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시인의 시읽기 18
오늘 우리가 읽을 시는 문근영 시인의 시 “안개를 열다”이다.
안개를 열다...
- 문근영 -
심해지던 기침에서 가래가 떨어졌다
파놓은 구덩이에 돼지들을 밀어 넣으면
그곳에서 망초는 시간을 밀어올렸다
하늘은 온통 먹통이고
젊음을 갉아 먹은 자리에 돋은 상처로
병실 침상에 누워있는 아버지
눈동자에서 다섯 개의 별이 다투어 반짝이고 있었다
가슴 한복판에 한 뼘 정도의 먹줄이 튕겨지고
갈비뼈를 자르고 난 후 꺼내놓은 심장은 자욱한 안개였다
엷은 창문을 흐리게 하던 새벽녘
몸에 새긴 길은 휘청거리고
몸 하나를 지우고 몸 하나가 살아나는 순간
판막을 건넨 돼지는
비틀거니는 걸음으로 안개의 강을 건너갔을 것이다
아픈 기억이 빠져나간 몸은
물기 젖은 이마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햇살을 기억하고서야 망초는 무지개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통증 도려낸 후 새살 돋는 자리
빈 축사에 남겨진 아버지가 남긴 눈물에서
말끔하게 닦인 밭고랑 하나가
구제역으로 생겨난 망초의 언덕을 가르고 있다
뜨거운 입김이 안개를 가르듯
-------------
“시인마을” 창간호에 실린 문근영 시인의 시 “안개를 열다”이다.
문근영 시인의 이 시는 두 가지 상황이 상호교차하면서 그 의미를 확증해간다는 점에서 시적인 고도의 기교를 느끼게 한다. 이 시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의 상황은 아버지의 심장 수술이다. 또 다른 하나의 상황은 구제역으로 수많은 돼지들을 산 채로 묻어야만 했던 상황이다. 시인은 이 두 가지 서로 연관성이 별로 엮어지지 않는 사건을 시적기교를 통해서 엮어가고 있다.
시인이 보기에 아버지의 기침은 구제역으로 돼지들을 산채로 묻어야 했던 사건과 관련이 있다.
“심해지던 기침에서 가래가 떨어졌다”
이 시에서 가래의 떨어짐은 구제역으로 돼지들이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 장면과 겹쳐진다. 시인이 보기에 아버지의 병(심장병?)은 돼지들을 묻어야만 했던 아버지의 업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늘은 온통 먹통이다. 그 행위는 자신의 행위의 결과였으므로 하늘은 그것에 응답할 의무가 없다. 젊음을 온통 바쳤던 돼지축사는 구제역이라는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아버지는 병을 얻었다. 그 아버지의 눈동자에서는 지금 다섯 개의 별이 반짝이고 있다. 그 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는다. 죽음의 별일까 아니면 희망의 별일까? 오망성은 두 가지 의미를 충분히 다 가지고 있다.
그런 아버지의 상황은 “안개”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겠다. 시인의 아버지는 수술을 한다. 시인은 말한다.
“가슴 한복판에 한 뼘 정도의 먹줄이 튕겨지고”
수술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시구를 시인은 목수가 재단하는 장면과 겹쳐서 읽는다. 목수가 재료를 자르기 전에 먼저 먹줄을 튕긴다. 그 먹줄을 따라서 목수는 재단을 하고 하나의 집이 서서히 완성되어간다. 시인이 왜 굳이 목수의 먹줄을 수술실의 장면과 겹쳤을지에 관해서 한 가지 가정은 가능하다. 시인은 아버지의 삶을 무너진 집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집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목수는 재단을 한다.
“갈비뼈를 자르고 난 후 꺼내놓은 심장은 자욱한 안개였다”
안개라는 말은 불확실성을 은유하는 말이다. 그러나 근원적으로는 인간의 불안을 은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불안은 두려움과 다르다. 두려움에는 대상이 있지만 불안에는 대상이 없다. 신학자인 폴 틸리히는 이러한 불안을 세 가지로 구별한다. ‘죽음의 불안’ ‘무의미성의 불안’ 그리고 ‘정죄의 불안(죄의식의 불안)’이 그것이다. 수술과 관련되어서 아버지의 불안은 이 세가지를 다 포함하고 있다. 아버지는 구제역으로 많은 돼지들을 자신의 손으로 묻어야 했던 죄의식이 그의 내면 속에 상존하고 있다. 또 수없는 죽음을 목도하면서 생의 무의미성이 그를 잠식하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에 대한 죽음의 불안이 아버지를 얽매고 있다. 그 모든 불안은 안개로 상징된다. 그래서 아버지의 심장을 꺼내놓았을 때에 그것은 “자욱한 안개”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그 안개는 수술되어져야만 하는 안개이다. 시인은 안개를 아버지의 심장, 곧 아버지의 존재의 중심으로부터 떼어내는 것을 일종의 새로운 건축으로 본다. 그리고 그 떼어낸 안개는 구제역으로 묻힌 돼지와 함께 안개의 강을 건너간다. 모든 안개는 돼지가 가지고 사라져간다. 사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대속의 개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시에서 아버지의 죄의식과 무의미성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을 지고 가는 것은 아직은 돼지이다. 그 돼지가 죽음으로써 아버지는 살아난다. 그 장면이 이렇게 표현된다.
“몸 하나를 지우고 몸 하나가 살아나는 순간”
그리고 그것은 1연에서 말한 “그곳에서 망초는 시간을 밀어올렸다”와 관련이 되어진다. 망초라는 이름도 재미있다. 시인은 이 망초라는 말을 통해서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했을까?
그 망초는 햇살을 받으면서 무지개를 닮아가기 시작한다. 무지개는 새로운 약속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널리 사용되어진다. 특히나 성경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그 무지개를 본 아버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눈물은 구제역으로 돼지들이 숨진 땅 위에 새로운 밭을 가는 밭고랑으로 형상화된다.
아버지는 결국 수술실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시인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수술에서의 회복이 아니다.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이고,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다. 그리고 안개는 아버지의 눈물과 함께 사라져간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인간실존의 불안과 희망에 관해서 질문하는 깊이 있는 시이다. 더 보기
— 문근영님과 함께. 오늘 우리가 읽을 시는 문근영 시인의 시 “안개를 열다”이다.
안개를 열다...
- 문근영 -
심해지던 기침에서 가래가 떨어졌다
파놓은 구덩이에 돼지들을 밀어 넣으면
그곳에서 망초는 시간을 밀어올렸다
하늘은 온통 먹통이고
젊음을 갉아 먹은 자리에 돋은 상처로
병실 침상에 누워있는 아버지
눈동자에서 다섯 개의 별이 다투어 반짝이고 있었다
가슴 한복판에 한 뼘 정도의 먹줄이 튕겨지고
갈비뼈를 자르고 난 후 꺼내놓은 심장은 자욱한 안개였다
엷은 창문을 흐리게 하던 새벽녘
몸에 새긴 길은 휘청거리고
몸 하나를 지우고 몸 하나가 살아나는 순간
판막을 건넨 돼지는
비틀거니는 걸음으로 안개의 강을 건너갔을 것이다
아픈 기억이 빠져나간 몸은
물기 젖은 이마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햇살을 기억하고서야 망초는 무지개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통증 도려낸 후 새살 돋는 자리
빈 축사에 남겨진 아버지가 남긴 눈물에서
말끔하게 닦인 밭고랑 하나가
구제역으로 생겨난 망초의 언덕을 가르고 있다
뜨거운 입김이 안개를 가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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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마을” 창간호에 실린 문근영 시인의 시 “안개를 열다”이다.
문근영 시인의 이 시는 두 가지 상황이 상호교차하면서 그 의미를 확증해간다는 점에서 시적인 고도의 기교를 느끼게 한다. 이 시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의 상황은 아버지의 심장 수술이다. 또 다른 하나의 상황은 구제역으로 수많은 돼지들을 산 채로 묻어야만 했던 상황이다. 시인은 이 두 가지 서로 연관성이 별로 엮어지지 않는 사건을 시적기교를 통해서 엮어가고 있다.
시인이 보기에 아버지의 기침은 구제역으로 돼지들을 산채로 묻어야 했던 사건과 관련이 있다.
“심해지던 기침에서 가래가 떨어졌다”
이 시에서 가래의 떨어짐은 구제역으로 돼지들이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 장면과 겹쳐진다. 시인이 보기에 아버지의 병(심장병?)은 돼지들을 묻어야만 했던 아버지의 업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늘은 온통 먹통이다. 그 행위는 자신의 행위의 결과였으므로 하늘은 그것에 응답할 의무가 없다. 젊음을 온통 바쳤던 돼지축사는 구제역이라는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아버지는 병을 얻었다. 그 아버지의 눈동자에서는 지금 다섯 개의 별이 반짝이고 있다. 그 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는다. 죽음의 별일까 아니면 희망의 별일까? 오망성은 두 가지 의미를 충분히 다 가지고 있다.
그런 아버지의 상황은 “안개”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겠다. 시인의 아버지는 수술을 한다. 시인은 말한다.
“가슴 한복판에 한 뼘 정도의 먹줄이 튕겨지고”
수술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시구를 시인은 목수가 재단하는 장면과 겹쳐서 읽는다. 목수가 재료를 자르기 전에 먼저 먹줄을 튕긴다. 그 먹줄을 따라서 목수는 재단을 하고 하나의 집이 서서히 완성되어간다. 시인이 왜 굳이 목수의 먹줄을 수술실의 장면과 겹쳤을지에 관해서 한 가지 가정은 가능하다. 시인은 아버지의 삶을 무너진 집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집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목수는 재단을 한다.
“갈비뼈를 자르고 난 후 꺼내놓은 심장은 자욱한 안개였다”
안개라는 말은 불확실성을 은유하는 말이다. 그러나 근원적으로는 인간의 불안을 은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불안은 두려움과 다르다. 두려움에는 대상이 있지만 불안에는 대상이 없다. 신학자인 폴 틸리히는 이러한 불안을 세 가지로 구별한다. ‘죽음의 불안’ ‘무의미성의 불안’ 그리고 ‘정죄의 불안(죄의식의 불안)’이 그것이다. 수술과 관련되어서 아버지의 불안은 이 세가지를 다 포함하고 있다. 아버지는 구제역으로 많은 돼지들을 자신의 손으로 묻어야 했던 죄의식이 그의 내면 속에 상존하고 있다. 또 수없는 죽음을 목도하면서 생의 무의미성이 그를 잠식하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에 대한 죽음의 불안이 아버지를 얽매고 있다. 그 모든 불안은 안개로 상징된다. 그래서 아버지의 심장을 꺼내놓았을 때에 그것은 “자욱한 안개”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그 안개는 수술되어져야만 하는 안개이다. 시인은 안개를 아버지의 심장, 곧 아버지의 존재의 중심으로부터 떼어내는 것을 일종의 새로운 건축으로 본다. 그리고 그 떼어낸 안개는 구제역으로 묻힌 돼지와 함께 안개의 강을 건너간다. 모든 안개는 돼지가 가지고 사라져간다. 사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대속의 개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시에서 아버지의 죄의식과 무의미성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을 지고 가는 것은 아직은 돼지이다. 그 돼지가 죽음으로써 아버지는 살아난다. 그 장면이 이렇게 표현된다.
“몸 하나를 지우고 몸 하나가 살아나는 순간”
그리고 그것은 1연에서 말한 “그곳에서 망초는 시간을 밀어올렸다”와 관련이 되어진다. 망초라는 이름도 재미있다. 시인은 이 망초라는 말을 통해서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했을까?
그 망초는 햇살을 받으면서 무지개를 닮아가기 시작한다. 무지개는 새로운 약속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널리 사용되어진다. 특히나 성경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그 무지개를 본 아버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눈물은 구제역으로 돼지들이 숨진 땅 위에 새로운 밭을 가는 밭고랑으로 형상화된다.
아버지는 결국 수술실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시인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수술에서의 회복이 아니다.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이고,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다. 그리고 안개는 아버지의 눈물과 함께 사라져간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인간실존의 불안과 희망에 관해서 질문하는 깊이 있는 시이다. 더 보기
출처 : 대구 문학 - 시야 시야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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