 참여하다.

■ 1988년 첫시집 󰡔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청하)을 내다.

■ 1990년에 충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이상화시의 구조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다. 유성여자중학교를 사직하고 충남대학교 등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시작하다.

■ 1992년 두번째 시집 󰡔사랑의 예감󰡕(푸른숲)을 내다.

■ 1995년 공주영상대학 문예창작과 교수가 되다. 현재는 같은 학교 방송영상스피치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1997년 세번째 시집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창비) 출간하다. 대전시인상을 수상하다.

■ 1999년 저서 『한국퇴폐적낭만주의시연구』(국학자료원)를 출간하다.

■ 2002년 충청남도 문화상(문학부문)을 수상하다.

■ 2003년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사과정에 다시 진학하여 시나리오를 전공하다.

■ 2004년 한국예술위원회의 창작지원을 받다.

■ 2005년 네번째 시집 『내가 암늑대라면』(고요아침)을 출간하여 우수문학도서가 되다.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다.

■ 2010~2011년 한국예술위원회의 창작지원을 받다.

■ 2011년 말에 다섯번째 시집 『맛을 보다』(지혜)를 출간하다.

■ 2012년 『맛을 보다』가 우수문학 도서가 되다. 2012년 10월 한성기문학상을 수상하다.

■ 2012년 겨울 애지문학상을 수상하다.

 

함기석 약력

1966년 충북 청주 출생

1992년 「작가세계로」 등단

1993년 한양대학교 수학과 졸업

1998년 시집 <국어선생은 달팽이>(세계사) 출간

2002년 시집 <착란의 돌>(천년의 시작) 출간

2008년 시집 <뽈랑 공원>(랜덤하우스) 출간

2012년 시집 <오렌지 기하학>(문학동네) 출간

2011년 황금비 수학동화(처음주니어) 출간

2011년 숫자 벌레(비룡소) 출간

2011년 코도둑 비밀탐정(형설아이) 출간

눈높이아동문학상 수상(2006), 박인환문학상(2009) 수상.

2012년 제10회 애지문학상 수상

현재 충북 청주에 거주하며, 시와 동화를 쓰고 있다.

 

애지문학상 역대 수상자들

 

제1회 수상자 시부문 이대흠 문학비평부문 장석주

제2회수상자 시부문 함민복 문학비평부문 유성호

제3회 수상자 시부문 손택수 문학비평부문 권혁웅

제4회 수상자 시부문 이은채 문학비평부문 홍용희

제5회 수상자 시부문 김선태 문학비평부문 하상일

제6회 수상자 시부문 민경환 문학비평부문 오형엽

제7회 수상자 시부문 윤의섭 문학비평부문 이재복

제8회 수상자 시부문 김혜영 문학비평부문 이경수

제9회 수상자 시부문 황학주(남) 안정옥(여)

제10회 수상자 시부문 함기석(남) 양애경(여)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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