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독한 죽음의 참상 | ||
|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34) | ||
| 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 이 진 명 김노인은 64세, 중풍으로 누워 수년째 산소호흡기로 연명한다 아내 박씨 62세, 방 하나 얻어 수년째 남편 병수발한다 문밖에 배달 우유가 쌓인 걸 이상히 여긴 이웃이 방문을 열어본다 아내 박씨는 밥숟가락을 입에 문 채 죽어 있고, 김노인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급차가 와서 두 노인을 실어간다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거동 못해 아내를 구하지 못한, 김노인은 병원으로 실려가는 도중 숨을 거둔다 아침신문이 턱하니 식탁에 뱉어버리고 싶은 지독한 죽음의 참상을 차렸다 나는 꼼짝없이 앉아 꾸역꾸역 그걸 씹어야 했다 씹다가 군소리도 싫어 썩어 문드러질 숟가락 던지고 대단스러울 내일의 천국 내일의 어느 날인가로 알아서 끌려갔다 알아서 끌려가 병자의 무거운 몸을 이리저리 들어 추슬러놓고 늦은 밥술을 떴다 밥술을 뜨다 기도가 막히고 밥숟가락이 입에 물린 채 죽어가는데 그런 나를 눈물 머금고 바라만 보는 그 누가 거동 못하는 그 누가 아, 눈물 머금은 신(神)이 나를, 우리를 바라보신다 # 요즈음 시들은 엇비슷하다. 일란성 쌍둥이처럼 너무 많이 닮아 있다. 복제 기술을 잘 터득한 덕분이다. 미래파 이후 시단에 나타나는 기이한 질병 중의 하나이지만 누구도 쉽게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복제하여 처음에 새로운 개성으로 다가왔던 것들이 또 다른 진부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그런 징후가 농후하게 드러난다. 어느새 그들도 더 이상의 고투 없이 현실에 안주해버린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시는 끝없는 모험이고 도전인데 유사 상품을 찍어내듯 시 역시 이미지, 기법, 상징과 비유의 질료까지도 너무 비슷하게 닮아가고 있어 쉽게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낡은 서정과 기법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그들이 결국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그런 염려를 불식시키는 한 편의 시가 있다. 독자의 해석과 감상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고, 공간과 시간 앞에 무한히 열려있는 이진명 시인의 작품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다가온다. 섬뜩하기도 하고 가슴 저리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상황을 눈앞에 펼쳐 보여주면서 생의 어두운 그림자에 전율하게 한다. 삶의 이면이 비수처럼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1연에서 신문기사가 건조하게 소개된다. 그 기사의 내용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화자는 아연해지고 만다. 아침신문이 차린 ‘지독한 죽음의 참상’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한 현실이다. ‘꼼짝없이 앉아 꾸역꾸역 그걸 씹어야 했’지만 화자가 신문기사를 통해 목격한 상황은 비극적 실존의 극단이다. 기도가 막혀 죽어가는 아내를 눈앞에서 보면서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노인의 참담함, 그저 눈물만 흘리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남편의 비통함이 가슴을 도려내는 것이다. 2연에서 화자는 숟가락을 내던지고 ‘내일의 어느 날’로 이동한다. 현실에서 상상의 공간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화자 역시 노인 부부와 똑같은 현실을 가상체험하는 것이다. 누구도 비극적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신문에 난 기사처럼 쓸쓸한 노후를 적막한 시간에 파먹히며 외롭게 살다가 아무도 없는 밀폐된 방에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미래의 우리의 삶이다. 그 때 ‘눈물 머금은 신(神)이 나를,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다. 오직 그뿐이다. 그리고 금세 잊혀지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피폐한 삶의 마지막 풍경이라면 너무 처연하고 허망하지 않은가. 이성아 소설가의 「밤눈」에서 작중화자는 “아, 삶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요. 아무런 징조도 예고도 없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말이지요, 질기디 질긴 것이 또한 삶이 아니겠는지요.”라고 말한다. 이 한 마디의 말이 그래도 쓸쓸한 삶의 외곽에서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 촛불 같은 것은 아닐는지. 끝내 살아야 하고, 살아내야 하는 산 자의 몫은 아닌 것인지.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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