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시평
신광철
너에게
최승자
네가 왔으면 좋겠다.
나는 치명적이다.
네게 더 이상 팔게 없다.
내 목숨 밖에는.
목숨밖에 팔게 없는 세상,
황량한 쇼 윈도 같은 나의 창 너머로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내리고,
나는 치명적이다.
네게, 또 세상에게,
더 이상 팔게 없다.
내 영혼의 집 쇼 윈도는
텅 텅 비어있다.
텅 텅 비어,
박제된 내 모가지 하나만
죽은 왕의 초상처럼 걸려 있다.
네가 왔으면 좋겠다.
나는 치명적이라고 한다.
어찌하면 좋으냐, 살아있음을
치명致命, 치명은 목숨에 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운명의 극한점에 다다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합니다. 곧 죽음이나 운명의 막다른 지점에 이른 것을 표현하는 단어지요.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상황이 바로 코앞에 있음을 아무런 비유나 수사가 없이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나 자신의 상황보다 먼저 간절하게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네’라는 존재입니다. 내가 지금 죽어가는 상황에서 너무나 안타깝게 찾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것도 시의 첫머리에. 직설적이고도 도발적인 시입니다. 그만큼 절박하고 아픈 상처를 입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치명, 치명의 순간에 찾는 사람, 깨어진 사랑이어서 간절했을까요, 이미 사라진 사랑이어서 절절했을까요. 다른 시에서도 기다리는 사람에 대한 내용이 중복됩니다. 여기서도 절절하고 또한 애절합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네가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 네가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평생을 뒤척였다.'라는 시에서는 읽는 이를 아프게 합니다.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었고 그 긴박함을 평생을 가져갈 만큼 아파하는 시인의 심정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더는 모릅니다. 형용사도 없고, 부사도 없습니다. 담백한, 그러나 너무나 턱에까지 차오른 그리움입니다. 사랑은 치명적인 그리움을 만든 후에야 완성되는 중독이었습니다.
네가 왔으면 좋겠다.
나는 치명적이다.
‘나는 치명적이다.’라는 말, 그 이전에 뼈를 시리게 하는 기다림에는 목이 탈만큼 갈증이 담겨 있고, 맨발로 얼음 위를 걷는 상황에 직면한 내가 있습니다. ‘나는 치명적’인 상황입니다. 어찌하면 좋으냐, 살아있음을. 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외치고 싶을 것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했던 간절히 기다려야만 했던 사연이 깊었던 죽음이 목전까지 치달은 상황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음의 시한폭탄을 운명으로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란 존재에게 고난은 필연처럼 따라다닙니다. 우연처럼 다가오지만 결국은 깊은 운명의 연결고리를 서로 걸게 되는 것이 인생이더군요. 저는 사실 최승자 시인을 모릅니다. 한비문학의 김영태 시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개받은 시인입니다. 김영태 시인은 ‘염세주의자여서’ 추천한다고 하더군요. 벅찬 인생에 대한 동질감이 김영태 시인의 마음을 휘어잡았구나! 순간 생각했습니다. 맞습니다. ‘벅찬 인생에 대한 동질감’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영태 시인도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 것을 감으로 느꼈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최승자 시인의 시를 만나서 즉흥적으로 느낀 점은 많이 힘들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직설적이고 수사가 적고 미학이 사라진 툭 내뱉는듯한 단어들이 거칠게 표현되고 있었습니다. 시어들을 보듬어 안거나 긍정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가지 않고, 가파른 철거민촌 골목길의 숨 가쁜 상황의 언어들이 가감 없이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시가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김수영 시인을 떠올렸습니다. 신동엽 시인이 ‘어두운 시대의 위대한 증인’이라고 한 김수영 시인 말입니다. 김수영 시인도 직설과 독설의 미학을 즐긴 시인이었거든요. 극히 현실적인 상황을 시의 주제로 삼아 그린 점도 비슷합니다. 이미지와 형상화에는 관심이 없는 지금, 당장의 거친 상황에 초점을 맞춰서 시를 만들어내고 있는 점이 아주 유사합니다.
네게 더 이상 팔게 없다.
내 목숨 밖에는.
목숨밖에 팔게 없는 세상,
황량한 쇼 윈도 같은 나의 창 너머로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내리고,
나는 치명적이다.
정말 급한 상황입니다. 세상이 나를 버릴 때 나도 세상을 버리면 되지만 그것이 쉬우면 세상 걱정할 것이 없겠지요. 그래서 더러운 목숨이라고 하나 봅니다. 죽을 수도 없고 살아가기에는 더 힘든 상황을 두고 정말로 더러운 세상이라고 하나 봅니다. 최승자 시인의 시평 제목이 ‘어찌하면 좋으냐, 살아있음을’이라는 문장은 제가 오래전 시에서 썼던 글입니다. 정말 제가 그랬거든요. 어둠의 동굴을 지나올 때 적었던 글이었지요. 최승자 시인은 인생 전반이 힘들었음을 보았습니다.
최승자 시인은 자신의 상황이 그대로 시가 되었습니다. 심신쇠약과 정신분열 증세를 앓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입원 중입니다. 누구를 만날 대에는 외삼촌이 보호자로 나와야 할 만큼 쇠약해지고 정신적으로는 나약해진 상황입니다. 지면을 통해 최승자 시인의 발언이 공개되었습니다. 최승자 시인의 최근의 발언 내용을 소개합니다.
어느 해에는 여섯 달쯤 잠을 못 잤어요. 아무런 음식도 먹지 못했고. 잠을 못 자면 소주를 마시고 쓰러져 잤는데, 나중에 심해지면서 술을 마시는 것조차 생각나지 않았어요. 정신이 휑했지요.
사랑과 기다림, 그리고 세 평짜리 고시원과 여관방에서 밥 대신 소주로 연명한 시인
그녀는 가족이 없습니다. 서울의 세 평짜리 고시원과 여관방에서 밥 대신 소주로, 정신분열증으로, 불면의 시간으로, 죽음의 직전 단계까지 갔습니다. 최승자 시인의 외삼촌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최승자 시인을 찾아내 포항으로 데려왔습니다. 기지만 최승자 시인의 발언을 들어보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최승자 시인이 낸 시집들이 베스트셀러였음에도 시인은 궁핍해서 3평짜리 고시원을 전전했습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시가 낭송 되고 있었어요. '참 좋다, 누구 시인가' 혼자 이런 생각을 했는데 내 시였습니다. 한때 매스컴이나 문단에서 자주 내 이름이 거론됐어요. 하지만, 실제로 시집이 많이 팔린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내 시가 인용된다고 해서 시집이 많이 팔렸다는 것은 아니지요. 시를 쓰는 것으론 전혀 생활이 안 됐어요. 나는 번역을 해서 먹고살았어요. 영어 원서는 지금도 읽어내요. 그러다가 내가 지금의 이상한 병에 걸렸어요. 내게는 모아놓은 돈도 없었어요. 내 시와 번역서를 냈던 출판사 두 곳에서 내 사정을 알고 있었지요. 매달 25만 원씩 부쳐줬습니다. 하지만, 몇 해쯤 지나 내가 다시 번역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이젠 안 도와줘도 될 것 같다'고 내가 전화했어요. 출판사에서는 내 자존심을 헤아려줬습니다. 하지만, 내 병은 깊었어요.
언제부터인가 귀에 환청이 들리고 나도 모르게 헛소리를 하고 있었어요. 소주 말고는 전혀 음식물을 몸속에 넣을 수 없었어요. 그때만 해도 나는 서울의 한 친척집에서 지내고 있었지요. 그런 나의 이상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었습니다. 99년부터 친척집을 나와 고시원과 여관방을 떠돌았지요.
참 의아한 일 중의 하나가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시를 쓰느냐 하는 점입니다. 사람의 일은 묘해서 알 수 없지만 정말 답답한 부분이지요. 죽음에 이르는 상황에서도 시를 쓰겠다는 마음이나, 답답하고 앞이 막힌 상황에서 돈을 벌겠다는 의지보다 시에 대한 집념을 포기하지 못하는 시인의 마음입니다. “내 몸과 정신이 무너진 뒤였어요. 자신을 어떻게 통제할 수 없었지요."라고 말하는 최승자 시인은 위독합니다. 삶이 위험하고 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시인은 여전히 길 위에 있습니다. 노숙의 인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네게, 또 세상에게,
더 이상 팔게 없다.
내 영혼의 집 쇼 윈도는
텅 텅 비어있다.
텅 텅 비어,
박제된 내 모가지 하나만
죽은 왕의 초상처럼 걸려 있다.
다시 반복됩니다. 제목은 「너에게」입니다. ‘너’가 주제이고 소재이고 시의 전체를 아우르는 힘입니다. 시인의 마음 전체를 휘어잡고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공허하고 의지할 데 없는 현실적인 상황이 그려져 있습니다. 나를 전시하는 공간이면서 세상과 대면하는 공간을 굳이 ‘쇼 윈도’라고 표현했습니다. 소통의 공간이기도 했겠지요. 그곳에 처참하게 <박제된 내 모가지 하나만 / 죽은 왕의 초상처럼 걸려 있다.>고 합니다. 시인은 이 시대에 무엇이고 시인의 사명은 과연 있는 것인가 의문을 던져봅니다.
마지막 연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연은 첫 연의 반복입니다. 전반부와 후반부를 같은 문장으로 귀결 지은 뜻은 하나라고 봅니다. 확신이겠지요. 그리고 반복이 아니라 전체를 꿰뚫은 마음을 시에 실현시킨 것이겠지요. 그래도 옮겨 봅니다. 최승자 시인의 마음의 전반을 일관한 글을 보는 것은 의미 있어 보입니다.
네가 왔으면 좋겠다.
나는 치명적이라고 한다.
한 사람을 태워버리고도 남은 주인공은 여기에서 ‘네’라고 한 ‘너’입니다. 너를 치명적인 '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첫 연에 도입부로 사용한 나의 상태는 마지막에도 여전히 치명적입니다. 살아있음이 죄가 된 적은 없지만 살아있음이 벌처럼 힘이 듭니다. 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벌을 받는 것처럼 힘이 든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한 얼굴에 웃음과 울음이 같이 있는 것을 봅니다. 눈에 있는 눈물샘과 눈가에 있는 눈웃음이 공존의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이 인생이지요. 어떤 사람에게는 유독 고독과 허무와 고난이 번갈아 옵니다. 최승자 시인의 인생이 그렇습니다. 시 한 편에 한 시인의 인생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음을 봅니다. 세상과의 만남에서 허무로 무장한 최승자 시인은 아팠고 아플 것입니다. 허무 위에 집을 지었으니 최승자 시인의 인생이 허무할 것이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허무하겠지요. 재료가 밀가루든 전분이든 허무로 버무린 것들은 모두 허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료가 인생이든 생활이든 친분이든 사랑가지도 허무로 버무리면 허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승자 시인은 사람이라는 이름을 만들어가는 것들을 허무로 재단하고 허무로 귀결지으려는 마음이 보입니다. 시인으로서는 성공했지만 시도 허무 위에 지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최승자 시인의 시에 귀를 기울이고 위안을 받고 찾았지만 정착 시인은 허무했습니다.
한때 문학은 대단하게 보였으나…, 시를 쓰는 일이 시시해졌어요. 시를 쓸수록 동어반복이 됐습니다. 다섯 권의 시집을 내면서 난 이미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봤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도 허무하고, 내가 묶여 있는 사회와 체제, 문명도 허망하기는 마찬가지였어요. … 허무와 절망은 내 운명이었어요. 문학은 슬픔의 축적이지, 즐거움의 축적은 아니거든요. 젊은 날 나는 무의식적으로, 충동적으로, 비명悲鳴처럼 시를 써왔어요. 세상이 따뜻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면 시를 못 쓰게 되지요. 그건 보통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이제는 시를 의식적으로 씁니다. 그럴 나이가 됐어요. 나도 살아가야 하니까요.
이제는 어느 정도 담담한 목소리를 내는듯하지만 여전히 허무로 무장한 최승자 시인의 발언이 보입니다. 그래도 "시를 계속 쓸 것이고, 밥만 잘 먹으면 돼요."라고 말하는 최승자 시인의 발언 내용을 지면을 통해서 보니 위안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아팠을지라도 한 사람의 시인이 직조한 시가 있어 행복했다고 하는 사람이 지상에 있으니 말입니다. 잘 팔리는 시집을 가졌음에도 밥 세끼와 잠자리를 해결 못 하는 시인의 인생 값은 얼마일까. 시집 한 권 값이 보통 6000원이니 5권을 냈다면 3만 원은 하니 시 한 편을 내면 받는 3만 원 정도의 원고료가 한 시인의 일당 값일까 생각해 봅니다. 시인의 하루 인생 값어치는 3만 원, 적어도 한 달 인생 값이 아니길 바래봅니다. 이렇게 객쩍은 이야기를 하는 나도 우습지요. 아픔의 길을 걷는 최승자 시인에게 귀 밝은 행운 하나 찾아갔으면 합니다.
-http://cafe.daum.net/hnbimh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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