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생활과 자연과 시의 서정들-졸시집 『첫눈 아침』에 관한 단상들 / 이은봉

문근영 2014. 2. 1. 14:40

〈나의 시, 나의 시론〉

 

 

생활과 자연과 시의 서정들

―졸시집 『첫눈 아침』(푸른사상사)에 관한 단상들

 

 

이은봉

 

 

수많은 문예지들이 간행되고 있고, 수많은 시들이 생산되고 있다. 이들 문예지 중의 한 권을 펴들고 습관적으로 그곳에 실려 있는 시를 읽는다. 열 편의 시를 읽고 스무 편의 시를 읽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어떤 시는 끝내 다 읽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고 만다. 도무지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 시는 왜 읽히지 않을까. 독자들을 무시하기 때문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계속 읽어내려 가다 보면 조금 알만한 시들을 만날 때도 있다. 삼십 편쯤 읽고, 오십 편쯤 읽다 보면 간혹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시를 만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를 만나기까지 쉬지 않고 계속 시를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한 편의 좋은 시를 읽기 위해 50편의 나뿐 시를 읽는 고통을 감내하기는 어렵다.

 

매번 이런 일이 반복되기 때문일까. 이제는 수많은 문예지에 수록되어 있는 수많은 시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일종의 선입관이 작동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요즘의 시들은 뻔하지. 수학문제를 풀듯 암호를 풀어야 하지. 기발한 재미도 주지 않고, 가슴을 조미는 감동도 주지 않는 것이 요즈음의 시이지.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에 빠져 자꾸만 시 읽기를 소홀히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습관적으로 나는 다시 질문한다. 왜 이런 일이 거듭되는 것일까. 왜 이런 시들이 끝도 없이 생산되는 것일까. 아직도 사람들이 시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니 시의 정체라는 것이 있기는 할까. 그래도 시적인 것, 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있지 않을까. 서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 말이다.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서정적인 것!

 

다시 나는 내게 강조한다, 시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니 만큼 시 읽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좋은 시를 골라 정전으로 만드는 일도 시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내가 해야 할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고! 그런 생각 끝에, 이런 반문 끝에 나는 다시 문예지를 펴들고 그곳에 실려 있는 시를 읽기 시작한다.

 

이런 생각과 반문이 거듭되다 보니 이제 나는 시라는 것 자체에 대해 제법 초연해진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시는 바라지도 않는다. 시를 읽으며 제발 기발한 재미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기존의 시와 변별되는 신선한 발상이라고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시를 얻기는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이런 ‘좋은’ 시와 마주할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하면 이런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 정작은 나도 시인이 아닌가. 나는 다시 내게 묻는다. 무엇이 ‘좋은’ 시를 만드는가. ‘좋은’ 시는 어디서 오는가. 이런 물음이라도 거듭해야 기존의 시와 변별되는 신선한 발상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주지하다시피 나는 시를 읽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시를 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시인들도 자기 자신을 향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큼이나 절실한 것이 좋은 시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다시 물어보자. 무엇이 ‘좋은’ 시를 만드는가. ‘좋은’ 시는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

 

어떤 사람은 그날그날 겪는 생활에서, 삶에서 시를 얻는다. 나도 그럴 때가 있다. 나날의 일상이 나도 모르게 내 속에서 시를 밀어낼 때가 있다. 이런 시는 어쩔 수 없이 생활이 토해내는 징그러운 분비물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시를 읽으면 아무래도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시가 싫다. 싫은 데도 자꾸 끌린다. 다른 도리가 없다.

 

어떤 사람은 그날그날 만나는 자연에서, 숲에서 시를 얻는다. 나도 그럴 때가 있다. 여행 중의 자연이, 산책 중의 숲이 내 속을 건드려 시를 불러낼 때가 있다. 이런 시는 어쩔 수 없이 자연이 뱉어내는 낯선 분비물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시를 읽으면 아무래도 온몸이 떨린다. 이런 시는 나를 아프게 한다. 아프게 하는 데도 자꾸 끌린다. 다른 길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날그날 읽는 글에서, 시에서 시를 얻는다. 나도 그럴 때가 있다. 늦은 밤 홀로 읽는 소설에서, 시에서 묘령의 영매가 빠져 나와 한 편의 시를 불러줄 때가 있다. 이런 시는 어쩔 수 없이 기존의 시가 품어내는 괴기스러운 분비물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시를 읽으면 아무래도 귀신에 홀린 것처럼 몽롱해진다. 이런 시는 나를 어지럽게 한다. 어지럽게 하는 데도 자꾸 끌린다. 다른 방법이 없다.

이렇게 내 속에서 불거져 나온 시를 ‘좋은’ 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감동할 때 남도 감동하기 때문이다. 내가 재미있을 때 남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내가 신선할 때 남도 신선하기 때문이다. 내가 괴로울 때 남도 괴롭기 때문이다.

 

감동은 감동을 부르고, 재미는 재미를 부른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부르고, 좋은 시는 좋은 시를 부른다. 이처럼 때로는 시가 시를 부른다. 삶이 시를 부르고, 자연이 시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시를 부르는 것에는 무엇이든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혼자 있다가 보면 슬금슬금 이런저런 생각이 내 속을 떠돌아다닌다. 이내 생각은 생각을 낳는다. 생각은 다산의 여자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한심한 생각이라니! 생각이 싫고 무서운 데는 그런 까닭도 있다. 생각의 연쇄처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이번에 간행한 시집 『첫눈 아침』에 나는 적어도 이런 시들을 담으려고 했다. 이번에 출간한 시집 『첫눈 아침』에는 생활이 토해낸 시들, 자연이 토해낸 시들, 시가 토해낸 시들을 넣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생활과 자연과 시가 뱉어낸 저 징그러운 분비물들을!

 

이들 시에는 늘 이들 시가 태어난 구체적인 현장과 사연이 담겨 있다. 이들 시는 언제나 이들 시가 태어난 구체적인 현장과 사연을 기억하게 한다.

 

생각해보면 늘 나를 괴롭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이들 현장과 사연을 담고 있는 시이다. 이들 시가 좋은 시라고 하더라도 내가 이들 시를 좋아하지 않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때로는 너무도 징그럽게, 너무도 낯설게, 너무도 괴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이들 시이다.

다음의 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24시간 편의점이 아니다 24시간 밥집이다 백반천국이다 천국처럼 언제나 불빛 환한 식당이다 

 

자정이 넘은 시간, 죽음을 넘어서기 위해, 죽음과 친해지기 위해, 죽음을 먹기 위해 천국의 밥상 앞에 앉는다 또다시 독상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천국, 달그락거리는 젓가락질 소리만 들린다 가끔은 묵은 신문 뒤적이는 소리도 들린다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가기 위해 먹어치우는 한 공기의 밥, 두 접시의 나물, 한 대접의 국…… 밥상 위의 반찬들 주둥이 삐쭉대며 웃는다

 

꾸역꾸역 저희들을 처먹는 모습이 저희들 보기에도 우스운 거다 우스워도 천국은 천국인 거다

 

혼자 먹어도 밥은 하늘이다 하늘을 사는 밑천이다 24시간 편의점이 아니다 24시간 밥집이다 백반천국이다.

―「백반천국」 전문

 

이 시는 가족과 떨어져 광주에서 혼자 살고 있는 화자, 곧 나의 체험을 담고 있다. 생활의 구체적인 현장과 사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백반천국’이라고 하는 밥집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화자가 거듭해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묻고 있는 것이 이 시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언제나 진정한 천국의 의미를 되묻기 마련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시에서 화자가 처해 있는 삶의 현장과 사연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이번 시집 『아침 첫눈』에 수록되어 있는 시들이 보여주는 세계는 매우 적나라하다. 미처 감추지 못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번 시집 『아침 첫눈』의 한계이다. 돌이켜보면 벌거벗고 광장에 서 있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모든 장점은 단점을 거느리기 마련 아닌가. 모든 좋은 것은 나뿐 것을 거느리는 법 아닌가.

 

따라서 이번 시집 『첫눈 아침』은 단점이 많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단점만큼 장점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 이번 시집 『첫눈 아침』이다. 이번 시집 『첫눈 아침』의 특징은 바로 이런 역설에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시집은 탄생의 경로가 각기 다르다. 이번에 간행한 시집 『아침 아침』의 탄생 경로는 특히 생활과 자연과 시에 두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생활은 하루하루 겪는 삶을 가리키고, 자연은 그날그날 마주치는 초목을 가리킨다. 그리고 시는 하루하루 읽는 기존의 문학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는 관념과 의식보다는 사물과 물질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야 옳다.

 

사물과 물질은 주체에 가깝다기보다는 객체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추상이나 보편보다는 형상이나 구체에 가깝다. 요컨대 주체의 의식을 포기하지는 않지만 객체의 물물을 좀 더 고려하고 있는 것이 이번 시집에 실려 있는 시들이라는 것이다. 다음의 시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첫눈 아침, 바윗돌처럼 단단한 한기 품고

시리게 얼어붙은 웅덩이 속 헤매고 있다

 

아침 첫눈, 하얗게 번져오는 햇살 품고

막 눈 뜨는 시냇가 버들개지 위 떠돌고 있다

 

너무 추워 큰 귀때기 쫑긋대는 산노루의 걸음으로

첫눈 아침은 내일 아침에나 온다

 

너무 시려 빨간 코끝 벌룽대는 꽃사슴의 걸음으로

아침 첫눈은 모레 아침에나 온다

 

내일 모레, 내일 모레, 내일 모레……

반야심경처럼 외워 보는 꿈

 

모레 글피, 모레 글피, 모레 글피……

법구경처럼 외워 보는 희망

 

버석대는 명아주 꽃대궁을 밟으며

느릿느릿 걸어오는 첫눈 아침이 있다

 

뽀얗게 껍질 벗는 버짐나무 줄기를 걷어차며

터벅터벅 걸어오는 아침 첫눈이 있다

 

그것들, 오늘 여기 있지 않아 마음 환하다

그것들, 지금 여기 있지 않아 가슴 벅차다.

―「첫눈 아침」 전문

 

탄생의 경로는 각기 다르더라도 이 시가 ‘첫눈’과 ‘아침’이라는 구체적인 대상, 곧 실질적인 객체로부터 발상된 것은 사실이다. 대상이 지니고 있지 않은 막연한 상념 혹은 막연한 관념을 무의식적으로 기술한 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이 시에서 ‘첫눈’과 ‘아침’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은 그 자체에 머물지 않고 주체를 자극해 자아의 의식을 작동시킨다.

 

따라서 이 시에는 개개의 물물로부터 촉발된 주체의 의식이 의지로 작동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시는 주체의 관념과 의식을 직접적으로 진술하기보다는 물물로부터 비롯된 의식과 의지를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주체의 의식이 작동되고 있더라도 물물의 객관성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 이 시의 구체적인 대상인 ‘첫눈’과 ‘아침’이라는 얘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물물은 늘 인간의 감각과 함께 하기 마련인 이미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미지는 본래 객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이미지는 어렵지 않게 풍경을 만든다. (이때의 풍경을 가리켜 형상이라고 해도 좋다.) 이번 시집의 시에서 나는 이들 풍경이 일종의 상징으로 존재하기를 바란다. 상징으로는 존재하지는 않더라도 그것에 이런저런 의미를 담아내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이때의 의미는 나 스스로 깨닫고 있는 진실을 가리킨다.

 

이 시집의 시들에서 상징으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미지만이 아니다. 나로서는 이야기도, 정서도, 상징으로 존재하기를 바란다. 시에서는 이미지만이 아니라 이야기나 정서도 물물로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이야기나 정서도 유의미한 진실을 함유할 수 있는 상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선 생활에서 비롯된 이러한 맥락에서의 유의미한 진실을 담으려고 한 시 한편을 여기 적시한다.

 

오랫동안 외지를 떠돌다가 돌아온 밤이다

긴 장마의 끝, 가슴까지 눅눅해진 밤이다

 

유리창에 매달려 있는 물방울들!

저도 외로워 동그랗게 몸 오므리며 떨고 있다

 

담배 연기로 만드는 따뜻한 도넛들!

하얗게 피어오르며 식욕을 돋우고 있다

 

몸보다 먼저 침대 위에 눕는 마음들!

자갈더미라도 밟은 듯 서걱대는 소리를 낸다

 

가슴속 붉은 해당화 열매 저 혼자 붉는 밤이다

버리지 못하는 것들 너무 많은 밤이다.

―「떠돌이의 밤」 전문

 

이 시는 나날의 생활, 곧 삶의 일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일단은 일상의 생활에서 비롯되는 화폭, 곧 구체적인 풍경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이 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때의 구체적인 풍경을 통해 나는 몇 가지 유의미한 진실을 담으려고 했다. 유의미한 진실이라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나날의 삶에서 내가 얻은 소박한 깨달음, 곧 한 소식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이 시에서는 그것이 떠돌이라고 명명되고 있는 화자, 곧 시인인 내가 획득하고 있는 생명의 순환 혹은 윤회라고 할 수 있는 생명의 진실 이상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환 혹은 윤회라고 하는 생명의 진실이나 가치는 우선 첫 행의 “외지를 떠돌다가 돌아온”이라는 구절에서부터 비롯된다. 이들 진실은 “동그랗게 몸 오므리”고 있는 유리창의 “물방울”, “담배 연기로 만드는 따뜻한 도넛”, “가슴속 붉은 해당화 열매” 등으로 전환되어 드러나 있기도 있다. 이들 이미지에서 어쩌면 나는 독자들이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緣起)적 진실을 발견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음의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 나름으로 깨닫고 있는 이러한 삶의 진실은 자연의 풍경을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삼베빛 저녁볕, 자꾸만 뒷덜미 잡아당긴다

어지럽다 아랫도리 갑자기 후들거린다

종아리에 힘 모으고 겨우겨우 버티고 선 채

흐르는 강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산언덕을 덮고 있는 조팝꽃처럼

마음 몽롱해진다 낡은 철다리조차

꽃무더기 함부로 토해 놓는 곳

간이매점 대나무 평상 위 털썩 주저앉는다

싸구려 비스킷 조각조각 떼어먹으며

따스한 캔 커피 질금질금 잘라 마신다

초록 잎새들, 팔랑대는 저 아기 손바닥들

바람 데려와 코끝 문질러댄다

쿨룩쿨룩 삼베빛 저녁볕 잔기침하는 사이

강마을 가득 들뜬 발자국들 일어선다

싸하게 몸 흔들며 피어오르는 철쭉꽃들

벌써 물속의 제 그림자 까맣게 지우고 있다.

―「삼베빛 저녁볕」 전문

 

이 시에 드러나 있는 자연의 풍경에는 두 개의 이미지가 상호 뒤섞여 있다. 하나는 “자꾸만 뒷덜미 잡아당”기는 “삼베빛 저녁볕”의 이미지, 곧 죽음의 이미지이다. 이 시의 화자인 나는 이들 죽음의 이미지와 함께 하면서 “간이매점 대나무 평상 위 털썩 주저앉는”는 등 하강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산언덕을 덮고 있는 조팝꽃처럼” “몽롱”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삼베빛 저녁볕”의 이미지와 함께 하고 있는 이 시의 화자인 나이다.

 

하지만 이 시의 풍경 속에는 그와는 반대되는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함부로 토해 놓는” 꽃무더기, “바람 데려와 코끝 문질러”대는 “초록 잎새들”, “강마을 가득” 일어서는 “들뜬 발자국들”, “싸하게 몸 흔들며 피어오르는 철쭉꽃들” 등이 그 실제의 예이다. 물론 이들 이미지는 두루 신생과 활기의 내포를 거느리고 있다. 더불어 상승의 이미지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 이들 생명의 이미지이다.

 

하지만 이들 생명의 이미지가 갖는 내포에는 죽음의 이미지가 겹쳐져 있다. “낡은 철다리”가 “함부로 토해 놓는” 것이 꽃무더기이고, “벌써 물속의 제 그림자 까맣게 지우고 있”는 것이 “철쭉꽃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삼베빛 저녁볕”으로 상징되는 죽음의 세계에서 “초록 잎새들”로 상징되는 생명의 세계를 깨닫고, “초록 잎새들”로 상징되는 생명의 세계에서 “삼베빛 저녁볕”으로 상징되는 죽음의 세계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 이 시라고 할 수 있다.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깨닫고, 생명으로부터 죽음을 깨닫고 있는 것이 이 시인 셈이다.

 

생명이 죽음을 거느리고 죽음이 생명을 거느린다는 것은 모든 존재의 비의이기도 하다. 이를 가리켜 하나의 존재가 지니고 있는 양면성 혹은 양가성이라고 해도 좋다. 이런 존재의 양면성 혹은 양가성은 시가 낳은 시, 이른바 메타시라고도 할 수 있는 「짜샤, 시라는 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창조와 신생의 내포를 갖고 있는 시라는 존재가 “항상 피곤과 함께 온다”는, “몽롱한 가슴 뚫고 온다”는 자각을 담고 있는 것이 이 시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쉰쉰 나이를 먹어도, 스물스물 날랜 발걸음으로” 찾아오는 것이 시라는 것이다.

 

이처럼 이번 시집 『첫눈 아침』에서 나는 생활의 시이든, 자연의 시이든, 시의 시이든 구체적인 풍경과 함께 하는 진실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다. 물론 이때의 진실이 오늘의 보잘것없는 내 수준으로 깨닫는 자잘한 소식(小識)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다음의 시에서처럼 말이다. (2011년)

 

더는 뜻 세우지 못하리 더는 어리석어지지 못하리 더는 천박해지지 못하리 더는 사랑에 빠지지 못하리

 

더는 술 취해 길바닥에 나뒹굴지 못 하리 더는 비 맞은 초상집 강아지 노릇 못하리

 

가을이 오면 호박잎 죄 마르는 거지 늙어빠진 알몸 절로 불거지는 거지 담장 위 누런 호박덩어리 따위 되는 거지

 

그렇게 가부좌 틀고 앉아 유유히 세상 내려다보는 거지 가난한 마음 더욱 가난해지는 거지.

―「쉰」 전문

 

 

-이은봉-돌과 바람의 詩http://cafe.daum.net/lebzoa(이은봉- 돌과 바람의 詩) 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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