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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목련의 變奏로 무르익는 봄 - 박완호

문근영 2014. 4. 26. 11:21

▣ 이 계절의 테마시 읽기

목련의 變奏로 무르익는 봄

- ‘브라자’와 ‘빤스’에서 ‘목련 전차’까지

 

박 완 호

 

 

 

 

 ‘꽃눈이 붓을 닮아서 목필(木筆)이라고도 하고, 꽃봉오리가 피려고 할 때 끝이 북녘을 향한다고 해서 북향화’라고도 하는 목련은 가장 대표적인 봄꽃이다. “오 내 사랑 목련화야”로 유명한 가곡 「목련화」나 박목월의 시로 알려진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로 시작되는 「사월의 노래」는 물론, 「아침이슬」의 가수 양희은이 부른 「하얀 목련」에 이르기까지 목련은 수많은 노래로 만들어지고 불려왔다.

 그래서일까? 처음 이 글을 쓸 작정을 하는 순간 당연한 것처럼 목련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최근 출간된 시집들로부터 시작하여 한 권 한 권 시집의 갈피를 넘겨가며‘목련’을 다룬 시들을 찾아 낯설고도 익숙한 여행길에 올랐다. 잠시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 방랑자의 눈으로 시의 담장에 피어난 목련꽃들을 쳐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목련꽃 목련꽃/ 예쁘단대도/ 시방/ 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

목련송이만할까/ 고 가시내/ 내 볼까봐 기겁을 해도/

빨랫줄에 널린 니 브라자 보면/ 내 다 알지/

목련꽃 두 송이처럼이나/ 눈부신/ 하냥 눈부신/ 저……

- 복효근 詩, 「목련꽃 브라자」 전문

 

 

 담장 너머로 갓 피어난 하얀 목련꽃이 보인다. 막 부풀기 시작하는 꽃송이를 보며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 목련송이”를 떠올리는 화자의 눈빛이 야하기는커녕 한없이 순진하게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복효근 시인의 「목련꽃 브라자」는 이른 봄만큼이나 순수하고 생명감 넘치는, 갓 깨닫기 시작한 첫사랑의 설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빨랫줄에 널린 니 브라자”를 쳐다보는 시선 속에서 막 첫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사춘기 소년의 두근거리는 박동소리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빤스만 주렁주렁 널어놓고/ 흔적도 없네//

담 너머 다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 다 본다/ 한 접도 넘고 두 접도 넘겠네//

빨랫거리 내놓아라 할 땐/ 문 쳐닫고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겨우내 빤스만 사 모았나//

저 미친 년, 白晝에/ 낯이 환해 어쩔거나/ 오살 맞을 년//

- 정병근 詩, 「목련」전문

 

 

 「목련꽃 브라자」가 사춘기 시절에 겪는 첫사랑의 설렘을 담고 있다면, 정병근 시인의 「목련」에서는 그 시절을 한참 넘긴 화자의 성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련꽃이 만발한 담장 너머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막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선혜의‘브라자’가 아니라, “겨우내 빤스만 사” 모은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주렁주렁 널린 ‘빤스’들만 가득하다. 낯 뜨겁게 들릴 법도 하지만, “저 미친 년”이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천박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낯이 환해질 만큼” 천진하고도 환한 익살을 속에 품고 있는 까닭이리라. ‘브라자’이든 ‘빤스’이든 간에 두 시인의 눈에 비친 ‘목련’은 성숙한, 아니 성숙해 가는 여성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늙은 여승이 나뭇가지 끝에 서서 버스를 기다린다

겨울을 한 해 더 넘겼으니 달라져야겠다

주름이 더 많아져야겠다

급히 잠 깨어 일어났으나

물이 차

손을 맑게 씻기 어려웠다

고양이 그림자에 놀란

봄이 급정거하다

한껏 당겨 쥔 우윳빛 바랑 줄을 끊었다

나무 밑이 축축하다

쏟아져 내리니 검붉게 썩어가는 생리대뿐이다

귀가 질긴

봄이 불가불 눈썹 사이로 걸어 들어올 때

가진 등 모조리 밝혀 얼굴을 비춰본 적 있다

- 조 정 詩, 「목련」 전문

 

 

 앞의 두 시인의 눈에 비친 ‘목련’이 성적 이미지로 충만한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반해, 조 정 시인의 「목련」은 “나뭇가지 끝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성적 이미지가 다 지워진 ‘늙은 여승’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시간 또한 꽃이 피는 순간이 아니라 꽃이 지는 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겨울을 한 해 더 넘겼으니 달라져야겠다/ 주름이 더 많아져야겠다”, “쏟아져 내리니 검붉게 썩어가는 생리대뿐이다”라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예사롭지 않은 성찰과 함께 중년을 넘어서고 있는 화자의 목소리가 짙게 묻어난다.

 

 

나는 떨고 있었다/ 길바닥에 깔린 주검들 때문은 아니었다/ 이상한 시누대라니/ 야간운행 중 전복된 차량에서 쏟아져 나온 닭들 꼼짝없이/ 양쪽 가드레일에 깃털뭉치처럼 얹혀서 오가도 못하고/ 한 톨의 곡식쪼가리는 머나먼 얘기/ 도로를 질주하는 두 마리의 거대한 불 구렁이들만 지켜보는데/ …(중략)… 마당가 늙은 나무의/ 마침내 영혼을 수락하는 횃대/ 울퉁불퉁 몸을 빌려 부린가 날갠가/ 희디 흰 신생이 가난하게 떨고 있었다//

- 이자규 詩, 「목련」 부분

 

 

목련은

허둥지둥 조바심만 가지 끝에 남겨놓고

흰 나비되어 땅에 내려앉는다

 

…(중략)…

 

매일 누군가 목련처럼 생을 마친다

흰나비 떼 나는 날에도 상여는

산모롱이를 돈다

사랑했던 사람들의 곡소리 사라지는 동안

순백의 인연은 삼베옷으로 갈아입고

한 잎 한 잎 시커멓게 멍이 든다

 

사랑은 가고

나포 들녘 팔 벌린 갯버들의 속살에서

봄은 또다시 흐드러진다

-이화영 詩, 「흐드러지는 봄」 부분

 

 

 꽃이 피는 계절이면서 꽃이 지는 계절인 봄은 본질적으로 ‘신생(생성)’과 ‘죽음(소멸)’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자규 시인의 「목련」과 이화영 시인의 「흐드러지는 봄」은 봄이 갖는 그런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울퉁불퉁 몸을 빌려 부린가 날갠가/ 희디 흰 신생이 가난하게 떨고” 있는 모습(이자규)이나 “조바심만 가지 끝에 남겨 놓고/ 흰 나비 되어 땅에 내려앉는” 모습(이화영)은 목련이 지닌 두 운명, 운명의 얼굴들이다. 그 속에서는 “매일 누군가 목련처럼 생을 마치”지만, “나포 들녘 팔 벌린 갯버들의 속살에서/ 봄은 또다시 흐드러지”는 것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목련을 끌어안았다

꽃피는 순간을 지켜보고 싶어 목련의 남편처럼

종일 곁을 서성거렸으나 그녀는 경련하지 않았다

배가 불룩한 목련은 지금 임신 중, 그녀는 행복할까

목련을 가까이하면서 내 불행이 꽃피지 않기를

나는 빌었다 나는 불행하지 않다 절대 불행하지 않다

일기 대신 기록하는 불안한 문장들,

나는 행복을 꿈꾸지도 않으면서 왜 불행에 민감한 걸까

 

내가 잠든 사이 목련이 한꺼번에 뭉텅 꽃을 피워놓았다

오래지 않아 꽃잎들은 흩날릴 것이지만

그것이 목련의 불행은 아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다 비워버린 상태,

그것을 불행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출산으로 할쑥한 그녀를 위해

내 살을 한 근 베어내어 뿌리 곁에 묻어주고 싶다

소리 없이 함성을 지르는 목련의 흰 꽃잎들,

저것들을 먹여살리는 힘은 그녀의 뿌리에서 나오는 법

나 목련을 끌어안으며 네가 행복하다면

내 불행쯤은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할게……

중얼거려보는 일이 내 일과이다

가난이 불행을 몰고 온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꽃잎들 후드득 지면 그 꽃잎들 잘근잘근 씹어

내 피가 되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 김충규 詩, 「목련을 끌어안다」 전문

 

 

 김충규 시인의 「목련을 끌어안다」는 ‘목련’의 낙화가 ‘죽음’이 아니라 ‘출산’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드러낸다. 그러한 깨달음은 뜨내기의 것이 아니라, “목련의 남편”처럼 종일 곁을 서성거리며 “꽃이 피는 순간을 지켜보”는 이만이 다다를 수 있는 경지이다. “오래지 않아 꽃잎들은 흩날릴 것이지만” 그것은 바로 ‘목련’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다 비워버린 상태”인 것이다. 그는 그것을 ‘목련’의 불행이라고 말하는 대신, 오히려 “출산으로 할쑥한 그녀를 위해/ 내 살을 한 근 베어” 주고 싶어 한다. 이쯤 되면 사랑은,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마주칠지도 모르는 어떤 불행이라도 능히 감당하고도 남을 만한 힘을 갖게 되리라. “목련을 끌어안으며 네가 행복하다면/ 내 불행쯤은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할게”라고 속삭이는 그의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다.

 

 

문을 열고 나오다/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목련꽃이 너무나 깊게/

나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날 이삿짐을 나르다가/

장롱이 안 들어가서/ 목련나무 몇 가지를 자른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때 일 때문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금방 내 옹졸한 속을 알아차립니다/

벌써 목련나무는 그 잘렸던 상처를/ 꽃으로 삼켜 버린 지 오래입니다.

- 서수찬 詩, 「지하 셋방 앞 목련나무」 전문

 

 

 서수찬 시인의 「지하 셋방 앞 목련나무」는 “잘렸던 상처를/ 꽃으로 삼켜버린”, 상처를 딛고 꽃을 피워 낸 목련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돈이니 개발이니 해 가면서 생명이 지닌 가치를 하잘 것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요즘의 풍토 속에서, “지난 날 이삿짐을 나르다가/ 장롱이 안 들어가서/ 목련나무 몇 가지를 자른 것” 때문에 마음을 쓰는 화자의 모습을 통해 진지하게 생명을 대하는 남다른 태도를 찾아내는 것 또한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활짝 핀 목련꽃을 표현하고 싶어

온종일 목련나무 밑을 서성였네

하지만 봄에 면해 있는 목련꽃을 다 표현할 수 없네

 

목련꽃을 쓰는 동안 목련꽃은 지고

목련꽃을 말해보는 동안

목련꽃은 목련꽃을 건너

캄캄한 제 방(房)에 들어

천천히

귀가 멀고 눈이 멀고

 

휘어드는 햇살을 따라

목련꽃 그림자가 한번쯤 내 얼굴을 더듬을 때

목련꽃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 봄 내내 나는 목련꽃을 쓸 수도

말할 수도 없이

그저 꽃 다음에 올 것들에 대해

막막히 생각해보는데

 

목련꽃은 먼 징검다리 같은 그 꽃잎을 지나,

적막의 환한 문턱을 지나

어디로 가고

말라버린 그림자만 후두둑,

검게 져내리는가

- 고영민 詩, 「목련에 기대어」 전문

 

 

 활짝 핀 목련꽃은 “먼 징검다리 같은 그 꽃잎을 지나,/ 적막의 환한 문턱을 지나/ 어디로” 가는 것일까? 고영민 시인의 「목련에 기대어」의 화자는 “말라버린 그림자만 후두둑,/ 검게 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그것은 생성과 소멸을 아우르는, 아름다움 뒤에 숨은 존재의 본질에 관한 형이상학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 “봄에 면해 있는 목련꽃을 다 표현할 수 없네”와 같은 진술에는 언어 행위에 대한 시인의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그대로 담겨 있다.

 맹문재 시인의 「목련꽃」은 보다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고민의 답을 구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과거와 현재, 현상과 본질을 아우르는 깊이 있는 통찰을 통해 소외된 인간 존재에 대한 걱정과 애정을 끈질기게 밀고 나가려는 자세를 지닌 그의 눈에는 목련꽃이 떨어져 뒹구는 모습조차도 “나의 길을 내기 위해 목련꽃들이/ 천둥소리를 잡아먹고 널브러진 채 죽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천둥 치는 소리가 들린다

비도 제법 내리는 것 같다

택시에 받혀 나가떨어진 엊저녁 퇴근길에 본 사내가 떠오른다

그의 아내도 저 천둥소리를 듣고 있을까

정비공으로 일하는 작은동생의 운전길이 미끄러울 텐데

쇠를 만들어 밥 먹는 제철소 친구들의 안전화가 젖을 텐데

자전거를 타고 건너다가 넘어졌던 그곳 철길이 여전히 미끄러워

나는 이불 속으로 움츠러든다

이사를 다녔던 거미줄 같은 길들이 질펀하다

시골집의 낡은 전선과 형광등이 괜찮을까

할머니의 산소가 허물어지지 않을까

잠자다가 일본 광산에 끌려간 조선인들, 그들이 탄 열차가 흔들린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고향을 바라보았을까

그날도 저렇게 비가 내리지 않았을까

 

출근하려고 현관문을 열다가 깜짝 놀랐다

 

나의 길을 내기 위해 목련꽃들이

천둥소리를 잡아먹고 널브러진 채 죽어 있는 것이다

- 맹문재 詩, 「목련꽃」전문

 

 

 

한 알의 모래 속에 누가 살고 있을까

한 알의 모래 속에 우주가 있다 하나

우주 속엔 누가 살고 있을까

처음 소양강 댐의 물을 바라보며 가슴이 뻥 뚫리던 기억

동해 망상 앞바다에서 일출을 보며 가슴이 무너지던 기억

태평양을 건너며 저 물을 대체 누가 다 마실 것인가

코끝이 찡해지며 살아갈수록 세상은 넓어지고

그만큼 가슴은 미어지는데 나는 또 오늘 목련꽃 그늘 아래서

한 알의 모래 속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한 알의 모래 속에 우주가 있다 하나

우주 속엔 또 어떤 가슴 무너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목련꽃 뚝뚝 떨어트리며 그렇게 앉아 있다

- 박 철 詩, 「목련꽃 그늘 아래서」 전문

 

 

 박 철 시인의 「목련꽃 그늘 아래서」의 화자가 보여주는 태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목련꽃 그늘 아래 앉아 “우주 속엔 또 어떤 가슴 무너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겪는 그의 모습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목련꽃 그늘’은 그에게는 ‘한 알의 모래’에서 시작하여 ‘우주’로 까지 치달은 시인의 사유가 깊어질 대로 깊어지는 공간이며 시간이다.

 

 

어둠을 밀어내려고, 전 생애로 쓰는 유서처럼

목련은 깨어 있는 별빛 아래서 마음을 털어놓는다

저 목련은 그래서, 떨어지기 쉬운 목을 가까스로 세우고

희디흰 몸짓으로 새벽의 정원, 어둠 속에서

아직 덜 쓴 채 남아 있는 시간의 눈을 바라본다

그 눈으로부터 헤쳐 나오는 꽃잎들이

겨울의 폭설을 견딘 것이라면, 더욱더 잔인한 편지가

될 것이니 개봉도 하기 전 너의 편지는

뚝뚝 혀들로 흥건하리라, 말이 광야를 건너고

또한 사막의 모래를 헤치며 마음이 우울로부터

용서를 구할 때 너는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말똥거리다 힘이 뚝 떨어지고 나면

맹인견처럼, 이상하고도 빗겨간 너의 그늘 아래에서

복부를 찌르는 자취와 앞으로 씌어질 유서를 펼쳐

네가 마지막으로 뱉어낸 말을 옮겨 적는다

- 박주택 詩, 「목련」 전문

 

 

 누군가의 말마따나 이제 잔치는 끝났다. 봄은 이미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고, 이제 목련은 죽음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 바야흐로 유서를 써야 할 시간이다. 그것은 겨울의 폭설을 견디고 눈으로부터 헤쳐 나온 꽃잎들이 떨어지기 쉬운 목을 가까스로 세우고 별빛 아래서 자신의 전 생애로 쓰는 유서이다. 또한 그것은 목련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 단숨에 써 내려갈 유서인 것이다. “어둠을 밀어내려고” 한 자 한 자 유서를 써 내려가는 박주택 시인의 「목련」은 그렇게 비장하면서도 결연한 목소리를 띠고 있다.

 

 

평생의 단짝 그는 둘도 없는 내 친구지만

단벌도 마음 뿌리라면 그와 나

헐벗은 우정뿐이었을까

오늘 국화꽃 틀로 짜 맞춘 정장 갖춰 입고

마침내 바꾸지 못할 웃음 하늘거리는 걸 보니

 

우리의 단벌 누가 기억할까

천지가 환하게

목련 새 옷 갈아입는 이 봄날에!

- 김명인 詩, 「목련」 부분

 

 

 죽음은 자신의 시간뿐 아니라 다른 존재의 시간과도 긴밀하게 닿아 있다. “천지가 환하게/ 목련 새 옷 갈아입는 이 봄날에!” “국화꽃 틀로 짜 맞춘 정장 갖춰 입고/ 마침내 바꾸지 못할 웃음 하늘거리”며 떠나가는 벗을 바라보는 화자에게 있어 봄날은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고 뒤바뀌는 뼈아픈 자리이다. 그렇다 죽음이다.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과연 누가 오늘의 나를, 지금의 우리를 기억할 것인가?

 

 

목련이 도착했다

한전 부산지사 전차기지터 앞

꽃들이 조금 일찍 봄나들이 나왔다

나도 꽃 따라 나들이나 나갈까

심하게 앓고 난 뒤의 머릿속처럼

맑게 갠 하늘 아래,

전차 구경 와서 아주 뿌리를 내렸다는

어머니 아버지도 그랬겠지

꽃양산 활짝 펴 든

며느리 따라 구경 오신 할아버지도 그랬겠지

나뭇가지에 코일처럼 감기는 햇살,

저 햇살을 따라가면

나무 어딘가에 숨은 전동기가 보일는지 모른다

전차바퀴 기념물 하나만 달랑 남은 전차기지터

레일은 사라졌어도,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레일을 따라

바퀴를 굴리는 힘을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지난밤 내리치던 천둥번개도 쩌릿쩌릿

저 코일을 따라가서 動力을 얻진 않았는지,

한 량 두 량 목련이 떠나간다

꽃들이 전차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든다

저 꽃전차를 따라가면, 어머니 아버지

신혼 첫밤을 보내신 동래온천이 나온다

-손택수 詩, 「목련 전차」 전문

 

 

 그러나 목련은, 해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다시 꽃을 피우리라. 다 끝난 줄 알았던 잔치를 막 접으려 하는 순간, 생명의 수레바퀴를 끝없이 돌려가며 길고 먼 추억 속으로부터 달려온 ‘목련 전차’가 마침내 우리 앞에 도착했다, 손택수 시인의 시는 우리에게 “레일은 사라졌어도,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레일을 따라/ 바퀴를 굴리는 힘”을 지닌 ‘목련 전차’를 타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꽃양산 활짝 펴 든/ 며느리 따라 구경 오신 할아버지”처럼, ‘전차 구경 와서 아주 뿌리를 내렸다는/ 어머니 아버지“처럼, 우리도 저‘목련 전차’를 타고 어디로든 봄나들이라도 가야 할 것 같다. “저 꽃전차를 따라가면” 과연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은 겨울 속 기다리는 봄은 아직 기척조차 없는데, 저 멀리 목련을 닮은 얼굴 하나가 내가 서 있는 쪽으로 꿈결처럼 눈길을 돌린다. 이제 서로 꽃 피는 순간이 곧 다가오리라. 다시 그리운, 몸살 나게 그리워할 날들이 왔다.

  - 계간 [통] (2010년 봄호)

 

 

*** 이 글에서 다룬 시집들

 

손택수, 「목련전차」/ 『목련전차』

김충규, 「목련을 끌어안다」/ 『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

복효근, 「목련꽃 브라자」/ 『목련꽃 브라자』

이자규, 「목련」/ 『우물치는 여자』

맹문재, 「목련꽃」/ 『책이 무거운 이유』

서수찬, 「지하셋방 앞 목련나무」/ 『시금치학교』

박 철, 「목련꽃 그늘 아래서」/ 『험준한 사랑』

이화영, 「흐드러지는 봄」/ 『침향』

조 정, 「목련」/ 『이발소 그림처럼』

박주택, 「목련」/ 『시간의 동공』

김명인, 「목련」/ 『꽃차례』

고영민, 「목련에 기대어」/ 『공손한 손』

정병근, 「목련」/ 『번개를 치다』

 

 

   

▣ 박완호 시인 : 충북 진천 출생.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내 안의 흔들림』『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아내의 문신』 등

 

- http://blog.naver.com/parkwanho 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우가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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