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4)
연꽃 피는 날이면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아 연꽃이 피는 날이면 슬퍼집니다.
제 마음 길을 잃고 헤매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광주리는 비었건만 돌아보는 이도 없는 채 꽃은 남아있나이다. 오직 슬픔만이 가끔 이 몸에 닥쳐와 꿈에서 놀라 일어나면 남풍을 타고 불어오는 이상한 향기의 달콤한 흔적만이 느껴집니다. 이 어렴풋한 달콤한 향기가 그리움으로 내 가슴을 아프게 하니이는 여름이 뜨거운 숨길의 완성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될 뿐이옵니다. 이때에도 제 몸은 그렇게 가까이 있는 줄은 몰랐고
또 그것이 제 것이며 이 완전한 향기가 제 가슴
한 바닥에 피었을 줄은 몰랐나이다.
외국 시인들 가운데 일찍부터 우리에게 알려진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인도의 시인 타고르일 것이다. 타고르는 세계적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시인이다. 동양인으로서는 가장 먼저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안은 시인. 간디나 네루와 더불어 근대인도 독립과 자존의 초석을 놓았던 정신적 지주 가운데 한분. 그런데 그가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었던 것은 인도를 식민지 삼았던 영국에 유학한 덕이요 또 그 자신 영어를 잘 알아 영어로도 시를 썼을 뿐더러 영어권 시인들(가령 예이츠 같은 시인)과의 친교가 도왔다는 건 아이러니컬한 일이기도 하다.
타골이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데에는 아마도 그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처지의 식민지 백성으로서 독립을 잃고 신음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두 번씩이나 시를 써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한번은 최남선의 요구에 의해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에 쓴 「패자의 노래」요 또 한편은 1929년 그가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동아일보의 한 기자(동아일보 도쿄지국장 李太魯)로부터 한국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받았으나 그럴 수 없었음을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써준 넉 줄짜리 「동방의 등불」이란 시이다.
이 시는 시인 주요한의 번역에 의해 1929년 4월 2일자 동아일보에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는 등촉(燈燭)의 나라 조선/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1929.3.28 라빈드라닷 타고아’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 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의 이력에 대해서는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시인 독립운동가 사상가 교육가 화가 등 모든 이름을 합쳐야 타고르의 전인격이 완성되는 그는 매우 다면적이며 전인적인 인물이다. ‘벵골 문예 부흥의 중심이었던 집안 분위기 탓에 일찍부터 시를 썼고 16세에는 첫 시집 《들꽃》을 냈다’니 더 말할 것이 없는 일일 터. 1913년 노벨문학상을 탄 작품은 「기탄잘리」이다. ‘기탄잘리’란 ‘신에게 바치는 송가(頌歌)’란 뜻이다.
옮겨온 시 역시 예의 그「기탄잘리」 속에 들어있는 한 편이다. 「기탄잘리」는 103편으로 구성된 장시형태의 시집인데 이 안에 우리들이 좋아하는 시들이 많이 들어 있다. 일찍이 양주동 번역으로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바닷가에」도 「기탄잘리」 60번의 시이다. 한용운이나 신석정 선생이 젊은 시절 즐겨 읽었을 듯싶은 시 「님은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는 1번 시요 「님이 내게 노래하라 그러시면」은 2번 시이다.
「기탄잘리」 스무 번째의 시인 앞의 시는 참 아름답고도 순결한 시이다. 가슴이 콱 막히도록 정신의 향기가 느껴지는 시이다. 아 이런 시가 있었다니! 이런 시를 진작 알지 못했나니! 그러나 지금이라도 알았고 지금이라도 읽었으니 진정 좋지 않으신가? 시는 그 무엇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느껴질 뿐이고 전달될 따름이다. 더욱이나 분석되거나 해석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말은 거짓말일 뿐이다.
왜 시인은 ‘연꽃이 피는 날이면 슬퍼’졌을까? 모를 일이다. 그런 날에 왜 시인은 ‘길을 잃고 헤매’였을까? 그 또한 알지 못할 일이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자신도 시인처럼 빈 광주리를 하나 들고 연꽃이 피어있는 연못가를 한 바퀴 두 바퀴 돌아보는 일이 좋을 것이다. 누가 있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댄대도 어쩔 수 없는 노릇. 이제 남풍이 불었고 꽃도 피었으니 태양의 고도가 더 높아지고 따뜻해지면 연꽃이 피는 계절도 찾아올 것이다.
연꽃이 피는 계절만 생각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 살아있음의 감사여. 우리도 경건한 마음으로 노래하자. 인생을 노래하고 태양을 노래하고 연꽃을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하자. 아까부터 당신이 앞에서 웃고 계셨군요. 아 나에게 당신은 얼마나 감사한 사람인지요.
나태주 시인 약력
1945년 3월 16일 충남 서천 출생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대숲 아래서' 등단
2009년 한국시인협회상
2007년 황조근정훈장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회위원
공주문화원 원장
민문자 실버넷문화예술관장 mjmin7@silvernetnews.com
-http://silvernetnews.com/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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