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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북리뷰] 그리움을 변주하다 / <한영옥 시집>-다시 하얗게

문근영 2014. 2. 3. 21:29

 

[북리뷰] 그리움을 변주하다
<한영옥 시집>-다시 하얗게
 
서대선
다시 하얗게
 
어느 날은
긴 어둠의 밤 가르며
기차 지나가는 소리, 영락없이
비 쏟는 소리 같았는데
 
또 어느 날은
긴 어둠의 밤 깔고
저벅대는 빗소리, 영락없이
기차 들어오는 소리 같았는데
 
그 밤기차에서도 당신은
내리지 않으셨고
 
그 밤비 속에서도 당신은
쏟아지지 않으셨고
 
뛰쳐나가 우두커니 섰던 정거장엔
얼굴 익힌 바람만 쏴하였습니다
 
다시 하얗게 칠해지곤 하는 날들
맥없이 눈이 부시기도 하고
우물우물 밥이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다시 하얗게 
 
 
#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한영옥 시인의 시집 <다시 하얗게>가 출간 되었다. 한 시인의 시를 읽으면 그리움의 바로크 시대에 들어 온 것 같다. 이번 시집에서 한 시인은 그리움이라는 주제를 통주저음으로 깔고 그리움의 온도와 압력에 따라 구성된 감성의 분자를 다양한 빛깔로 변주한다. 때론 사무치게, 때론 비장하게, 때론 슬픔을 가득 품은 채 젖은 목화 솜이불 속에서 추운 잠을 기다리며 그리움을 변주한다.
 
바로크(Baroque)란 말의 어원은 폴투갈어로서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이다. 음악사에서는1600년 전후부터 요한 세바스찬 바흐까지의 시기를 일컫는 시대의 한 문화조류이다. 이 시대의 음악은 안정감 대신 약동감을 특징으로 하여 웅장하고 거대하면서도 거기에 다채로운 장식이 함께 가해지는 것이다. 이 시대에 대두된 가장 전형적인 것은 그리스 비극의 음악적 이상과 실제를 재창조하려 함에 있었다. 한 시인이 변주해 보여주는 “그리움”이 이와 닮아 있다.
 
“어느 날은/긴 어둠의 밤 가르며/기차 지나가는 소리, 영락없이/비 쏟는 소리 같았는데/또 어느 날은/긴 어둠의 밤 깔고/저벅대는 빗소리, 영락없이/기차 들어오는 소리 같았는데/그 밤기차에서도 당신은/내리지 않으셨고/그 밤비 속에서도 당신은/쏟아지지 않으셨고(다시 하얗게 중 일부)”에서 보듯 그리움이라는 주제를 같은 마디에서 변주하는 구분적 변주(sectional varitation)를 보여줌으로써 그리움의 절절함이 가슴에 사무친다.
 
바로크 음악의 특징은 주제, 동기, 음형을 다양한 방법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변주(variation)의 기법으로는 선율의 장식적 변주, 자리바꿈, 역행의 변주, 대위법적 변주, 음가의 확대, 축소에 의한 변주, 속도의 변화에 의한 변주, 화성의 변화에 의한 변주, 분명한 구분을 지닌 주제를 같은 마디에서 변주하는 구분적 변주, 4-8마디의 기본주제를 연속적으로 변주 하는 계속적인 변주 등의 기법이 있다.
 
“‘부베의 연인’은/좀처럼 찢어지지 않는/질긴 연인들 톡톡하여/봐도 봐도 마르지 않는/흥건한 흑백영화, 머나 먼 향수 영화/쓸쓸한 머리카락의 파르티잔, 부베는/낙하산용 실크 한 자락밖에는/더 내 놓을 것이 없는 빈털터리/목련 빛 실크 한 자락 고이 받아/민소매 블라우스 지어 환하게 입고서/목련 빛 두 팔 곧게 뻗으며 마라는/사랑의 가혹한 운명 덥석 받아 안았다/마라의 눈물은 가을 물처럼 맑아서/감옥의 부베를 매일 말갛게 씻기고/기다림은 낙하산용 실크처럼 몹시 질겨(질긴 연인들에 대한 회감 중 일부)” 그 기다림은 어떤 상황에서도 훼손되거나 퇴색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부베의 연인”의 이야기를 주제로 극적으로 서사화 함으로서 그리움을 더욱 도드라지게 변주하는 모노디양식을 닮아있다.
 
한 시인이 초대하는 그리움의 바로크 시대 속에서 변주되는 리듬을 타다보면, 기다린다는 것은 두 개의 삶을 동시에 살아가는 일임을 알게 한다. 하나는 기다리는 그 대상과 만들었던 과거의 시간들 속에서 살아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기다린다는 행위를 통해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속에서 기다리는 대상을 살려내는 일 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기다림은 “낙하산 실크”처럼 질기고, 질겨야하고, 질길 수밖에 없도록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기다림 속에서 과거와 도래할 미래의 시간을 엮어서 변주하며 견디는 삶의 쓸쓸함이 가득 흐른다.
 
“나도 나를 힘겹게 부러뜨렸듯이/그 사람도 그 사람 그리 꺾었을 것인데/장미꽃 울타리 섭섭하게 스러졌듯이/장미꽃 울타리 다음에 능소화 울타리도/여름비 끝에 멈칫멈칫 스러졌던 것인데/진퇴유곡, 나의 골짝이만 험하고 깊어 흐린 밤하늘 맨발로 떠도는 별처럼/나 혼자 서럽다고 아득 바득 하는가, 나는/그 사람도 그 사람을 어쩔 수 없었기에/한마디 말도 못하고 풀 죽은 어깨 떨군 채로/풀 죽은 방죽 길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가다가/울타리 스러지듯 스러졌던 것인데/그 날의 석양이 토한 피울음은 내 것이라고/아득 바득 하는가, 얼른 울음 못 그치며, 나는(아득바득하는가, 나는 전문)”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의 관계에서, 그 사람의 시간 속에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유추 해본다. 그러면서 나의 시간 속에서 아직도 살려내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해 이해하려고 애써본다. 그래야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기다림에 속에 내재된 불안을 떨치고 그리움이 막을 내리는 어느 순간을 기대 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움의 대상과 이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너와 나의 입장에서 대위법으로 변주해보는 한 시인의 그리움은 바로크예술이 지니는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대비하듯 강하고 독특한 울림을 자아낸다.
 
“대왕참나무만큼 하겠습니다/대왕참나무 작년 이파리 바싹 마른 채/3월에도 끄떡 않고/4월에도 꼿꼿하여/징그럽다, 징그럽다하였지요/당신을 기다리는 일,/못지않았으니/대왕참나무 사이로 몸 비벼 넣으며/한층 징그러워지겠습니다(대왕참나무만큼)” 기다림은 언제나 기다림의 대상과 목적을 정하고, 기다림의 대한 기대가 이루어지건 이루어지지 않건 간에 어떤 완결의 상황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한 시인에게 기다림이란 기다림의 대상과 이루어지지 못한 미완 시간으로 “기다림”이 그녀에게 기다리는 대상과의 만남을 확신시켜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다짐 하듯이 “징그러울 정도로” 기다림을 불멸의 시간으로 만들려는 그녀의 의지가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전언하는 비장하고도 확대된 음가의 리듬이 시의 전편을 흐르고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결코, 이루지 않기 위하여/비극 「르 시드」에서 공주는/”나의 큰 희망은/희망을 잃는 것“ 이라는/모순어법을 남기고 있다/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결코, 이루지 않으려는 희망(비장 중 일부)”의 전언 속에서 한 시인은 “자유의 토대 위에서 의지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영광에 도달하는 주인공”을 내재화하고 있다. 인간의 위엄이란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행동의 노선을 취하며, 자신의 선택에 따라 행동하는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의 자세로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에 대처하는 비장한 위엄을 지키려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피에르 꼬르네이유(Pierre Corneille, 1606-1684)의 희곡 “르 시드(Le Cid)"의 서사적 비극을 재 창조해내는 변주에 이르면 비탈리(Vitali)의 샤콘느(Chaconne)를 생각나게 할 만큼 “남다르게 장엄한 수목들의” 옹이 진 상처마다 차오른 슬픔이 바이올린의 현 속에서 “연두 움”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다시 하얗게 칠해지곤 하는 날들/맥없이 눈이 부시기도 하고/우물우물 밥이 넘어가기도(다시 하얗게 중 일부)”하는 하루하루를 견디기도 하고, “고립무원, 하늘 얕은 날/초가삼간 방 한 칸에서/끈적이는 장마 기운 떨치려/고추장찌개 칼칼하게 끓여/밥 한 술 겨우 뜨는데/호박 건져 먹다가/감자 건져 먹는데/갑자기 혀끝에서/설컹거리는, 아릿한 당신/이 험한 곳까지 들리실 리 없다고/머리칼도 입성도 후줄근한 채로/이 산봉우리 저 산 봉우리만 보다가/장대비 속으로 스며 오신 당신 냄새/겨자씨만큼 맡으니, 서러운 힘 솟는다(서러운 힘 전문)”고 전언하는 한 시인의 그리움은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삶의 원동력이 되리라 예고한다. 그리움의 온도와 압력에 따라 구성된 감성의 분자를 치밀하게 구성하여 때론 서늘하게, 때론 쓸쓸하게, 때론 처연하고도 비장한 리듬으로 변주하여 들려주는 한 시인의 언어적 음표와 리듬과 화성과 통주저음이 어우러진 “그리움의 변주”는 책을 덮어도 긴 여운으로 남아 가슴 속을 파고들며 공명된다. “그리움”이라는 주제를 이토록 치열하고 치밀하면서도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 시인이 있어서 행복하다.  

한영옥 시인은 1950년 서울에서 출생 하였다. 성신여대 국문과,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 하였다.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비천한 빠름이여>, <아늑한 얼굴>등이 있다. 한국예술비평가협회상, 천상병시상, 최계락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천년의 시작]값,8,000원.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수 dsseo@shingu.ac.kr)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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