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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문재의 <시월>을 좋아하는 10가지 이유 - 양창모 기자

문근영 2014. 2. 14. 10:49

 

 

이문재의 <시월>을 좋아하는 10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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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 입력 2008.10.12 1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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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양창모 기자]투명해지려면 노랗게 타올라야 한다.

 

 

 

시월

 

이문재 (1959~)

 

 

투명해지려면 노랗게 타올라야 한다

은행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은행잎을 떨어뜨린다

중력이 툭, 툭, 은행잎들을 따간다

노오랗게 물든 채 멈춘 바람이

가볍고 느린 추락에게 길을 내준다

아직도 푸른 것들은 그 속이 시린 시월

내 몸 안에서 무성했던 상처도 저렇게

노랗게 말랐으리, 뿌리의 반대켠으로

타올라, 타오름의 정점에서

중력에 졌으리라, 서슴없이 가벼워졌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시월

노란 은행잎들이 색과 빛을 벗어던진다

자욱하다, 보이지 않는 중력

 


은행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은행잎을 떨어트린다. 중력이 툭, 툭, 은행잎들을 따간다. 노오랗게 물든 채 멈춘 바람이 가볍고 느린 추락에게 길을 내준다. 아직도 푸른 것들은 그 속이 시린 시월 내 몸 안에서 무성했던 상처도 저렇게 노랗게 말랐으리, 뿌리의 반대켠으로 타올라, 타오름의 정점에서 중력에 졌으리라, 서슴없이 가벼워졌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시월 노란 은행잎들이 색과 빛을 벗어던진다. 자욱하다, 보이지 않는 중력 - < 시월 > 전문. 이문재 1. 2002년에 저는 대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2학기 전공수업을 듣던 10월의 어느 날, 교수님께서 수업 중간에 한 편의 시를 읽어주셨지요. '가을을 맞아 이 시를 음미해보는 것도 좋을 거야'라는 말씀과 함께.

2. 그 시가 < 시월 > 입니다. 이문재의 < 시월 > 입니다. 저는 '그 이문재인가?' 했답니다. 당시 저는 시사주간지 < 시사저널 > 에 실리고 있던 '이문재의 대선주자 릴레이 인터뷰'를 흥미롭게 읽고 있었거든요. 그의 기사는 여느 인터뷰와 달랐습니다.

6년이 지난 지금, 문장 하나하나를 그대로 복기할 순 없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글에선 보통의 기사문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향기가 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를 '빼어난 기자'로만 알고 있던 저는, 그때야 알았습니다. < 시월 > 의 이문재는 < 시사저널 > 의 이문재였다는 것을. 기형도가 그랬듯이, 그는 기자이며 또한 시인이었습니다.

3. 제게 이 시를 알려주신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 시월 > 은 가을에 읽기 좋은 시입니다. 가을, 은행나무의 잎들이 떨어지는 걸 보고 시인은 자신의 상처를 노래하지요. 가을의 풍경이 시인 내면의 풍경과 이토록 아름답게 결합한 시를, 저는 이후에 보지 못했습니다.

4. 시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리듬감이겠지요. '중력이 툭, 툭, 은행잎들을 따간다'라는 구절과 '타올라, 타오름의 정점에서' 같은 행을 읽을 때, 운율적 재미도 느낄 수 있겠지요.

5.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상식을 뒤집는 시인의 혜안을 파악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어요. '가볍고 느린 추락'이라니. '추락'이라는 단어 혹은 상식은, '가볍고 느린'이란 수식어와 연결되어, 결국 우리는 은행잎을 통해 모든 추락하는 것들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6. 그러나 제가 읽을 때마다 전율하는 문장은, 이 시의 첫 행입니다. '투명해지려면 노랗게 타올라야 한다'라니요. 때론 비열하고, 때론 비속하고, 그래서 결국 안쓰러운 나 자신을 버리고 깨끗해지려면, 나는 정녕 나를 태워야 하는 것일까요. 노랗게 물들어서, 아니 노랗게 타올라서 결국 떨어지는, 저 은행잎처럼.

7. 노랗게 타오르기 전, 지금의 제 모습은, 시인의 눈에 아마도 '푸르게' 비춰질 터입니다. 시인은 노래하지요. '아직도 푸른 것들은 그 속이 시린 시월'이라고. 우리가 청춘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모든 푸른 것들에게 기쁨만 느낄 때, 그는 '시린 속'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8. 타올라서, 노란 타오름의 정점에서, 은행잎들은 떨어집니다. 가볍게 추락하지만, 그 추락하기까지 그들이 타오른 과정들을 생각하면, 그것은 절대 가벼운 추락이 아니겠지요. 그래서 시인은 '서슴없이 가벼워졌으나 / 결코 가볍지 않은 시월'이라고 말하는 것인가요. 김훈의 단편 < 화장 > 이 생각납니다. 죽음을 앞둔 아내의 병간호를 하면서도 그는 남몰래, 회사의 여직원을 마음속으로 사모하지요. 치열한 내면의 싸움이 끝난 후에 그는 가벼워지지만, 그 가벼움에는 한없는 무거움이 내포되어 있을 터입니다.

9. 그래서, < 시월 > 의 마지막 행, '자욱하다, 보이지 않는 중력'을 읽고 난 후에는, 제 옆의 공기가 달라져 보이는 것입니다. 아직 충분히 사랑하지 않은, 아직 충분히 아파하지 않은 저는, 언제쯤이면 더할 기쁨도 덜할 슬픔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요.

언제쯤이면 저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을 수 있을는지요. 그 때가 혹시 죽음 앞에 섰을 때인가요. 그는, 중력은, 절 언제 떨어트릴까요. 그 추락 앞에 저는 담담할 수 있을까요. 읽을 때마다 무수한 질문 속에 쌓이지만, 그래도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10. 시월이기 때문입니다. 2002년 시월, 이 시를 알게 된 이후 벌써 여섯 번의 시월이 지나갔군요. 그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이 시를 읽었지요. 어떨 땐 위로하고, 어떨 땐 두렵게 하지요. 그래서 결국, 저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 돌아봄은 저 혼자로 그치지 않아, 다른 모든 아파하는 것들에게까지, 시선이 뻗치게 만들지요. 이 시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랍니다. 시간이 또 지나, 다시 시월이 왔네요. 그래서 오늘도 < 시월 > 을 읽습니다.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view.html?cateid=1026&newsid=20081012135604268&p=ohmynews 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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