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철의 시학 | ||
|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33) | ||
| 홍씨와 탁씨 이은화 웜메, 고약헝 거. 자네 밥 냅두고 왜 놈의 밥을 묵는 당가 워따, 참말로 생사람 잡아불구만, 나는 내 밥 묵었단 말시 내 참! 눈구녕 뒀다 어따 쓸라고, 놈의 밥을 묵고 난리여 자네야말로 눈구녕 빼서 개한테나 줘불소 먼소리여! 나가 개눈깔 박아불었는가안. 그래도 눈두덩 만지문 수북한 것이 영판 좋당께 염병! 오죽 좋겄네. 그나저나 밥알 튕게 말 좀 살살 하소. 이놈의 밥알은 별시럽게 끈끈하고 지랄이여 어이, 탁씨. 그라지 말고 사람 불렀으믄 쌈 한 번 싸줘 보소. 지 입에다간 허천나게 쑤셔넣문서 병신, 자넨 손이 없당가 발이 없당가. 싸게 입 벌리게 워따! 안 주고 뭐한가. 맘보가 그 모냥잉게 눈꼬락서니가 그라제. 말 인심만 살아가고잉 사람, 성질머리 급하긴. 더듬는 것이 다 구멍이고 허방이랑께 # 침팬지가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을 함부르크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 출품했다. 높은 수준의 교양을 갖춘 관람객들은 덕지덕지 칠해 놓은 그림을 앞에 놓고 뭔가를 이해한 듯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감상했다. 전시회에 참석한 비평가들 역시 최고의 찬사를 보내며 엉터리 그림을 칭찬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한 유명한 비평가는 “말레비치와 미로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지만 나는 만족과 존경심을 가지고 이 그림들을 감상했다.”고 신문에 썼고, 당시 함부르크 미술관 관장은 “나는 이 그림에서 젊음의 신선함과 패기,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완벽하다.”고 썼다. 이 가증스런 사건은 현대미술의 허상을 낱낱이 폭로한 에프라임 키숀의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어제 어느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나는 오늘날 우리 시단의 일각에서도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시인은 메이저급 잡지를 통해 등단하였고, 평론가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그의 작품을 읽어도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시의 내용은 제쳐놓고 이미지만 보려고 해도 감이 잡히지 않아 책을 덮고 말았다. 나에게 그 시는 침팬지가 그린 그림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평론가의 한두 마디에 크게 좌우되는 귀 얇은 독자들은 말한다. “유명 평론가나 시인들이 다 좋다고 하니 분명 뭔가가 있는 거야. 그 심오한 작품을 나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몰라.” 이게 우리 시단의 현실이다. 말도 안 되는 사이비시를 위대한 작품인 양 칭송하는, 언론과 주요 문학지에 의해 과대 포장된 글덩어리에 파리 떼처럼 달려들어 흠향하는, 그리하여 날로날로 고매한 문화 강국이 되어가는. 이은화 시인의 「홍씨와 탁씨」는 최소한 침팬지 그림처럼 사기 치는 시는 아니다. 그래서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다. 우선 이 시는 재미가 있다. 이문구나 김주영의 소설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시골 장터에 나온 두 사내가 홍탁을 앞에 놓고 농을 주고받는 장면 같기도 하다. 시의 등장인물은 시각장애인 두 사람이다. 홍씨와 탁씨가 밥을 먹으면서 나누는 걸쭉한 대화가 일품이다. 전라도 사투리의 말맛을 가장 잘 구사한 박상륭의 소설 ‘남도’나 오탁번의 ‘폭설’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면서 왜 남의 밥을 먹느냐고 실랑이를 벌이는데 한 마디 한 마디가 웃음을 짓게 한다. 3연까지는 두 사람이 남의 밥에 손댔다고 다투다가 4연에서 홍씨가 탁씨에게 쌈을 싸달라고 한다. 탁씨는 마뜩찮게 생각하면서도 밥을 싸서 들이밀지만 조준을 잘못하여 홍씨의 화를 돋운다. 왜 밥을 빨리 주지 않느냐고 하자 탁씨는 성질 급한 홍씨를 탓하며 ‘더듬는 것이 다 구멍이고 허방이랑께’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촌철(寸鐵)이요 화룡점정이다. 허망한 삶의 핵심을 명쾌하게 꿰뚫고 단숨에 산문에서 시로 도약하는 순간이다. 마지막 한 행이 없었다면 이 시는 단순한 산문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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